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인양된 세월호에서 우리가 찾아내야 할 것들
참사가 일어난 지 거의 3년이 다 돼서야 세월호가 인양되었다. 미수습자 가족들을 비롯해 모든 피해자 가족들이 얼마나 기다려왔던 순간이었던가? 어두운 바닷속으로부터 세월호가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내던 그 새벽, 많은 국민들이 잠을 못 이루고 그 순간을 지켜봤다. 미수습자가족들과 함께 그 광경을 지켜봤던 4.16연대 ‘미수습자 수습과 선체인양 위원회’의 양한웅 위원장은 ‘꿈처럼 세월호가 올라왔다’며 그 순간을 전했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데 왜 3년이나 걸렸던가? 거친 물길이나 기술의 한계 탓으로 돌리기엔 석연치 않다. 이 턱없는 지체에는 필경 세월호 인양을 정치적 부담으로 여겨왔던 권력의 미필적 고의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인양된 세월호와 괴물의 죽음
흐린 물속에서 서서히 솟아오르던 녹슨 세월호의 누운 선체는 마치 거대한 물고기의 사체 같았다. 내겐 흡사 성경에 나오는 거대 바다괴물 리바이어선(Leviathan)의 사체처럼 여겨졌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세상을 설명했던 계몽사상가 홉스는 무질서와 혼란을 극복할 해결책이 절대국가에 있다고 생각했다. 바다괴물 리바이어선과 같은 거대한 인공인간을 만들어 주권을 양도함으로써 국민을 통제하면서 동시에 보호하도록 사회계약을 체결하면 자연인의 본성인 무질서와 혼란을 극복할 수 있다고 홉스는 생각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 가깝게는 근대국가와 대의제민주주의라는 관념이 생겨난 이래 인류의 근현대사는 국민을 보호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거대권력이 어떻게 그 주인의 기대를 배신하고 괴물 그 자체가 되는가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세월호참사와 지난해 드러난 국정농단 사태는 그 괴물의 진면목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떠오르는 세월호 선체를 보면서 국민 위에 군림하던 괴물의 죽음을 연상하게 된 까닭이다.
3년 전 그날, 모두가 생방송으로 참사를 지켜보는 가운데 국가는 국민을 위험에서 구할 아무런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국가안전보장’의 사명을 성실히 수행하겠노라고 선서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참사당일 행적은 아직까지 비밀에 부쳐지고 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자신은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국가정보원은 인허가와 인테리어까지 일일이 간섭해왔고 심지어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에까지 자신의 관리하에 있는 선박임을 명시했었으면서도 세월호의 침몰 소식은 ‘뉴스를 통해 알았다’고 발뺌하기에 급급했다. ‘국가유공자도 아닌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가다 교통사고 난 것에 대해 왜 특혜를 주느냐’는, 있지도 않은 특혜를 비난하는 가짜뉴스가 관변단체들을 통해 조직적으로 유포된 것도 같은 발상이 야기한 폭력이었다.
세월호참사는 도대체 ‘국가’는 무엇이며 ‘안보’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되묻게 한다. 그것은 주권자인 국민의 안전과는 상관없는 더 고차원적인 어떤 것이란 말인가? 국민을 제외한 텅 빈 ‘국가’ 그 자체를 보호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국가의 구성원 개개인을 보호하는 것보다 왜 우선되어야 하는가?
