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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게이트가 초래한 위기와 우리의 자세

김종엽

김종엽

박근혜-최순실게이트로 인해 대통령 자신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 전체가 어디로 그리고 어디까지 표류해갈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 있다. 하지만 지금 사태가 완전히 새롭게 느껴지지만은 않는 어떤 기시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18대 대선이 14개월 남았던 2011년 10월말로 돌아가보자. 그 당시 한나라당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함으로써 엄청난 혼란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12월에 들어서면서 당시 박근혜 의원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옹립하고 당명까지 새누리당으로 바꾸면서 총선 체제를 갖추어나갔다. 붉은 옷으로 갈아입은 새누리당은 총선 승리를 챙겼고 이어서 총선 패배 이후 자중지란과 혼돈을 겪은 야당을 제치고 대선에서마저 승리했다. 실정과 비리와 반민주적 작태로 점철된 이명박정부에 대한 광범위하고도 강력한 대중적 반감에도 불구하고 선거결과가 야당의 패배로 귀결된 주된 이유는 야당의 무능력에 있지만, 현직 대통령을 대중의 시선 밖으로 밀어내고 새로운 인물을 중심으로 보수세력을 결집시켜 정당 내 파벌 간의 세력 교체를 정권 교체처럼 느끼게 만든 대중조작술, 여기에 불법과 탈법을 마다하지 않는 ‘열정적’ 선거 캠페인도 중요한 요인이었으며, 새누리당과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졌다 해도 과언이 아닌 보수언론과 종편 그리고 우악스럽게 장악된 공중파의 적극적 도움도 한몫했다.

 

호리병의 마개를 연 조선일보

 

그때로부터 5년 뒤, 마찬가지로 다음 대선을 14개월 남겨놓은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현직 대통령을 무대 뒤로 밀어내고 완전히 새로운 판을 짜려는 보수세력의 시도 앞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우리 사회를 자욱하게 휩싸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마개를 누가 처음 열었는지 알고 있다. 그것은 지난 한달 동안 특종을 쏟아낸 한겨레신문이나 JTBC가 아니라 조선일보이며, 이 점을 무엇보다 잘 증언하는 것은 한겨레신문 특종의 주역인 김의겸 기자가 쓴 칼럼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님께」(2016.9.28.)이다. 그는 이 글에서 조선일보가 미르재단이나 최순실에 대해 “취재 그물을 호수를 다 덮도록 넓게 쳤는데도 그물코는 피라미 한 마리 빠져나갈 틈 없이 촘촘했”다며 ‘감탄’을 표했다.

 

조선일보가 미르재단 보도를 시작함으로써 상황을 ‘선도’하기 시작한 시점이 7월이었음을 고려하면 이렇게 추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이 함께 벌인 일들은 어차피 불거진다. 임기 마지막 해는 물론이고 4년차 말이 되기만 해도 이런 난장판의 국정 운영과 부패가 덮이긴 어렵다. 그것이 늦게 드러날수록 사태를 수습할 시간만 촉박해진다. 박근혜-최순실게이트를 수습하고 보수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해서는 이명박정부 때의 14개월보다 더 시간이 많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니 여름부터 사태를 폭로해나가야 한다.’ 조선일보가 굴린 작은 눈덩어리는 그들이 기대한 것보다는 늦었을지 모르지만 9월 이후 가파른 비탈길로 접어들었고 이제는 정권을 붕괴시킬 수 있을 정도로 부풀어올랐다.

 

하지만 기시감은 거기까지다. 조선일보는 실제로 대통령을 무대 뒤로 밀어낼 수 있는 시점이 되자 자신이 연 마개를 닫으려 하고 있다. 사태 수습을 위해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서는 거국중립내각 요구를 수용할 것을 주장하고, 야당을 향해서는 정국의 안정화를 위해 어서 협력하기를 압박하고 있다. 그리고 전체 상황을 통제하는 데 열쇠가 되는 검찰과 일정한 연계를 확립하려는 것 같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열어버린 마개를 조선일보가 닫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지금 상황이 호리병으로부터 지니가 영원히 빠져나온 것인지 아니면 다시 주문을 외워 그를 가두고 마개를 닫을 수 있는 상황인지 단언하긴 어렵다. 다만 적어도 마개를 닫는 일이 결코 간단치 않으며 지난번 사례가 단순하게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우선 위기의 성격이 전과 사뭇 다르다. 이명박정부가 불러온 위기를 고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위기, 민생의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라는 3대 위기로 요약한 바 있다. 그리고 백낙청 교수는 그 세가지에 더해 도덕성의 위기가 이명박정부를 특징짓는다고 말한 바 있다. 퇴임 후 거주할 내곡동 사저와 전임 대통령 경호 업무용 건물 부지에 대한 국고 지원을 복잡하게 뒤섞어 개인적 축재를 시도하려 한 데서 여실히 드러나듯이 “국가를 수익모델로 삼는” 이명박 대통령의 행태는 우리 사회를 도덕성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대통령의 자아 분열이 모두에게 준 충격

