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마르셀 푸르니에 『프랑스 인류학의 아버지, 마르셀 모스』
학문과 정치라는 두 바퀴로 달려간 삶
―마르셀 푸르니에 『프랑스 인류학의 아버지, 마르셀 모스』, 변광배 옮김, 그린비 2016
마르셀 푸르니에(Marcel Fournier)는 에밀 뒤르껨(Émile Durkheim)과 마르셀 모스(Marcel Mauss)에 대한 전기를 출간했다. 뒤르껨과 모스는 삼촌과 조카 사이였고, 삼촌 뒤르껨에게 모스는 제자이자 동료이자 지적 계승자였다. 루시앙 페브르가 “뒤르껨, 모스 앤 컴퍼니”(Durkhiem, Mauss & Co.)라고 불렀을 만큼 둘 사이는 긴밀하고 그들이 맺었던 지적·정치적 교류 범위는 매우 동질적이었다. 그래서 한 사람에 대한 전기적 연구 없이는 다른 한 사람의 전기적 연구가 가능하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니 전기 작가의 관점에서는 두 사람 모두의 전기를 쓰는 것이야말로 둘의 미간행 초고와 사신(私信)까지 샅샅이 뒤져야 했던 노고를 보상받는 방식일 것이다.
하지만 조카의 삶이, 1차대전의 여파 속에서 때 이른 죽음(59세)을 맞았던 삼촌 뒤르껨이 걸었을 행로를 이어간 것이기만 했다면, 모스 전기의 가치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푸르니에가 지적하듯이 “모스를 뒤르켐의 상속자로 (…) 규정하는 것은 그에 대한 시각을 흐릴 수 있다”(13면). 모스는 뒤르껨 못지않은 독자적 중요성을 가진 학자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점 가운데 하나는 푸르니에가 삼촌의 전기(2007년)보다 조카의 전기(1994년)를 더 먼저 썼다는 것이다. 삼촌에 대한 연구는 조카의 젊은 시절 이론적 작업을 상당 정도 설명해줄 수 있으니, 작업상의 편의를 생각하면 그렇게 설득력 있는 출간순서는 아니라 하겠다. 그 이유를 추정해보자면, 뒤르껨의 전기 작업이 모스의 전기 작업보다 더 까다로운 요소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거나 푸르니에에게 삼촌보다 조카의 삶과 연구가 더 흥미로웠기 때문일 텐데, 내 보기엔 후자가 더 그럴 듯한 이유로 보인다. 우리 경우에도 번역 대상이 된 것은 삼촌이 아니라 조카의 전기다. 그것은 아마도 현재의 관점에서 볼 때, 지적·정치적으로 더 흥미로운 인물이 조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유는 두가지인 듯하다. 우선 생몰연대의 면에서 뒤르껨에 비해 모스의 현재성이 더 높다. 뒤르껨은 1858년에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한해 전 1917년에 죽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장기 19세기’ 안에 말끔히 편입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1872년에 태어나 1950년에 사망한 모스는 삼촌과 달리 1차대전은 물론 러시아혁명과 파시즘의 시대 그리고 2차대전을 고스란히 겪어냈는데, 아무래도 지금의 관점에서 더 흥미로운 것은 모스가 삼촌이 떠난 뒤에 겪은 시대라 할 수 있다.
모스의 시대가 가진 흥미로움은 정치적 격변하고만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 모스가 매우 저명한 지식인으로 활동하던 1920~30년대 빠리는 맑스주의와 제3인터내셔널의 영향력을 커지고 있었고, 프로이트주의가 맹렬히 수용되었으며, 초현실주의운동과 입체파 미술이 유행하고, 재즈와 더불어 드뷔시와 라벨의 음악이 울려 퍼지던 곳이었다. 모스의 인류학적 작업들은 조르주 바따유나 모스의 제자였던 미셸 레리스와 로제 까유아를 경유하여 초현실주의운동과 접맥되었으며, 여러모로 삼촌과 달리 보헤미안적 기질이 넘쳤던 모스는 삐까소와 교류하고 재즈 음악을 즐겼다. 모스의 전기를 통해 우리는 이런 사회사의 세밀한 장면들 속으로 곧장 들어가볼 수 있는 것이다.
또다른 이유는, 모스가 한평생 시민적이고 정치적인 삶과 학문적 삶을 양립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사실 뒤르껨은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해 공적 지식인으로 열렬히 활동한 시기를 제외하면 비교적 프랑스 대학체제 속의 삶에 충실했고, 대학체제 내에 새로운 학문과 방법론과 지적 협동체제와 실증적 탐구정신을 확립하는 투쟁에 몰입했었다. 그러나 조카 모스는 학문적 작업에 좀더 몰두하라는 삼촌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정치활동에 계속해서 헌신했다. 그는 뤼마니떼(L'Humanité)를 비롯한 여러 사회주의 기관지의 기자로 활동했으며, 협동조합운동에 열정을 바쳤고 노동조합운동과 상호공제보험 설립을 지원했다.
이렇게 프랑스 사회주의의 전통 속에서 항상 아래로부터의 경제적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모스의 다음과 같은 말은 지금도 현재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 노동조합주의와 협동조합은 “사회주의적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직접적인 수단,” 다시 말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가능한 한 프롤레타리아로 하여금 지금 당장 미래의 삶을 살게 하고, 가장 완벽한 공동체, 가장 합리적인 단결, 가장 자율적인 활동을 보장해주는 수단”(281면)이다. 그런 운동을 통해서 “미래 사회가 노동자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 모든 이점을 맛보게” 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자본의 지배 한복판에서 사회주의 자본의 진정한 병기고를 세울 수 있게 될 것이다”(302면).
그는 1925년에 「볼셰비즘에 대한 사회학적 평가」라는 글을 발표하는데, 이 글은 필자가 보기에는 러시아혁명 직후에 쓰인 볼셰비즘 평가 가운데 가장 명석하고 타당한 것 가운데 하나다. 모스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가 뒤르껨적 정신에 입각해서 엄격한 분석을 시도했을 뿐 아니라, 당대의 조건에서 밑으로부터 사회주의적으로 조직된 경제적 삶의 건설에 깊이 헌신한 경험을 가졌기 때문이다. 같은 선상에서 조명할 때만 그의 저명한 『선물』(Essai sur le don)이 놀라운 비약을 경유해서 원시적 경제체제에 대한 연구를 협동조합운동과 복지국가를 향한 지향과 연결하게 되는 지적 경로를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점들 외에도 이 책은 프랑스 대학체제와 대학 내 정치에 대해서도 매우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해준다. 모스는 꼴레주 드 프랑스 교수직에 두번의 도전 끝에 입성하는데 이 책은 선발을 위한 기존 교수들의 투표 내용까지 상세히 전해준다. 모스가 펼친 지적 세계가 레비-스트로스도 귀르비치도 아롱도 아닌 부르디외에 의해 제대로 계승되었음을 지적하는 마지막 부분에서는 저자 푸르니에가 부르디외의 제자임이 은연중에 드러나기도 한다(그래서 슬쩍 웃게 된다). 국역본 기준 천 페이지에 이를 정도로 두꺼워 누워서 뒹굴대며 읽을 도리는 없지만, 프랑스 사회주의, 협동조합운동, 인류학사, 사회학설사, 대학사, 전쟁과 지성사 등 다양한 동기에서 시작된 독서에 모두 보상을 제공할 것이며, 그런 동기를 다른 독서 동기로도 이어줄 수 있는 책이고, 전기적 작업의 면에서도 하나의 모델이 될 만한 책이다.
김종엽 /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7.4.12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