세월호 선체가 목포항을 향해 출발한 금요일 새벽,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이 확정되었다. 국민과는 무관하게 존재하고 군림하려 했던 권력의 몰락과, 세월호가 미수습자와 희생자 가족에게 돌아온 날이 같다는 것은 설사 우연이라 할지라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온전한 수습과 조사를 안심할 수 없는 이유
박근혜정권을 탄핵시킨 주권자들이 이제 해야 할 일은 녹슨 선체로부터 국가가 지키지 못한 시민을 끝까지 찾아내 그들의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희생을 위로하고 추모하는 것, 거꾸로 선 권력이 감추어왔던 진실을 밝혀내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 무엇보다도 근엄하게 ‘멸사봉공’과 ‘국가안보’를 부르짖으면서 장막 안에서는 특권과 사리사욕의 잔치를 벌여왔던 죽은 국가의 폐허에서 그 존립근거였던 주권자의 안전과 행복을 되살려내는 일이다.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의 역할이 막중하다. 미수습자 수습, 침몰원인 등에 관한 선체조사, 그리고 선체의 보존 여부에 대해 독립적으로 ‘지도·점검·판단’하도록 위임된 이 위원회는 피해자 가족들의 제안으로 국회가 여야합의로 특별법을 제정함으로써 출범할 수 있었다. 이 위원회가 구성되지 않았더라면 조사대상인 해수부가 인양과 수습, 선체의 조사와 처리를 전적으로 담당하는 미덥지 못한 상황이 초래될 뻔했다.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피해자 가족단체에서 3인, 여당에서 2인, 바른정당을 포함한 원내교섭단체 3개 야당에서 각 1인씩 추천받은 총 8인으로 구성된 선체조사위원회는, 아직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으로부터 임명장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조사인력과 예산도 없이 해수부가 주도하는 인양과 선체조사 작업을 ‘지도·점검’하고 있을 따름이다. 게다가 세월호 선체는 인양 과정에서 닻, 날개, 화물출입문 등이 절단되었고, 오랜 인양준비 과정과 잦은 ‘시행착오’로 인해 수많은 크고 작은 구멍이 생겨나거나 찢겨지는 등 이미 심각하게 손상된 상태다. 이대로는 선체조사위가 침몰원인을 제대로 찾아낼 수 있을지도 걱정이지만, 천공 이후 유실방지막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아 미수습자의 유해나 유류품 중 일부가 유실되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전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노골적으로 방해했던 해수부는 선체조사위원들에게는 과거와는 달리 짐짓 협조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이 미덥지 않은 정부기구의 고위층들이 박근혜정권의 은폐·방해 행각의 행동부대였다는 사실이 변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인양 후 미수습자 수습을 빌미로 세월호를 절단하여 증거를 훼손하려 했고 피해자 가족들의 보존요구에도 불구하고 훼손된 선체를 폐기처분하고자 했었다. 검증되지 않은 절단에 의한 수습 방안을 해수부가 고집함에 따라 조속한 수습을 바라는 미수습자 가족들과 선체의 온전한 인양과 조사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믿는 다른 피해자 가족 간에 불필요한 긴장이 조성되기도 했었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일은 선체조사위원들의 ‘지도점검’과 유해발굴전문가들의 일치된 조언에 의해 선체절단이 침몰원인 규명뿐만 아니라 미수습자 수습에도 치명적인 방식임이 분명해졌다는 점이다. 이제 해수부도 더이상 절단을 고집할 수 없게 되었고, 이로써 미수습자 수습 및 선체조사를 둘러싼 미수습자 가족들과 다른 희생자 가족들의 잠재적인 갈등요인도 사라지게 되었다.
치유와 연대가 더욱 간절한 시간
박근혜정권과 해수부는 지난 3년여간 진실은폐와 정권보호를 위해 미수습자와 다른 피해자 가족들, 단원고 피해자 가족과 일반인 피해자 가족, 세월호 피해자 가족과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갈등을 조장해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세월호가 거치된 목포신항에서도 해수부는 미수습자 가족만 신항 내에 머물 수 있도록 하고 다른 피해자 가족들의 참관범위는 특정시간대로 대폭 제한하는가 하면, 시민의 참관은 아예 금지하는 방식으로 미수습자 가족, 다른 가족, 국민을 구분하고, 이들 간의 공감과 연대의 여지를 축소하려 하고 있다. 해수부의 이런 태도는 천안함 인양 당시 정부가 나서서 시민들의 참관을 권장하고 직접 안내프로그램까지 운영했던 것과는 상반된다. 여전히 그들은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가족과 국민의 염원이 불순하고 위험한 무언가로 여기는 게다.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과 구속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선 안보국가의 부조리와 폭력은 사라지지 않고 끈질긴 생명력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게 괴물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인양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다.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작동하는 나라는 아직 우리에게 오지 않았다. 다만, 죽은 국가의 사체처럼 녹슨 세월호가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영혼과 육신, 그리고 진실을 품고 목포신항에 길게 누워 있을 따름이다. 앞으로 갈 길이 멀다.
박근혜 없는 참사 3주기… 주권자를 외면한 박근혜정권을 침몰시키고 세월호를 인양하기까지 정권의 온갖 분열공작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가족들은 말할 수 없는 인내심을 발휘하며 강력한 통합력을 유지해왔다. “가족이기에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다짐을 새긴 노란 조끼를 입고 세월호 가족들은 지금도 세월호가 거치된 목포신항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지금까지 이 투쟁에 부지불식간에 앞장서왔던 가족들은 사실 치유받고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이 선두에서 더 상처입고 피 흘리지 않도록 모두가 협력해야 한다. 이제 시민사회와 언론과 정치와 국가가 그들의 편에서 그들을 보호하고 그들이 진실과 정의와 존엄과 안전에 관한 권리를 마땅히 누리도록 도와야 한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국민들의 서약을 실천하는 일이 더욱 간절한 시간이 찾아왔다.
이태호 / 4.16연대 상임운영위원,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2017.4.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