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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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대선주자들의 ‘페미니즘’이 풀어야 할 과제들

 

백영경

백영경

성평등정책은 ‘여심’을 잡기 위한 정책?

 

‘세계여성의 날’이었던 지난 3월 8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한국여성대회에 참석한 주요 대선주자들은 앞다투어 성평등정책을 발표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한 바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단계적으로 남녀동수로 내각을 구성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초등학교 입학 전 자녀가 있는 부모들을 대상으로 유연근무제와 근로시간 단축을 시행하고, 친족 및 장애인 성폭력에 대해서는 가중처벌할 계획을 제시했다. 다른 주자들의 경우에도 대체로 내각을 포함하여 고위직의 여성비율 확대, 돌봄노동과 보육 지원 방안, 노동시간 단축을 포함한 아빠 육아참여 확대 지원책, 여성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을 내세우고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의 경우에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준수를 통한 남녀 임금격차 해소를 포함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성평등의 이름으로 발표된 정책에 대해 거의 대부분의 언론이 ‘여심을 잡기 위한’ 여성정책이라 보도한 데서도 볼 수 있듯이, 과연 성평등정책이 무엇이며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하는가를 두고 많은 혼란이 존재한다. 가장 큰 오해는 성평등정책이 여성들을 위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대선주자들 역시 성평등정책을 발표한다면서도 개인적인 차원에서 자신이 얼마나 여성친화적인 인물인지를 보여주려 한다든지, 여성 당직자들에게 꽃을 돌리는 식의 이벤트를 벌인 데서 드러나듯이, 실제로 성평등정책을 여성의 마음을 잡아서 표를 얻어낼 수 있는 방법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평등정책이든 여성정책이든 복지 이상이 필요하다

 

물론 현실적으로 성평등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여성 대중이 살아내고 있는 삶의 조건들을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성평등정책이냐 여성정책이냐 하는 구분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는 성평등정책이든 여성정책이든 특정한 집단에 대한 복지정책의 확대로만 제시되고 있을 뿐, 여성혐오 논란에 휩싸인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성평등의 상(像)은 무엇이며, 지난 정부가 추진해온 관련 정책들의 문제는 무엇인지에 대한 평가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성평등의 문제를 복지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의 문제는 일차적으로 성평등이 복지로만 수렴될 수 없는 많은 의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당장 필요한 복지정책마저도 남성에 대한 차별이라면서 반대하는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아에 대한 보육 지원과 같이 특별히 반대할 세력이 없는 사안을 벗어나면 군대, 노동, 성희롱·성폭력 등 대다수의 여성 관련정책들은 여전히 논란 중이며. 그 실행을 위해서는 만만찮은 반대를 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그 한 예가 지난 13일 문재인캠프에서 여성운동가로 알려진 남인순 의원을 여성본부장으로 영입하자,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환영했던 지지자들 중에서도 성폭력 관련 법안이나 군대 관련 발언 등 남의원의 전력을 문제 삼은 일이다. 여성표 얼마 얻으려다가 더 많은 표를 잃을 것이라며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협박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적 논란을 두려워하면서 문 전 대표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여성운동가 출신을 내각도 아닌 캠프에 합류시킨 것만으로도 논란이 일어날 만큼 지금 한국의 젠더갈등은 첨예하다. 그렇기 때문에 갈등사안을 회피한 채 여성복지의 확대로만 접근해서는 그마저도 실현을 보장하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차별금지법과 낙태죄 폐지라는 뜨거운 감자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 대중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대선주자들이 회피하는 대표적인 사안으로 차별금지법과 낙태죄 폐지가 있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시작해서 4년여에 걸친 법안검토와 의견수렴 과정을 토대로 법무부가 2007년 만들었던 차별금지법안은 구체적으로 차별을 판단하고 시정을 강제할 수 있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직접적인 차별뿐 아니라, 중립적인 기준을 적용한 듯 보이지만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게 불리한 결과를 야기하는 간접차별에 대한 금지조항까지 담고 있어 일찍이 여성운동이 앞장서서 추진했던 법률이다. 그런데 입법이 예고되자마자 20여개 차별금지 사유 중 성적지향, 학력, 출신국가 등 몇몇 사유에 대한 차별은 금지되어서는 안 된다는 일부 집단의 반발에 부딪혔다. 그 결과 7가지 차별금지 조항이 삭제된 채로 심의되었으며 그나마도 결국 통과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차별금지법 제정이 다시 추진될 때마다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은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가로막히면서 결국 아직까지도 한국에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이 부재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차별금지법을 ‘성소수자’ 차별금지법이라는 식으로 몰아가는 중이지만, 성차별의 실질적인 해소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법이 차별금지법이다. 차별의 법적 시정을 강제할 수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면서 성평등은 추진하겠다는 것은 자가당착에 지나지 않는다.

