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창비주간논평

대선 교육공약, 비평과 제안

이기정

이기정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핵심 교육공약은 서울대·국공립대 공동입학 공동학위제다. 서울대와 국공립대를 사실상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의 핵심 교육공약은 학제개편이다. 초등학교 입학을 1년 앞당기면서 현재의 초중고 6-3-3학년제를 5-5-2학년제로 바꾸는 것이다.

 

서울대·국공립대학 공동입학 공동학위제

 

실행과정의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까? 기초적인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통합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같은 국공립대라도 성격이 천양지차다. 육해공군 사관학교와 경찰대 등을 제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초등교사 양성이 목적인 교육대학교는? 과학기술 육성이 목적인 카이스트, 유니스트, 지스트는? 산업대는? 교원대는? 대학들의 성격과 위상이 너무 달라 통합 대상을 선정하는 데서부터 난관에 봉착할 것이다. 그래도 이것은 다른 난관에 비하면 약과다.

 

서울대를 어떻게 포함시킬 것인가? 서울대는 이제 국립대학이 아니다. 법인화됐다. 정부의 영향하에 있다지만 다른 국립대만큼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서울대 입장에서 볼 때 이 공약은 사실상 서울대 폐지 공약이다. 서울대가 받아들일 가능성이 전혀 없다. 서울대와 전쟁 수준의 갈등과 대립을 거쳐야 하는 일이다. 국공립대통합론자 중에도 서울대를 제외하자는 사람이 나오는 실정이다.

 

또한 캠퍼스 쏠림 현상을 방지할 현실적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통합대학에 입학한 대부분의 학생이 서울대 캠퍼스를 1순위로 지원할 것이다. 지역에서는 교육대나 특수대학을 제외한다면 거점국립대 캠퍼스를 1순위로 지원할 것이다. 이러한 캠퍼스 쏠림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모든 학생에게 서울대 캠퍼스에서 공부할 기회를 무슨 방법으로 줄 것인가? 여기서 생기는 불평등과 불만을 해결하는 일에 통합대학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될 것이다.

 

난관이 과연 이것뿐일까? 그래도 사회적 이익이 크다면 얼마든지 실천해볼 수 있다. 그런데 서울대·국공립대 통합대학은 우리의 교육 문제를 얼마나 해결할 수 있을까? 예컨대 입시문제를 얼마나 해결할 수 있을까?

 

통합대학은 입시 문제 해결에 별다른 기여를 할 수 없다. 학생들은 수십개가 통합된 대학보다는 서울의 명문 사립대를 더 선호할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여전히 그대로다. 경우에 따라선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 대학서열이 존재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통합대학의 위상은 어느 정도나 될까? 서울 소재 명문 사립대의 위상까지 올라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통합 범위 선정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자칫 통합대의 위상이 현재의 거점국립대보다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 국공립대가 통합되면 거점국립대보다 위상이 낮았던 대학들의 위상이야 당연히 올라가겠지만 거점국립대의 위상은 거꾸로 낮아질 것이다. 물론 서울대 효과가 그것을 상쇄하겠지만 한계가 있다. 만약 현실적인 이유로 서울대를 빼고 국공립대 통합을 추진한다면 거점국립대의 위상 저하는 필연적이다. 서울 소재 사립대와 어렵사리 경쟁하는 거점국립대의 위상이 지금보다 낮아지면 어떻게 될까? 서울 소재 대학을 향한 입시경쟁이 현저히 격화될 것이다.

 

학제개편 

 

