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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특집 1] 한미FTA, 노무현정부의 자살인가

이일영 | 한신대 교수, 경제학

 

이제 곧 한미FTA 협상이 본격 시작된다. 어차피 국제협상의 기차에 올라탔으니, 중간에 멋대로 뛰어내리면 상처가 클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준비상태에서 내년 3월까지 협상을 끝내려고 과속한다면, 그것은 현정권으로서는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앞으로 1년은 노무현정부와 국가의 공공기능에 있어 운명의 시간이 될 것이다.


구체적인 협상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국의 산업이 일방적으로 미국에 지배되는 사태를 예단할 필요는 없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씨나리오에 따라 제조업은 완전 개방, 농업은 80% 개방, 써비스는 20% 개방을 가정할 때, 한국의 산업이 일패도지(一敗塗地)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 같지는 않다. 시장통합의 방향으로 가면 국내총생산이 증대하는 것도 교과서적 상식에 속한다. 물론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생산성의 증대까지 가정해서 GDP 7.75% 증가를 추정한 것은, 너무 심하다 싶기는 하다.

 

그런데 미국과의 시장통합이 깊고 빠르게 진행될 경우 문제는 좀 달라진다. 일본이나 중국, 아세안(ASEAN)과 FTA를 추진할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개발의제가 많이 포함되나, 미국은 씨스템 전환에 가까운 광범위한 제도개혁을 의제로 삼는다. 미국은 싱가포르, 호주와의 FTA에서 금융, 의료, 교육, 방송, 검역, 공기업, 정부조달 등 공공분야에 대한 구조개혁을 요구한 바 있다. 이런 식으로 협상이 되면, 한국에는 미국형 모델로 씨스템을 전환하는 외부적 쇼크가 가해진다. 쇼크는 바로 ‘전환 불황’으로 이어지곤 한다. 쇼크의 첫번째 제물은 농민과 자영업자가 될 것이고, 그다음에는 정권이 쓰러질 것이다.


한미FTA를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를 따지는 것은 구차하고 의미없는 일이다. 어차피 가장 결정적인 역할과 책임은 아무래도 노무현 대통령의 몫이다. 노대통령은 2005년 6월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했다가 야당은 물론 여당과 대다수 국민의 반발에 직면한 바 있다. 대연정 논의를 중단하고 외교관들의 극진한 호위 속에 중남미 순방에 나선 노대통령은 9월 한미FTA 추진을 결단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대연정 제안과 한미FTA 추진 결단이 이루어진 그 시기에 노무현정부에 무슨 큰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 틀림없다. 그후는 정해진 길이었다. 2005년 10월부터 올 1월까지 스크린쿼터 축소, 미국산 쇠고기 금수조치 해제, 의약품과 자동차에 대한 무역장벽 해소 등 미국의 요구사항이 잇달아 풀렸다.


그럼에도 충고를 덧붙인다면, 지금 싯점에서라도 미국의 의도와 힘을 과대평가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자신이 정한 군사전략 전환을 다른 나라와 협상하지 않겠다는 것은 미국의 완고한 원칙이다. 따라서 전략적 유연성 문제의 경우, 협상의 여지가 매우 좁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문제에서는 완전히 일방적이고 비대칭적인 게임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그간 주요 거점별로 FTA를 맺고 경제동맹을 확보해왔다. 미국이 한국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신호가 우리에게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이미 시작된 일이니 우리에게 유리하게 협상조건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쁜 FTA’는 국민들에게 심각한 고통을 안겨줄 것이므로, 그대로 방관할 수는 없다. 우선, 통상교섭본부가 독주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어쩌면 통상교섭본부는 한미FTA라는 판을 벌린 것만으로도 자신의 몫을 충분히 챙겼다. 2004년 10월 통상교섭본부는 자유무역협정국을 신설하고, 그 안에 FTA정책과·FTA지역교섭과·FTA상품교섭과·FTA써비스교섭과를 설치하는 개가를 올렸다. 그 직후인 2004년 11월 한일FTA가 중단되어 꽤 당황했을 것이다. 이제 큰 일감을 만들었으니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산업과 공공부문의 취약성을 방어하는 데 많은 힘을 실어야 한다. 그간 국내 산업현장에 가까이 있었던 농림부,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를 협상의 야전에 좀더 전진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내 제도를 담당하는 보건복지부, 교육부, 문화관광부, 환경부, 노동부의 발언권도 높여주어야 한다. 통일부는 개성공단 제품 수출문제를 한미FTA의 의제로 삼는 데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주문자의 의도에 너무 성실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말고도, 경험 많은 다른 여러 연구기관의 브레인들도 연구하고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도록 충분히 기회를 주어야 한다. 국회에서는 상임위 단계에서부터 통상교섭본부를 끈질기게 견제하고 산업관련 부처를 북돋아주어야 한다. 정당은 끊임없이 당정협의를 요구해서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참여민주주의’가 노무현정부의 금과옥조이니, 사공은 많을수록 좋다.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만에 하나, 무리한 절차와 조건으로 협상이 타결되면, 시민사회는 비준반대의 투쟁전선으로 집결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여당은 틀림없이 분열하거나 붕괴된다. 그리고, 어쩌면 급속히, 어쩌면 서서히, ‘민주주의’를 첫번째 국정목표로 내세웠던 노무현정부의 ‘자살’이 완료될 것이다.

 

2006.05.02 ⓒ 이일영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