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이세영 『건축 멜랑콜리아』
건축에 말을 걸자 사회가 보였다
-- 이세영 『건축 멜랑콜리아』, 반비 2016
일본 18은행지점, 제물포구락부, 청일조계지 경계계단, 답동성당, 일본 제58은행, 옛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회사가 위치해 있다보니 근대 건축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인천의 구도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대부분의 건물이 박물관이나 까페로 변신해 손님들을 맞고 있지만, 건물마다 품고 있는 역사를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개항장 역사문화지구’라는 이름에 걸맞게 노란 모자를 쓴 유치원생들부터 건축학과 학생은 물론, 전국의 공무원들까지 앞 다투어 ‘근대 건축’을 공부하러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잡지 화보나 광고 촬영지로도 인기가 높지만, 가까운 곳에 있어서일까 그동안 늘 무심한 태도로 일관해왔다. 그런데 이 책 『건축 멜랑콜리아: 한국 근현대 건축·공간 탐사기』를 읽다보니 주변의 건축물들과 그 역사를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만큼 이 책이 16개의 건축과 6개의 공간을 ‘제대로’ 호출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국 건축물에 녹아들어 있는 권력의 욕망
“모든 것은 정치적이다”를 외치는 현직 기자의 눈에 비친 1960~70년대의 한국 건축물과 도시공간은 중층적이다. 전국민이 한국 근현대사의 궤적을 강제 학습 중인 요즘, 건축물에 남아 있는 역사의 증언을 찾아나가는 여정은 공교로우면서도 흥미롭다. ‘큰 영애(박근혜)’가 내로라하는 기업인들을 불러 모았던 그때로부터 40년 후, ‘대통령(박근혜)’은 세대교체된 대기업 총수들을 청와대로 부른다. 대기업을 윽박질러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단체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 시절의 ‘구국봉사단’과 2016년의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은 판박이처럼 닮았다. 평행이론처럼 반복되는 풍경 속에서 오직 ‘박근혜’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서늘하게 다가온다. 한국 현대사의 기이한 반복은 건축물이라고 다르지 않다. 큰 영애에서 대통령으로 ‘다시 돌아온’ 박근혜처럼 남산자유센터 역시 살아남았으나 바뀌지 않았다는 점에서 복제품처럼 닮았다. 박정희 개인의 이념 콤플렉스와 지배체계의 반공주의 동원체제를 확고히 다지기 위해 처음으로 추진한 국가 건축 프로젝트의 결과인 이곳은 당대 권력이 건축을 활용해 공간에 얼마나 큰 비의(秘義)를 새겨 넣었는지 생생하게 확인시켜준다. 그러나 여전히 “건축물 본연의 물성이 지속되”듯, 이 센터가 상징하는 박정희시대의 이념은, 그리고 사람들은 여전히 너무 많이 살아남아 있다. 지난 11월 19일, “노무현 전 대통령도 삼성에서 8천억 원을 걷었다”라고 주장한 김경재 한국자유총연맹 중앙회장의 발언이 그렇다. 그는 검찰에 고소당하자 급하게 사과했지만 “자유총연맹 같은 관변단체가 정부 보조를 받으면서 지금도 관제데모를 하고 있는 현실”(연합뉴스 2016.11.21)은 달라지지 않는다.
책에 언급되지 않았지만, 읽다보면 비슷한 역사를 지닌 건물이나 공간을 함께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원 숙소로 지어졌다는 ‘제주 소라의 성’은 을왕리해수욕장에 있는 전경환의 별장을 떠올리게 했다. 제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소라의 성’만큼이나 그 별장 역시 서해 바닷가의 낙조가 아주 아름답게 보이는 자리를 차지하고 서 있다. 다리가 놓이지 않았던 그때 섬이었던 영종도까지 대리석을 운반해 지었을 정도니 그 위세를 짐작할 만하다. ‘소라의 성’이 제주올레 사무국으로 쓰이는 것처럼 권력자 동생의 별장은 까페로 영업 중이다. 유럽 어딘가의 성을 어설프게 따라한 이 건물을 김중업의 건축물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힘의 공백지대를 향해 팽창을 거듭하는 권력의 정념”을 담았다는 점에서만큼은 유사하다.
시민을 위한 도시로
이 책은 건축가의 의지가 획득한 공간적 의미를 동시대의 맥락 안에서 재구축해 읽어낸 결과물이다. 억지스레 돔을 얹어 권위나 위엄을 과장한 외관과 정반대로, 기공식(1969)부터 완공(1975)까지 개헌, 유신, 긴급조치 등을 단행하는 통치권력에 의해 철저히 무력화된 ‘의회민주주의의 본산’ 국회의사당의 이야기가 흥미롭기 그지없다. 군사적 방어 기능을 갖추고 넓은 평수로 분양되어 인기를 끌었던 유진상가의 쇠퇴, 시민과는 거리가 멀었던 각 지역의 시민회관 건립과 1980년 광주를 거치며 재탄생한 공간 ‘광주시민회관’, 시대를 풍미한 건축가 김수근이 치밀하게 설계해 독재권력에 헌정한 ‘치안기계’ 남영동 대공분실, 서울 도심의 명물에서 노숙인들의 근거지로, 이제는 비시민을 추방한 배제의 공간으로 변한 광화문 지하도까지…… 이 눈 밝은 산책자는 21세기 가족로망스의 한국 실사판 ‘캠핑장’에서 중산층의 위기의식을, 혐오와 낯섦 사이 어딘가에 놓여 있는 가리봉동에서 ‘똘레랑스’의 희망을 읽어낸다.
하지만 이 책에 언급된 것처럼 정치사회적 관점과 역사적 맥락, 그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1960~70년대의 건축물들이 ‘박정희-김현옥-김수근 체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면, 요즘 건축물들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에 포획되어 있다. 주택이라 부를 수 없는 공간들이 법적으로 ‘준주택’이라는 명칭을 부여받으면서 고시원이나 다름없는 시설들(원룸텔, 고시텔 등)이 난립하고, ‘반(半) 복층’이라는 ‘웃픈’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애도의 대상도, 멜랑콜리의 공간도 되지 못하는” 건축물의 난립에 익숙해져버린 지 오래다.
세운상가가 김현옥과 이명박이라는 두 시장에 의해 ‘비극과 희극으로 두번 반복’되는 역사를 보여줬다면, 경찰과 법원의 허락에 따라 열렸다 막혔다를 반복하는 청와대 앞 율곡로와 사직로는 역사에 어떤 공간으로 남게 될까? 100만이 밝힌 촛불로 넘실대던 광화문광장은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까? 이번주에도 사람들은 모일 테다. 나 역시 우연찮게 겉과 속 표지가 광화문 일대인 이 책을 들고 광화문 지하도부터 광장까지 거닐어볼 생각이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2016.11.23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