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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나눔기본법과 기부금품법 그리고 나눔문화

염형국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나눔(또는 기부, 이하 나눔으로 통칭)은 반대급부 없이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금품이나 물건, 자원봉사를 말한다. 나눔을 통해 사회는 풍요로워지고 인류문화가 발전하며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에 가까워진다. 우리도 예로부터 두레와 향약으로 대표되는 품앗이를 통해 노동을 나누고 먹거리를 나누며 서로 돕고 사는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전쟁을 거치고 사회가 혼란해지면서 이러한 나눔문화는 왜곡되었고, 조세 수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국민의 부담이 늘어나고 있어 이를 통제하기 위해서라는 기막힌 이유로 〈기부통제법〉이 제정되어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군사정권을 거치면서는 〈기부금품모집금지법〉이 생겨나 한층 철저한 국가기관의 통제가 이루어졌다.

 

국가에 의한 기부통제라는 시대착오

 

2005년도 국정감사자료집에 보면 월드비전의 '기아체험 24시간', '연말연시 사랑의 이름으로', 한국복지재단(현재 어린이재단)과 KBS의 '사랑의 리퀘스트', EBS의 '효' 캠페인, MBC '어린이에게 새 생명을' 등 지금은 매우 뜻깊은 캠페인으로 평가되는 모금운동의 허가신청이 반려되는 웃지 못할 일이 바로 얼마 전까지도 버젓이 벌어졌다.

 

국가가 법을 통해 시민의 자율적인 활동과 자발적인 참여를 제한하고 모금행위를 통제하는 것은 사회의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시대착오적 발상일 뿐이다. 국가가 할 일은 시민의 자율적인 활동과 자발적인 모금참여를 진작하고 지원하는 것이어야 하며, 나눔문화 활성화를 저해하는 일부 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제한에 그쳐야 한다.

 

정부는 규제의 근거로 기부금품 모집행위의 부작용을 지적하고 있으나, 이는 방위성금이나 체육성금, 연말 불우이웃돕기 성금 등의 명목으로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가 관행적으로 실시해오던 준강요적 모금행위에서 비롯된 것이다. 연말 불우이웃돕기 성금조차 행정조직을 통해 강제적으로 할당되었으니, 이때 모금행위의 주체는 집권 정치세력의 비호를 받던 준국가조직이었다. 이러한 국가의 준강요적 모금행위로 나눔문화가 왜곡되고 폐단이 생겨난 것이다.

 

설익은 나눔기본법 기부금품모집법 개정안

 

최근 정부에서는 사회적 논의를 생략한 설익은 나눔기본법 제정안과 기부금품모집법 개정안을 잇달아 들고 나와 시민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나눔기본법 제정안은 복지부에서, 기부금품모집법 개정안은 행안부에서 각각 추진하고 있는바, 양 법안을 뜯어보면 정부안 단계에서도 서로 상충·모순된 지점이 발견되고 있다.

 

우선 복지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나눔기본법 제정안은 나눔에 관한 통합관리법의 필요성, 나눔의 정의와 분류의 필요성, 나눔단체 및 기관에 관한 규정의 정비, 새로운 나눔문화의 내용 반영 등을 이유로 하고 있다. 그러나 나눔에 관한 통합관리는 시민사회와의 폭넓은 의견수렴과 합의를 거쳐야 하지,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한다고 해서 가능한 일은 아니다. 법에서 포괄적인 나눔의 정의를 하는 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또한 되짚어볼 일이다. 게다가 복지부가 들고 나온 나눔기본법안은 정부부처 간의 합의도 되지 못한 안이고, 기부연금이라는 새로운 나눔문화의 내용 반영도 거의 논의되지 못한 설익은 정책이다.

 

한편 행안부의 기부금품모집법 개정안은 합리적인 기부문화와 나눔의 선순환을 통한 풍요로운 공동체 지향이라는 목적과는 상반되는 규제 중심의 안이다. 금지목적 사업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등록해주도록 원칙 허용의 체계로 변경한다고 하지만, 예를 들면 결식아동들을 위한 모금캠페인은 결식아동에 대한 급식예산을 더이상 책정하지 않겠다는 정부정책에 반대할 목적으로 결식아동지원사업을 벌이는 것에 해당하여 금지될 소지가 있다. 정부의 입맛에 맞는 모금만 허가하고 그렇지 않은 모금은 봉쇄하겠다고 하는 발상이 전혀 바뀌지 않은 것이다. 결국 나눔기본법안과 기부금품모집법 개정안 모두 시민의 자율적인 활동과 자발적인 참여 지원에 역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나눔문화를 진작하고 확산하려면 '나를 따르라!'가 아니라 '뭘 도와드릴까요?'라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이 발전시켜온 두레와 향약은 나라에서 한 것이 아니라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이어왔던 것이다. 나눔문화는 정부가 아니라 시민사회가 만들어가는 것이고, 그 성패도 시민에게 달린 것이다. 정부는 아직 미흡한 나눔문화를 붇돋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어떠한 지원을 해야 할지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다.

 

2013.2.6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