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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 후보자 검증, 이젠 수첩을 덮어야

윤태범 / 방송대 행정학과 교수

 

새 정부 들어 장·차관 등 고위공직자 인선에 심각한 결함이 드러났다. 역대 정부의 초기 인선 중 가장 많은 후보자가 이미 사퇴하여, 이젠 대체 누가 언제 사퇴했는지 헷갈릴 지경이다. 이들은 말이 좋아 사퇴지, 국민에 의해서 거부된 것이나 다름없다.

 

장관은 대통령과 더불어 국정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몇 안되는 자리다. 대통령이 특정 지역과 세력을 대표하지 않고 국민 전체를 대표하듯, 장관도 대통령이 아닌 국민을 위한 자리다. 때문에 장관 임명권은 대통령에 있지만, 장관의 존재 이유는 국민에 있다. 대통령의 기준과 눈높이가 아닌 국민의 기준과 눈높이가 우선되어야 하는 이유다.

 

고위공직 인선은 국민의 관점에서

 

그런데 그 많은 인재 중에서 왜 하필 이렇게 거부될 사람들이 계속 추천되는가? 언론은 새 정부에서 중용될 고위직 후보군 명단이 대통령의 수첩에 있을 것이라고들 한다. 대선 과정에서 박대통령의 수첩은 단연 뉴스거리였다.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대선 공약에 반영하기 위하여 수첩에 아주 꼼꼼하게 적는 습관으로 ‘수첩공주’라는 말까지 들었다. 지금도 그 수첩에는 지금까지 거론된 사람들 외에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수첩은 어떻게 활용되어야 하는가? 장관이 단지 대통령을 위한 직위라면 후보자는 수첩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이 국민을 위한 자리라면 후보자는 수첩이 아닌 국민 속에서 나와야 할 것이다. 수첩 속의 인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재들이 국민 속에 있기 때문이다. 성공하는 대통령, 발전하는 대한민국을 원한다면 이제 수첩은 덮어두고 더 넓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 널리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

 

대통령 후보자 시절의 수첩에는 같은 생각으로 함께 일하며 조언하는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으니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특정 정당의 후보에서 대한민국의 대표가 된 이상 수첩은 성공의 기반보다는 걸림돌이 될 공산이 크다.

 

다른 한편 언론은 연일 부실검증을 지적한다. 언론의 지적처럼 정말 검증이 그렇게 부실하게 이루어졌을까 의문이다. 혹 대통령이 수첩에 적힌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미 검증한 것으로 판단하지 않았나 모르겠다. 만일 그랬다면 수첩에 적힌 이들이 고위공직 후보자가 되었을 때 다시 한번 꼼꼼히 검증하는 것이 오히려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후보자 시절에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일반적인 고위공직자 인선에 적용되는 철저한 검증을 통과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후보자 시절의 사적인 관계에서만 검증되었을 공산이 크다. 물론 이들 중에는 국민의 관점에서 봤을 때도 고위공직자로서 전혀 손색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대선과정에서 동고동락했다고 해도 국민의 관점에서 새롭게 검증해야 했다.

 

엄밀한 인사검증 시스템 필요

 

새 정부 출범 전 인수위원회는 공직자 인사위원회 구성을 통해 인사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겠다고 했다. 인사위원장을 청와대 비서실장이 담당한다는 것 외에는 아직 알려진 사실이 별로 없다. 보안이 국정운영의 최선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청와대의 몇몇 수석비서관들이 인사위 구성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는 인사의 독립성과 공정성 확보를 위한 조직이라기보다는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또다른 수석비서관 회의와 다를 것이 없다. 요컨대 인사검증 시스템이 없다는 말이다.

 

국민의 기대나 눈높이와는 달리 대통령과의 사적 인연에 따라, 철저한 검증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지명된 후보자들이 국회 청문회에 나오면서, 청문회는 역량 검증보다는 후보자 개인의 일신이나 도덕성 등에 대한 청문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후보자 검증의 첫 단계인 도덕성 검증이 부실하게 이루어짐으로써, 그 책임을 인사권자가 아닌 국회가 떠안게 된 것이다. 일신이나 도덕성 검증은 인사권자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몫이고, 검증을 통과한 후보자를 대상으로 국회가 청문하는 것이 국회와 국민이 존중받는 상황임에도,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인사검증 및 청문과 관련해 우리는 자주 미국의 경우와 비교하곤 한다.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 상원은 수많은 후보자를 대상으로 실질적인 인준 청문을 한다. 백악관 인사실과 법률보좌관실을 중심으로 200여개 항목에 걸친 철저한 검증이 이뤄지고, 이를 통과한 사람만 상원 청문회에 나서기 때문에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미국 고위공직 후보자가 우리보다 청렴해서가 아니다. 꼼꼼하고 철저한 검증 시스템과 함께 국회와 국민을 존중하는 대통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수첩은 보은을 위한 공신록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를 위한 정책 발굴의 용도로 활용돼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수첩을 서랍 속 깊숙이 넣어 두는 게 맞다. 그리고 5년 뒤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서랍 속 수첩을 꺼내어 거기에 적힌 많은 사람들에게 고마움과 더불어 미안함을 표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성공하는 대통령, 성공하는 정부를 위한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2013.3.2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