 

낙태죄 폐지의 경우에도 형법상 낙태죄 조항이 실제로는 사문화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대선주자들은 폐지 추진에 미온적이거나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2010년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주도하여 낙태 시술 의사들과 여성들을 고발하면서 인공임신중절이 일시에 중단되었던 소위 ‘낙태정국’이나 작년 9월 보건복지부가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하면서 시술 의사의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안을 발표하자 의사들이 전면적 시술 거부를 선언했던 것을 상기한다면 낙태죄는 언제든 살아나서 여성들을 공포로 몰아넣을 수 있는 조항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년 가을 이후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낙태 처벌에 반대하는 대중시위가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낙태금지를 저출산을 타개할 방안으로 간주하면서 끝없이 여성들을 낙태죄의 굴레로 옭아매려고 하는 시도에 대한 저항은 앞으로도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낙태를 좋은 일은 아니지만 일어날 수도 있는 일로 보면서, 여성들에게는 언제 어떻게 누구와 아이를 낳을지 아니면 낳지 않을지를 자유롭고 안전하게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태어나는 아이에게는 어떠한 사회적 조건에서 출생하든 삶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노력 없이, 태어난 생명들에 대해서 장애와 빈부, 부모의 혼인여부 등 갖가지 기준으로 차별을 지속하면서 낙태 행위만 처벌해서는 낙태 자체가 줄어들지도 않을 것이며 출산율의 상승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지금 대선주자들이 아빠의 육아참여 확대를 지원하겠다고 나서면서도, 낙태 행위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지우는 법을 그대로 두는 상황은 이들의 여성정책이 얼마나 모순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변화하는 사회에 맞는 새로운 가치를

 

앞으로 국가를 운영하겠다고 하는 정당과 정치인들의 정책이 중요한 것은 그동안의 국가정책이야말로 현재 사회적으로 만연한 여성혐오 논란이나 차별과 권리를 둘러싼 논란을 야기한 주 요인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저출산위기론을 이야기하면서 보통의 시민들이 실제로 일하고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개선하기보다는 출산을 국가와 민족을 위기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여성시민이 다해야 하는 의무로 규정하면서 보수적인 가족가치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현재 시민들이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삶의 현실과 지향성을 도외시한 채 여성시민들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여온 결과 젊은 층에서는 오히려 결혼과 출산에 대한 거부감만 높아지는 중이다. 또한 정부는 성평등 대신 양성평등이라는 용어만을 고집하면서 양성평등의 대상에서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정책을 시행하였고, 인권조례나 차별금지법 제정도 방해해왔다. 결국 지난 정부들의 문제는 단지 성평등을 제대로 추진하지 않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양성평등’과 ‘저출산대책’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면서 오히려 차별을 조장함으로써 여성들을 위한 조치를 역차별 논란에 휩싸이도록 하는 원인을 제공했으며, 여성의 존재이유를 출산에서 찾는 행위를 지속해온 데 있다.

 

그러므로 대선주자들이 정말로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면 단지 누구에게 어떠한 복지혜택을 주느냐 하는 수준의 공약경쟁을 넘어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지난 정권들에서 여성정책의 기조를 이루어온 가치에 대한 반성을 포함해야만 하고, 각기 다른 욕구와 지향, 정체성을 가진 시민들이 어떻게 차별 없이 어울려 살아갈 것인지 그림을 그리려는 노력을 회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백영경 /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2017.3.1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