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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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3‧11 이후 2년, 후꾸시마에서 생각한다

아오야기 준이찌(青柳純一) / 번역가

 

"역사는 반복된다. 단지 같은 형태가 아니라 닮은 형태로"라는 말이 있다. 일찍이 19세기말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 약 10년 주기로 주변국과 침략전쟁(청일·러일전쟁, 1차대전, 시베리아 출병, 만주사변)을 벌이며 '선진국' 반열에 올랐지만, 결국 다섯번째 전쟁에서 중국과 구미에 패배해 만신창이가 된 나라가 있다. 1950년부터 오늘날까지 이 나라는 약 15년마다 주변국의 전쟁이나 자연재난(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중동 석유위기, 한신阪神대지진)을 기회 삼아 대규모 재건사업을 일으켜 토건·경제대국의 꿈을 키워왔다. 이것이 일본의 20세기다.

 

21세기가 시작된 지 약 10년, 토건정책의 막다른 길목에서 재정파탄을 기화로 민주당이 정권교체를 실현했다. 하지만 공허한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이 좌절되고 사회보장제도 충실화를 내세운 소비세 논의(민주당정부는 재정적자 해소와 고령화사회에 따른 비용 증가 대책으로 소비세율 인상을 추진했으나 저소득층 증세 등 논란을 가져온 바 있음―편집자)가 본격화한 시점인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났다. 게다가 바로 다음날부터 3기의 원자로 건물이 연속적으로 폭발한 후꾸시마 사태는 분명 '근대일본'만이 아니라 '근대문명' 전체의 미래를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인류와 방사능의 공존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스리마일섬과 체르노빌에서의 기억을 떠올린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의 시민사회는 탈원전운동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가만히 있어라, 후꾸시마"

 

하지만 일본정부의 관료, 그리고 그 하청기관과도 같은 언론매체, 제도권 학교, 지방정부는 후꾸시마의 실태를 계속 감추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우고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은 마치 20세기 전반 침략전쟁 당시의 '육군대본영발표'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현재 일본사회에서는 후꾸시마의 실상을 말하는 것이 점점 터부시되고 있다. 특히 현 아베정권하에서 진실을 밝히기 꺼리는 사회분위기가 급속도로 퍼져서, 피해자들에게는 '힘내라 후꾸시마' 같은 부흥 슬로건도 마치 '가만히 있어라, 후꾸시마'처럼 들릴 지경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까이(世界)』와 『슈오깐낀요오비(週刊金曜日)』은 각각 '끝나지 않은 원폭피해'와 '봉인된 후꾸시마'라는 제목 아래 공히 ‘3·11, 그후 2년’이라는 부제를 달아 특집을 꾸몄다. 『토오꾜오신문(東京新聞)』과 함께 진보적인 월간지와 주간지로 분류되는 이 두 잡지는, 현재 일본사회에서 가까스로 후꾸시마의 현상황을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특집기사들을 정리해보면, 적어도 다섯가지의 진실이 후꾸시마를 둘러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폭발한 원자로건물 세 곳에서는 “지금도 매일 약 2억 4000만 베크렐의 방사능 물질”(토오꾜오전력의 발표)이 흘러나와 주변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 또한 “매일 대량의 지하수가 원자로 건물에 유입되어 오염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 총량은 약 3억 6000만 리터로, 학교 풀장 규모의 무려 1000배에 달하고 있으며, “탱크에서 방사능이 누설되어 고농도(오염도가 심각한)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들어갈 지경에 처했다.”(현장 작업자의 말) 게다가 후꾸시마가 방출한 전(全) 방사능물질 중 80%는 바다로 흘러들어갔다.

둘째, 현장작업자들의 생존권은 여섯단계 이상을 거치는 업무 하청화 탓에 극도로 악화된 상태다. 저임금인데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이 노동에 희생정신만으로 모인 숙련노동자는 감소하고 방사능의 위험성을 잘 모르는 미숙련 젊은이들이 작업에 참여하게 되어 수습작업은 크게 늦어지고 있다.

 

후꾸시마가 우익정권 토건정책에 동원되지 않기를

 

셋째, 현재 자택을 떠난 원전사고 피난자는 15만명을 넘어섰으며, 후꾸시마현 인구의 10% 정도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생계 문제 등으로 이산가족이 된데다 피난처에서 얻은 질병으로 건강상태까지 악화된 상황에서 지역사회가 붕괴된 것은 물론이고 가정파탄을 맞는 사례도 급속하게 늘고 있다.

 

넷째, 피해자에 대한 배상은 가해자인 토오꾜오전력과 정부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데, 2조엔이 넘는 거액의 국비를 지원받은 토오꾜오전력은 스스로 마치 피해자처럼 굴고 있다.

다섯째, 작년 12월 총선에서 대승한 자민당/아베정권은 피해자 보상 협상에서 마치 이 사고가 민주당정권 때 일어났기 때문에 자기들과는 상관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게다가 최근 5년간 한국정부가 강행해 국민의 원성을 샀던 토건정책을 오히려 확충하고 있으며, ‘국토강인화 계획’이라는 토건국가 재건안에 순세수 50조엔을 비롯해 10년간 총 200조엔을 투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병행해 소비세 증액 및 원전 재가동과 함께 개악임이 분명하다고 판단되는 헌법개정을 불가결의 목표로 내걸고 있는 상황이다.

 

작년 여름 수상관저 앞길에서 열린 대대적인 시민 궐기가 보여준 ‘탈원전운동’ 열기에 위기를 느낀 정부 관료들은, 20세기초부터 심화된 영토 내셔널리즘과 주변국에 대한 배외주의를 부추기고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역사관을 가진 아베 수상을 재등장시켰다. 일본 우익정권은 20세기 전반의 식민지배에 근거한 ‘근대일본’에 대한 향수와 20세기 후반의 동아시아에서의 냉전체제를 기반으로 해서 성립한다. 영토분쟁 지역인 센까꾸열도와 독도가 청일·러일전쟁을 통해 일본령이 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일본인은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한다. 마치 후꾸시마를 잊어버리고 싶어하는 것처럼. 낡은 냉전체제의 극복을 통해 일본 우익정권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핵무기·원전 없는 평화로운 동아시아를 건설하기 위해 한일 양국의 시민사회가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2013.3.6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