 

하지만 지금 우리가 박근혜-최순실게이트를 통해서 겪고 있는 위기는 도덕성의 위기라기보다 현실감의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굳이 『맥베스』의 어떤 구절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삶은 연극적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정치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국가는 ‘극장국가’의 면모를 지닌다. 그렇다 해도 우리에게 특정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 애쓰는 정치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런 공연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려고 고군분투하며 그것을 통해 자신의 정신적 자질과 능력을 입증하려는 어떤 인격체를 상정하게 된다. 공연된 역할 뒤로 어떤 인격체가 어른거림을 조용히 감지할 수 있다고 믿을 때, 공연과 실제라는 구분이 유지되며, 그럼으로써 우리는 삶 자체가 허구가 아니라는 일상적 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 누구도 이런 불문율을 깨서는 안된다. 생일날 꽃바구니와 케이크를 사들고 온 애인에서부터 반찬 그릇을 세팅하는 식당 종업원에 이르기까지,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는 물론이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나운서에 이르기까지, 공연된 자아와 공연하는 자아의 통합체로서의 인격을 가정하지 않는 사회생활은 없다.

 

그러므로 공연의 실패 그리고 그것의 연장선에 있는 삶의 실패는 두가지 방향에서 온다. 문제가 되는 것이 대통령이니 대통령을 예로 들자면 예컨대 노무현 대통령처럼 “대통령직 못해먹겠다”고 말하는 경우이다. 이는 공연 뒤에 어른거려야 할 공연하는 인격체가 직접 무대 위로 뛰어오르는 것이다. 그래서는 안된다. 「팔리아치」의 토니오가 그랬듯이 ‘의상을 입어라’라는 노래를 불러야 하는 곳은 무대 뒤여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는 대통령직 공연을 힘들어하는 노무현이라는 인격체의 실존이 의심스럽지는 않다. 이에 비해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준 공연의 실패는 공연하는 자아의 부재를 암시한다. 그럴 경우 공연된 자아는 물론이고, 그가 내린 모든 정치적·행정적 명령 또한 현실감을 잃게 된다.

 

이와 관련해서 이명박 대통령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적용되고 있는 이른바 ‘유체이탈화법’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유체이탈화법이란 기실 자기기만의 고전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인격을 분할하고, 분할된 부분들의 의사소통을 차단하는 것에 해당한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일가와 그들이 짜놓은 비서진 이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극도로 제한된 일종의 ‘연금’ 상태가 너무 오래 계속되어 현실과 격리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상태에서 나온 발언은 그 발언 자체가 주체화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청자에게 유체이탈적인 것으로 경험되는 것이다.

 

대통령은 전체 사회의 여러 행로를 결정하는 힘을 가지기 때문에 그의 현실 상실은 우리에게도 현실감의 위기를 야기한다. 물론 현실감 자체가 위협받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있다. 우리에게는 현실감 있는 각자의 일상이 있으며, 부인이야말로 현실이 위협받을 때 우리가 보이는 기본적인 대응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인이라는 방어기제를 뚫고 들어오는 생각의 흐름을 막기는 쉽지 않다.

 

예컨대 문자로 해고당한 황교안 총리는 1년 넘게 그 자리에 있으면서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맹목, 절반의 진실, 합리화와 환상, 문득문득 밀려오는 모든 의심의 도외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KTX 승강장에 차를 몰고 들어오는 쾌락을 호기있게 누렸겠지만, 도대체가 중심이 비어 있고 썩어 있는 허깨비의 삶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정도는 덜하겠지만, 수십만 공무원의 삶 또한 어떻겠는가. 대통령의 지시에서 시작되는 명령체계 안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이루어진 그들의 삶은, 그 모든 수행의 근거에 대통령이라는 존재의 인격적 통일성이 있으며, 대통령을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한 것도 바로 그 인격체라는 믿음의 연쇄에 터한 것이다. 그 모든 게 근저로부터 흔들리고 있다. 이런 현실감 상실의 예는 길게 열거될 수 있겠거니와, 이런 상태를 간결하게 요약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낸 것이 세금이었는지 복채였는지 모르겠다”는 한 시민의 풍자적인 말이다.

