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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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다시, 광주와 함께 새 시대로
―황석영·이재의·전용호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전면개정판), 창비 2017

 

 

geweg누군가에게 광주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이다.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어떤 상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1980년 5월에 그 도시에 살았던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살지 않았던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에게 ‘광주’는 호남의 도시가 아니라 슬픔의 도시가 되었다. 1980년 5월 이후, “광주”라고 발음할 때마다 묘한 슬픔이 환기되곤 했었다. 나는 광주에 가본 적도 없고, 그 열흘간의 항쟁에도 당연히 참가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1984년 5월, 내가 다니던 독문학과의 과사무실에서 오래된 잡지 한권이 우연히 눈에 띄었다. 시체들이 거리에 나뒹굴고 있는 사진과 함께 “Blutiger Aufstand in Südkorea”라는 제목이 보였다. “피의 봉기”였다. 호기심에 들춰보니 1980년 광주의 현장이 화보와 함께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오래지 않아 누군가의 자취방에서 광주 비디오 상영회가 열린다며 같이 가자는 은밀한 제안이 들어왔다. 자취방에 갔더니 몇명이 이미 와 있었다. 이불로 창문을 가리고 독일에서 몰래 들여온 광주 비디오를 보았다. 나는 그렇게 화질 나쁜 비디오를 통해 광주와 접속하였다. ‘기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선은 기록의 나라였다. 비록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왕이라고 해도 본인이 남긴 기록의 초안을 열람하지 못할 정도로 기록물 관리가 엄격했다.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지금 여기’를 왜곡하지 않겠다는 기록의 원칙이 조선에는 존재했다. 그랬기에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와 『심양장계』, 『추안급국안』 같은 거대한 기록물을 남겨 후세에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심양장계』(정하영 외 옮김, 창비 2008)는 볼모로 끌려가 심양에서 생활하고 있는 소현세자의 하루하루를 낱낱이 기록한 보고서다. 이 보고서를 읽을 때에도 묘한 슬픔을 느꼈다.

 

이번에 창비에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전면개정판(초판 1985, 이하 『넘어넘어』로 약칭)을 출간했다. 초판에서와는 달리 황석영 외 이 기록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본 순간, 명치가 쩌르르 아파왔다. 정권의 탄압을 우려해 이름을 숨겨야만 했던 다른 많은 기록자들이 비로소 제 이름을 찾았다는 어떤 감동이 전해져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초판에 비해 두배나 많은 자료와 내용이 실렸다고 하니, 5·18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넘어넘어』를 처음 본 것은 1985년 5월이었다. 학교 앞 인문서점에 진녹색 바탕에 연두색의 큼직한 글씨만 가득한 책 한권이 나타났다. 황석영이라는 이름에 신뢰를 갖고 있던 우리는 『넘어넘어』를 무조건 샀다. 『넘어넘어』는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지하에서 유통되는 위대한 베스트셀러였다. 『넘어넘어』는 스스로 의미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넘어넘어』를 읽고 미술패들은 판화를 찍어냈고 문학패들은 오월시 낭송을 했으며 연희패는 마당극을 했고 연극패는 연극을 올렸다. 사회과학 동아리는 학술토론회를 개최하였고 학생회는 오월제를 열었다. 학교 밖에서는 교회를 찾아다니며 일요일 저녁 예배 대신 시낭송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교회 밖에는 정보과 형사들과 전경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넘어넘어』는 그렇게 끊임없이 확산되었다.

 

‘광주 오월 민중항쟁의 기록’이라는 부제를 가진 한권의 책이 이토록 많은 2차, 3차 생산물을 만들어낸 것은 기록물이 갖고 있는 현장성과 진실성 때문이었다. 황석영과 광주가 결합된 보고서였으니, 젊은 우리는 그 기록을 신앙처럼 믿었고 행동했다. 『넘어넘어』는 광주 밖에서 광주를 복제해내고 재생산하는 신비한 힘을 갖춘 책이 되었다.

 

1985년만 하더라도 항쟁에 참가했던 광주시민이 직접 제작한 기록물은 거의 없었다. 『넘어넘어』가 출간되기 전에 대학가를 떠돈 광주항쟁의 기록물은 유럽 특히 독일에서 건너온 잡지와 비디오가 거의 유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의 형태가 아니라 팸플릿이나 유인물의 형태로 제작되어 지하로 흘러 다니던 기록물은 선동의 요소가 훨씬 강해서 기록물이라고 하기에는 왠지 역부족이었다. 『넘어넘어』는 광주항쟁 5주년을 맞이하던 때에 맞추어 등장한 비공식적인 공식 기록물이었다. ‘가리방’으로 긁고 등사기에서 찍어낸 유인물이 아니라 번듯한 책자로 출간된 『넘어넘어』가 32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흐른 뒤에 전면적으로 개정되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다. 참으로 감격스러웠다.

 

지난 10년, 2008년부터 시작된 보수정권 아래서 5·18과 광주는 심각한 역사왜곡에 시달려야 했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과 폄훼는 도가 지나칠 정도로 극심했고,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서도 조롱을 퍼붓고 부인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북한 노래로 둔갑되었고, 제창을 거부당했다. 객관과 진실은 증오와 혐오로 가려졌고 5·18은 부정당했다. 이는 황석영의 말대로 대한민국이 안보국가이기 때문에 발생한 일련의 현상이었다. 대한민국이 6·25체제 위에 서 있는 안보국가의 정체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반공이라는 이면헌법의 이데올로기를 폐기하지 못하는 한, 진정한 민주주의는 오지 않을 것이다. 『넘어넘어』는 민주주의를 향한 대장정이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과 고통의 가시밭길이었다는 것을 기록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광주항쟁에 대한 터무니없는 왜곡과 공격이 난무하는 가운데 입술을 깨물며 준비를 했고 그사이에 ‘촛불혁명’이 진행되었다. 5·18 광주와 세월호의 어린 넋들이 함께하는 이 빛나는 계절에 위대한 시민들은 세상을 바꾸어놓았다. 우리들의 책은 이제 피와 눈물이 아니라 정의롭고 평화로운 공동체를 향한 이정표가 되어야만 한다.”(황석영, 머리말 「이제 또다시 어둠을 넘어서」 중)

 

그렇다. 우리는 1980년의 5·18에서 2014년의 4·16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많은 죽음을 넘고 시대의 어둠을 넘어 조금씩 전진해왔다. 1985년 5월에 출간된 『넘어넘어』의 운명이 5·18 광주를 복제하고 재생산하는 것이었다면 2017년 5월에 전면개정되어 출간된 『넘어넘어』는 대한민국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촛불등대며 이정표가 되어야만 한다. 『넘어넘어』를 통해 5·18로 6·25를 넘어간다면 정말 좋겠다.

 

정도상 / 소설가

2017.5.1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