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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부 대북정책 제언과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우려

이정철

이정철

새 정부가 취임했다. 인수위 과정 없이 바로 직을 맡은 문재인 대통령이 직면한 외교안보 현안과 관련해서 필자는 세가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대북 인식, 대북정책 그리고 한미정상회담이 그것이다.

 

대북 ‘인식’의 대안적 전제

 

최근 북한을 제대로 보기 위해 필요한 키워드는 다음의 세가지다. 첫째, 『뉴욕타임즈』가 북한 정권의 행태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합리적 광기’(Rational irrationality)라는 개념이다. 김정은을 폭정군주로 다루는 광인(mad man)이론보다는, 북한 정권이 자기 이익을 정확하게 이해할 능력이 있고 심지어 무모해 보이는 도발마저도 상대방과의 협상을 위해 의도적으로 무기화하고 있을 만큼 북한의 정책 결정 과정은 합리적이라고 보는 이 개념을 대북 인식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다음은 ‘예측 가능한 예측 불가능성’(predictable unpredictability)이다. 주류 언론들이 북한의 도발을 예측 불가능한 김정은의 괴벽 탓으로 돌리지만 실제 북한의 도발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은 만들어진 관념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북한은 쟁점을 둘러싼 협상이 결렬될 경우 이에 대한 반응으로 도발이라는 옵션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 북한의 도발은 군사기술적 요구에 따른 주기성을 띤 실험인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의 예측 불가능한 도발이 사실은 예측 가능한 패턴을 띠고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물밑협상 담당자들은 이를 예측하고 있었던 경우도 있다. 전략적 인내 노선이 강조해온 북한 행태의 예측 불가능성에서 얻는 이익보다는 우리의 예측 능력을 강화하고 그 예측에 대해 공론화하는 것이 더 큰 이익이 되는 시대가 왔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마지막은 독재국가의 ‘레질리언스’(resilience)―회복력, 탄력성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는―이다. 살아남은 권위주의·독재국가들이 생각보다 레질리언트하게 반응하는 것을 본 정치학자들은 최근 이들 국가에 대한 제재가 곧 레짐 붕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북한 역시 오랜 제재를 견뎌낸 노하우가 있고 잔인한 권력정치의 결과도 예상과는 달리 권력 안정성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국제정치와 권력정치가 꼭 도덕적 정당성을 담보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가 대북 인식에서도 일관되게 작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바다.

 

결국 이 세가지 키워드는 지난 10년간 미국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한국 보수정부의 궁합이 만들어낸 대북정책과는 근본적으로 결이 다른 인식적 전제의 필요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북한의 비합리성과 정치잔혹극을 핵심으로 하는 북한 예외주의에 대한 대안적 개념들인 것이다.

 

대북 ‘정책’과 숙적관계

 

대북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숙적관계(rivalry)에서의 탈피이다. 사실상 국내정치화된 주류 담론인 종북론마저 대북 숙적관계의 대내적 안전장치일 따름이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남북관계를 숙적관계 측면에서 보는 시각은 시대착오적이다. 한국과 북한은 각기 다른 시간대를 달리고 있다. 이 시간대의 차이를 일치시키는 방법은 북한 즉 일방을 해체시키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시간대를 달리고 있는 양자를 인정하고 그 공존을 모색하는 것이다. 어차피 남북은 비대칭적이다. 안보전략에서도, 남북관계에서도, 경제 수준에서도 남과 북은 각기 다른 수단에 의한 미래를 그리는 비대칭전략을 수용하고 있다. 이를 억지로 동일 시간대로 끌어들여 이기고 지고의 제로섬 패러다임으로 전락시킬 이유가 없다. 숙적관계의 탈피는 곧 상호성의 승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음은 대안적 진실(alternative facts)의 문제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주류 언론의 사실 선택 방법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과정에서 공론화된 개념이다. 실상 정책의 실패는 사실검증(fact checking)의 실패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부정적 의미가 된 대안적 진실이라는 용어를 필자가 강조하는 것은 지난 10년간 대북정책의 실패가 반복된 과정을 지배해온 주류적 사실검증 절차를 고집하기보다는 새로운 사실검증에 따른 대안적 정책 수립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안적 진실에 주목할 때 대안적 정책이 제출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기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우려

 

끝으로 대외정책, 특히 한미정상회담의 문제이다. 필자는 6월 말에 개최하기로 한 한미정상회담에 대해 일정한 유보를 표명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첫째,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구 관료들에 기반한 회담이라는 점이다. 윤병세 외교부장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의 정책라인이 여전히 건재하고 그들이 준비하는 대미 접촉의 한계는 뻔하다. 새 대통령의 소통 능력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협상의 상대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대국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칫 준비되지 않은 협상이 패러다임 갈등을 노출할 경우 문재인정부에 외교적 재앙이 될 소지를 부인하기 어렵다.

 

둘째,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및 대외정책 기조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는 점이다. 그리고 대통령에게는 절대적 시간이 부족하다. 지금의 정상회담은 사실상 인수위 기간 중에 이루어지는 정상회담이나 마찬가지이다. 준비가 얼마나 되었는가 하는 현실적 전제를 회담의 당위가 무시할 경우 실수는 실수를 나을 가능성이 높다. 대선 TV토론 과정에 드러난 ‘Korea passing’(한국 건너뛰기) 해프닝은 우리 대통령에게 시간이 더 필요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극단적 사례이다. 한미정상회담은 G20회의 같은 다자회담에서 상견례 형식으로 진행해도 충분하다.

 

요컨대 대국과의 협상은 도구적 이성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아내자는 식의 거래적 사고는 대국과의 협상에서 주고받기보다는 주고 주고의 게임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대국과의 비대칭거래에 임하기 위한 전제는 대국에 우리의 이익이 무엇인가를 확고히 전달하는 것이다. 흔히 이익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이야말로 거래의 대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중약국이나 약소국에 이익이라는 것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사활적 이슈인 경우가 많다. 이같은 핵심이익은 정의하고 인정받는 것이지 주고받기로 그 근거를 훼손시킬 사안이 아니다. 거래적·도구적 이성의 과잉은 장기와 단기 이익, 정당성 투쟁과 거래를 혼동하게 할 수 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주요 안건인 한미 FTA, 사드 배치, 북핵 문제 등과 같은 현안을 두고 담판하기에는 준비기간이 너무 짧다. 이를 잘 아는 외교부 관리들이 대통령의 등을 떠미는 것은 관료들의 장관 길들이기, 관료 출신 장관들의 대통령 길들이기임을 우리는 경험에서 알고 있다. 송민순 해프닝의 본질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이정철 /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17.5.1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