 

미증유의 위기 앞에서

 

이 위기를 극복하는 일이 결코 쉬울 수 없다는 사실은 인격의 위기 그리고 현실감의 위기가 미증유의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민주화 이후 비선실세가 문제가 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리고 비선실세와 그들이 저지른 부패가 드러나면 그것을 처벌하는 것으로 점차 상황이 정돈되었다. 지금 우리가 최순실-차은택을 통해 수천억원의 국고 손실이 일어났고, 대통령과 최순실을 향해 재벌들이 수백억원의 (뇌물) 상납을 했다는 법률 위반 사실에만 직면해 있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위기를 초래한 대통령보다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최순실이 옆에 없는 대통령에게 누가 그 역할을 하는지 계속해서 묻고 있다. 지금은 누가 끈을 당기고 있는가? 김기춘인가? 조선일보인가? 7인회인가? 혹은 정윤회의 복귀인가? 하지만 이런 질문에 대한 정답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의 책임을 감당하려는 주체가 부재하는 한, 이 물음이 끊임없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감의 회복이 모두의 과제가 되었거니와, 이 과제를 가장 무겁게 걸머진 이는 바로 대통령이다. 대통령의 1차 사과, 총리 지명, 2차 사과, 어제 있었던 국회 방문 등은 직면한 국민의 분노에 대해 대통령 자신부터 현실적 감각을 형성해가는 과정에 있음을 보여준다. 혹자는 대통령이 1차 사과 때 여야가 합의하는 총리를 수용하겠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했다면 공을 국회로 넘기고 상황 수습 과정에서도 어느정도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었을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도 그렇게 단번에 현실감을 되찾을 수는 없다. 타자가 자기 앞에 현존하고 그가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고 그 말을 신중하게 듣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현실파악 방식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대통령의 현실감 회복 과정은 우리에겐 굼뜨기 그지없어 보이지만, 그렇게 느린 것만은 아니다. 여하튼 지금 대통령은 자신을 압도해오는 상황과 새로운 상황정의에 굴복해가고 있기는 한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민이 현실감을 회복하기 위한 가장 명료한 방식은 역시 대통령을 무대 위에서 밀어내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조선일보나 한겨레신문이 공히 찬성하고, 거의 모든 국민이 찬성하는 바이다. 그런데 무대 위에서 대통령을 밀어내는 방안으로 주어진 것은 하나가 아니라 넷이다. 탄핵, 하야, 조기 대선, 2선 후퇴에 입각한 거국중립내각. 문제는 이 네 방안 모두 나름의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야, 탄핵, 거국중립내각, 조기 대선……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탄핵을 해야 한다는 규범적 입장이 가진 설득력은 상당하다. 하지만 세력관계를 염두에 두면 탄핵은 물론이고, 대통령의 자발적 수용이 필요한 하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기 대선은 대통령이 즉각 사임할 때 60일 이내에 선거를 치러야 하는 정치일정이나 차기 대통령 후보들 간의 경쟁제약 등을 감안한 것이며, 그만큼 합리적인 안이긴 하지만 이 역시 탄핵이나 하야를 상정하고서야 고려 가능한 것이다.

 