학제개편 과정의 혼란을 감당할 수 있을까? 예상되는 문제를 생각해보자. 초등학교 입학을 1년 앞당기면 처음엔 만5~6세 아이들이 동시에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한다. 초등학교가 5년으로 줄게 되면 첫해엔 2개 학년이 동시에 졸업해서 중학교에 입학해야 한다. 중학교가 5년으로 늘게 되면 2년 동안 졸업생이 생기지 않아 고등학교(학제개편 이후엔 진로탐색학교와 직업학교)가 2년 동안 신입생을 못 받게 된다. 고등학교를 2년으로 줄이면 처음엔 2개 학년이 동시에 졸업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대학과 사회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대학과 사회는 어떤 해에는 2개 학년 학생을 동시에 받아들여야 하고, 다른 해에는 한명의 학생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에 처하게 된다. 여기서 비롯되는 혼란에 교사수급과 학교시설과 교육과정을 조정하는 데서 비롯되는 혼란이 결합된다. 충격을 완화할 방법을 모색하겠지만 혼란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령인구 감소라는 유리한 조건을 활용해도 과도기적 혼란은 10년 이상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과도기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학제개편으로 얻는 사회적 이익이 크다면 당연히 실행해야 한다. 그런데 학제개편은 우리의 교육 문제를 얼마나 해결해줄까? 예컨대 학제가 개편되면 현재의 주입식 교육이 창의적 교육으로 자연스럽게 바뀔까? 학제는 바뀌었지만 교육내용은 별반 바뀌지 않을 수 있다. 학제개편은 그 자체만으로는 교육의 내용 변화를 보장하지 못한다. 교육의 내용을 바꾸려면 학제개편뿐 아니라 다른 수많은 정책이 실행되어야 한다. 현재의 고등학교를 진로탐색학교와 직업학교로 전환하는 것만 해도 다른 많은 정책이 성공해야 그 내용을 채울 수 있다. 다른 정책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우리 교육은 껍데기만 바뀔 뿐이다. 하지만 학제개편의 혼란 속에서 그 정책들을 성공시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제안

 

서울대·국공립대 공동입학 공동학위제와 학제개편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과도한 입시 경쟁, 심화되는 교육 불평등 현상, 창의력을 죽이는 주입식 암기식 교육 등 우리 교육의 제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다. 두 공약의 약점은 무엇인가? 수단과 목적 사이의 인과관계가 희박하여 수단이 목적의 실현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단을 성사시키는 일 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서울대를 죽이지 않고 활용할 수는 없을까? 예컨대 서울대로 하여금 입시를 백퍼센트 지역균형선발전형과 기회균형선발전형으로 운영하게 하면 어떨까? 이렇게 하면 머지않아 서울대의 위상이 연세대·고려대와 비슷해질 것이다. 서울대로서는 불만일 수 있다. 하지만 서울대가 단독 1위를 하는 것보다 3개 대학이 함께 1위 그룹을 형성하는 것이 사회적으로는 더 바람직하다. 이 정도라면 서울대도 죽자고 거부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국공립대 통합에 들이는 비용과 에너지를 지방 거점국립대의 위상을 높이는 데 집중하면 어떨까? 그것이 더 실현 가능성이 높고 더 확실한 성과를 낳지 않을까?

 

학제개편에 비용과 에너지를 소모하지 말고 학제개편과 함께 추진하려 했던 정책들을 지금의 학제 안에서 추진해보는 것은 어떨까? 학제개편에 들어갈 비용과 에너지를 다른 정책의 실행에 추가로 투입한다면 성공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지지 않을까? 진로탐색학교와 직업학교만 해도 2년제에서 실현 가능한 것이라면 3년제에서도 얼마든지 실현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이렇게 수정하면 공약의 선명도가 떨어져 국민의 주목을 덜 받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공약의 실행 가능성을 높이고 공약의 효과를 확실하게 보장하는 것 아닐까?

 

첨언

 

대선주자 중 체계화된 교육공약을 2012년 대선처럼 공식적으로 발표한 사람은 아직 없다. 앞에서 언급한 문재인과 안철수의 공약은 계속 변할 것이다. 지금도 계속 진화·발전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다루지 않은 남경필 지사의 대표 교육공약은 사교육 폐지다. 사교육 폐지안을 국민투표에 붙여 통과되면 법을 제정해 사교육을 금지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밖의 다른 대선주자들은 아직 뚜렷하게 교육공약을 제시했다고 보기 어렵다. 머지않아 모든 대선주자들이 체계적인 교육공약을 공식 발표할 것이라 믿는다.

 

이기정 / 서울 미양고 교사, 『교육대통령을 위한 직언직설』 저자

2017.2.1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