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촛불혁명의 정치적 계승을 위해 필요한 것
석달째 세간을 시끄럽게 하며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스캔들은 우연의 소산이 아니라 오래 누적된 적폐의 일단에 불과하다. 가깝게 보면 ‘이명박근혜’정부 시기 지속된 역주행의 필연적 결과이고, 멀게 보자면 분단체제에 발목을 잡힌 87년체제의 말기적 현상이다. 이 말기적 현상에 저항하고 있는 촛불혁명도 구체제가 청산되고 신체제가 수립될 때 완수된다.
당연한 요구이나 그 실현은 쉽지 않다. 촛불혁명은 전통적 혹은 관습적으로 이해되는 혁명, 즉 비제도적 수단으로 권력을 획득하고, 급진적이고 전면적으로 국가를 개조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시민의 공적 참여를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것을 통해 수구 기득권의 청산, 불평등과 불균형 해소, 그리고 분단체제의 극복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간단하지 않은 과제들을 해결해가는 장기적 과정이다. 그래서 필자는 다소 형용모순이기는 하지만 촛불혁명을 장기혁명이라 규정하고 있다. 그 결과는 혁명적일 터이지만 과정은 지난하고 인내와 끈기를 요구한다. 이 점에서 촛불혁명은 세계혁명사를 새로 써가는 위대한 실험이다. 동시에 혁명적 과제를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개혁 작업을 통해 완수해가는 것은 매우 큰 도전이다.
계속되어야 할 촛불혁명
촛불혁명을 순탄하게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수구 기득권 세력을 압도할 수 있는 개혁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권교체가 매우 중요한 정치적 과제이지만, 그것에만 집착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거에서의 승리가 한국사회가 직면한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것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은 지난 시기의 경험이 잘 보여준다. 그뿐 아니라 선거 승리에 초점을 맞춘 정치공학적 발상은 정권교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얻은 것도 선거구도에 지나치게 의존한 선거운동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볼 때 현재 정국의 흐름을 낙관할 수 없다.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수구의 저항을 압도할 만한 정치적 역량과 비전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야권이 분열되어 촛불혁명의 에너지를 정치적으로 결집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 원인이다. 사실 정당의 분열이 꼭 문제인 것만은 아닌데, 그것은 정치적·사회적 다양성의 표현이자 혁신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촛불을 통해 변화의 방향이 비교적 명확하게 제시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를 계승한다는 세력 내에서 원심력이 커져간다면 이는 큰 문제이다.
현재의 모습으로는 다가오는 대선에서 야권의 누가 승리를 하더라도 수구를 압도할 정치적 우위를 확보하기 어렵다. 이는 새 정부가 개혁 작업을 힘있게 추진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며, 개혁 작업이 지지부진해질 경우 촛불혁명의 진전도 새로운 장벽에 직면하게 할 것이다. 당장 더 큰 문제는 야권이 분열된 상태에서 유력 정당과 후보가 대선 승리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하는 정치공학적 고려가 종종 기득권 세력에 타협적 태도를 취하게 만들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이다. 지난 총선 때처럼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는 프레임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가장 대표적이다.
정권교체만 되면 뭔가 변화할 수 있으니 정권교체를 위해서 다소 타협적인 선택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도 많다. 이런 식의 태도는 촛불혁명의 요구와 거리가 멀다. 현실성만 따진다면 촛불이 가능했겠는가? 촛불은 이미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만들어냈다. 촛불을 계승하겠다고 한다면 더 큰 변화의 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 선거에 가까워질수록 주요 의제를 하나둘씩 양보해가며 다시 정치권의 ‘일상주의’(business as usual) 사고방식에 의존하게 된다면, 촛불은 단순히 자신의 권력획득을 위한 수단 이외에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바로 그때, 선거 승리가 가까이 오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큰 실패를 향해 한발 내딛게 되는 셈이다.
누가 촛불의 진정한 계승자인가
야권의 주요 후보들도 지금까지의 관성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실천할 때 촛불의 에너지를 제대로 결집시킬 길을 열 수 있다. 제대로 된 정책 비전을 제시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중대한 선택을 앞둔 유권자들에게 우리 사회의 큰 변화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선거를 향해 본격적인 채비를 하고 있는 후보들에게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선거일정에 돌입한 이후에도 단일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적절하지도 않다. 단일화에만 의존하는 연합정치에는 현실적인 정치적 힘이 절대적으로 작동하며 국민적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현재 요구되는 것은 야권의 주요 정치세력과 정치인이 자신의 당선에만 집착할 게 아니라 변화를 향한 갈망을 정치적으로 결집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당장 불리하게 보일지라도 촛불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경선이나 선거 방식을 과감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도 한 방법이다.
그 점에서 야권 공동경선에 대한 논의가 주요 후보들의 소극적인 태도로 진지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점은 실망스럽다. 이는 단일화가 아닌 방식으로 변화의 에너지를 정치적으로 결집시킬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또 이를 통해 연합정부의 큰 그림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 내 주류가 이번 대선에 결선투표를 도입하자는 제안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데 이어 공동경선에 대해서도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실망이 더 크다. 이들이 이 두가지 문제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해서 이 방안이 바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다른 이들의 소극적인 태도 때문에 진전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불리하거나 불확실성을 높이는 의제는 일단 막고 보자는 식의 태도는, 개인 차원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었지만 집단지성의 발휘로 큰 변화를 만들어낸 촛불의 정신과 거리가 있다. 이런 식의 태도는 이들에게 시대전환과 체제전환이라는 과제를 맡길 만한가라는 의구심을 갖게 만들고 원심력도 강화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의 완수를 향해 큰 걸음을 내딛게 될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의 지루한 공방전을 반복하게 될 것인가라는 중요한 전환기에 다가가고 있다. 그런데 막상 선거 국면이 본격화하면서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정치과정을 지배하게 된다면, 이는 촛불혁명에서의 이탈을 의미한다. 선거가 시작되니 이제부터 ‘정치’는 우리에게 맡기라는 식의 태도는 더이상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지난 4월 총선 뒤 이들에게 정치가 맡겨졌을 때 이들이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현재의 정치적 가능성도 이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촛불이 만든 것이다. 촛불들에게 함께 간다는 믿음을 주고 촛불이 참여할 수 있는 정치공간을 넓히는 정치세력과 정치인들만이 촛불을 정치적으로 계승할 수 있다. 시민들도 다음의 질문을 가지고 다가오는 선거 국면에서도 주체로 나서야 한다. 누가 촛불의 진정한 정치적 계승자인가?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 정치학
2017.1.2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