이런 선택지에 단지 현실적 어려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규범적으로도 약점이 없지 않다. 탄핵이든 하야든 조기 대선이든 결국 선출직 공직자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직위인 대통령의 임기를 보장하지 않는 것인데, 그것을 현재 인민의 의지와 여론을 즉각 반영하는 민주주의적 정신을 구현하는 것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단견이다. 민주주의는 높은 수준의 자제심, 자신의 결정에 대한 책임성, 정치적 안정성과 정치일정의 예측가능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통령직에 부여된 모든 권한을 행사하도록 맡겨두기 곤란하다는 데 대해 강한 국민적 합의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여론을 반영하는 것이 임기 단축 형태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며, 그것은 하나의 선례로서 불행하고 정치체제의 안정성을 크게 약화시키는 위험성 또한 품고 있다.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대통령의 그러함에 대해 국민들이 책임질 몫을 너무 쉽게 털고 싶은 심리에 기초한 것이기도 하다. “왜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인가” 묻는다면, 어느정도는 우리의 몫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통령을 즉각 쫓아내려고 하는 태도는 그 부끄러움의 몫에 대해 충분히 책임지는 자세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2선 후퇴에 입각한 거국중립내각이 충분히 적합한 답도 아니다. 2선 후퇴는 명백하고 공개적으로 선포되지 않는 한, 헌법의 어떤 조항에 의해서도 뒷받침되지 않는다. 자주 언급되는 내치와 외치의 구분도 극히 자의적이며, 내치에서 자격을 박탈당한 대통령이 어떻게 외치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앞으로 정상외교가 제대로 이루어질지도 의심스럽지만, 당장 일본과의 군사정보조약 문제나 사드 배치 문제는 어쩔 것이며 또 누구든 새로 당선된 미국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이나 무역에 대해 새로운 협상을 제안할 텐데, 그런 것들이 단순히 외치인지도 의심스럽다. 북한과의 관계는 또 어쩔 것인가? 이런 모든 일이 계속해서 문제 될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거국내각이야말로 정말 한번도 해보지 않은 미증유의 실험을 거듭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음 대선까지 13개월 넘게 남았고 임기 만료까지는 15개월이 남은 기간은 이런 실험을 하기엔 너무 길다.

 

지금 상황은 고도로 유동적이지만 실현가능성의 관점에서 조심스럽게 말해본다면, 조기 대선과 거국중립내각 양자를 절충적이고 잠정적 조치로 수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선 거국중립내각을 수용하는 것이다. 거국중립내각의 운용과 구성에 있어서 특히 법무부장관에 대한 야당 추천권을 확보하고, 새로 마련된 법에 입각해 독립성을 확보한 특별검사가 대통령과 청와대 및 내각 고위공직자들의 위법과 직권 남용과 직무유기 혐의, 최순실과 그 주변 세력의 불법 및 국정개입과 부패 혐의, 재벌 대기업의 뇌물/상납 혐의 등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시간이 중요한 때

 

지금 탄핵이나 하야를 주장하는 이들의 규범적 입장에 나 자신은 충분히 공감하고 동의하지만, 실현가능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대통령의 범죄 혐의나 최순실의 국정 농단이 현재 밝혀진 것을 넘어서 국방이나 외교 사안에서도 저질러졌음이 증거에 입각해 밝혀지는 사태(혹은 세월호참사 때 대통령이 사라졌던 7시간이 국민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일과 연루되었음이 증거에 입각해 밝혀지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한, 탄핵이나 하야는 쉽지 않을 것이다. 거국중립내각하에서의 특검 수사를 통해 대통령에게 퇴임 외에 다른 길이 없을 정도의 사실이 밝혀진다면, 거국중립내각은 스스로를 선거관리내각으로 전환해 조기 대선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긴 기간의 거국중립내각이라는 어려운 실험의 길을 우리 사회는 감당해야 한다.

 

다시 한번 지적하거니와 지금 상황은 고도로 유동적이다. 현재 사태의 진행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것은 검찰이지만, 기회주의적인 그들의 행보를 규정하는 것은 정당과 대선주자들의 정치적 선택 그리고 폭주하는 커뮤니케이션 흐름에 실려가며 새로운 취재사실을 전달하고 있는 언론의 행동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보다 더 크고 중요한 요인은 집회에 나선 대중의 의지가 얼마나 단호하고 큰가 하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두었던 정치 수, 그러니까 국회를 방문해 여야가 합의한 총리 후보를 수용하겠다는 입장 표명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조차도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린 문제이다. 지금으로서는 우리가 어디를 향해 얼마나 나아갈지를 결정하는 것은, 주말의 민중총궐기대회를 향해 가는 며칠 동안 일어나는 일들 그리고 그것에 연동되어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달려 있다. 어떤 집단도 전체 사회의 행로를 규정할 수 없지만 각자가 SNS에서 하는 발언조차 나름의 몫과 영향력을 가지는 상황, 그리고 그런 행동의 총합이 미래에 대해 비상한 중요성을 가진 시간 속에 우리 모두 들어선 셈이다.

 

김종엽 /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6.11.9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