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좋은’ 교육감이 아이들을 위해 함께 달리는 날
박종호 / 서울 영등포여고 교사, 청소년문화연대 킥킥 운영위원장
6·4 시·도 교육감 선거 결과 13개 시·도에서 민주진보 교육감 후보가 당선되었다. 2010년 5곳에서 당선한 것에 견주면 그 변화가 놀랍다. 더욱이 강원, 전북, 광주, 전남에서는 연임에 성공했다. 보수진영의 후보가 난립한 상태에서 진보진영 후보들이 단일화하여 겨루었다는 점에서 쉽게 승리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서울교육감 선거에서 조희연 후보는 고승덕, 문용린 두 후보가 벌인 '진흙탕 싸움'에 비켜나서 '반사이익'을 얻었다. 4% 지지에서 출발해서 열배 가까운 지지를 받았기에 말이다. 그렇지만 이것을 보수의 분열에 따른 어부지리로 보기는 어렵다. 그동안 진보 교육감의 정책으로 학교현장에서 이루어진 혁신교육, 교육개혁에 대한 지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무엇보다 단원고 아이들과 교사들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교육의 변화와 개선을 열망하는 '앵그리 맘' 학부모, 시민의 뜻이 투표에 반영된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13:4, 교육감 선거의 의미
그동안 우리 교육은 지나친 입시경쟁 교육에 빠져서 정작 한 사람이 지닌 생명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생명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일에는 게으르고 소홀했다. 학생들에게 그저 학교에서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따르고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에 순응하는 수동적인 기계로 자라도록 강요해왔다. 그 뼈아픈 장면을 지난 약 60일 동안 아이들이 바다에서 보내온 마지막 편지를 읽으며 눈물로 경험했지 않는가. 철 지난 이념교육에 매달린 채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조차 외면하는 교과서와 교육과정을 억지로 들이미는 병폐를 가득 쌓아놓은 채, 생명·평화·인권·통일 등 미래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교육의 기본 가치는 제대로 가르치고 있지 않다. 어쩌면 우리 교육도 다시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가라앉아버렸고, 회생을 말하기에는 너무 늦었는지도 모른다.
이번에 당선된 교육감들 앞에 놓인 과제는 만만치 않다. 교육감이 할 일은 아주 많다. 지역의 '작은 교육대통령'으로 유치원·초등·중등·고등학교 교육정책과, 교사와 교장, 교육행정 공무원 인사, 그리고 학생 복지, 급식, 문예체 교육, 평생교육까지 굵직한 일들을 처리해야 한다. 교육감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교육감이 할 일, 해서는 안되는 일
교육감은 학생들에게 평등하고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고, 교사들에게 좋은 가르침을 줄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주고, 학부모들이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교육감 선거기간인 5월 19일 발표한 '민주진보 교육감 후보 공동공약'은 고교평준화 확대와 자사고(자율형 사립고) 폐지, 학벌구조 해체를 통한 입시고통 해소, 안전규제 강화와 친환경 무상급식 확대를 통한 학생 안전과 건강권 보장, 교원 승진제도 개선과 학교자치 법제화를 통한 교육비리 척결, 선진국 수준의 교육환경 구축, 교육복지 강화, 학교혁신 보편화, 민주시민교육 활성화를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공약을 이번에 당선된 17개 시·도 교육감들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공동으로 청사진을 마련하고 함께 실천해주시기를 바란다. 교육부도 진보 교육감들과 '업무지시나 권한 다툼 소송' 같은 것을 벌이지 말고 같이 토론하면서 협력하면 좋겠다.
교육감은 7월 1일 임기를 시작할 때까지 인수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교육청의 4년 설계도를 그려야 한다. 당장 취임에 맞춰 교육청 인사를 해야 하고, 주요 정책에 대한 일정표를 제시해야 한다. 서울처럼 곽노현 전 교육감이 추진하던 정책을 후임 문용린 교육감이 '보수적'으로 되돌린 경우는 그 '설거지'를 하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세종시 교육청의 경우 7월 이후 집행해야 할 예산이며 인사발령을 전임 교육감이 후다닥 해치운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보수진영의 반대와 훼방도 노골화할 것이다.
아름다운 학교에서 학생들이 웃을 수 있기를
제대로 된 교육정책을 추진하는 데 보수-진보 진영의 싸움이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 교육감은 정확한 상황판단을 해야 하는 자리다. 책상서랍 속에 교육감이 원하는 정책마다 따로 만든 파일을 한가득 쟁여놓고 눈치만 보고 있는 교육관료들에게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그러자면 공정한 인사, 현장 중심의 정책, 민주적 절차의 존중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사무실에 앉아서 서류로 정책을 세우고 학교를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아이들, 교사, 학부모의 목소리를 가장 먼저 듣고, 이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를 찾아갈 때 교문 앞에 우르르 몰려나오는 '의전' 따위는 물리치고 뒷문, 옆문으로 들어가 학생과 교사의 목소리를 듣는 부지런한 교육감이 많아지면 좋겠다.
부디 좋은 교육감들이 펼치는 좋은 교육정책으로 아이들이 활짝 웃을 수 있기를, 학교 또한 안전한 곳,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곳으로 바뀔 수 있기를 바란다. 늦은 밤까지 구석구석 안전하게 밝혀둔 학교, 책 읽고 토론하고 몸으로 움직이는 살아 있는 학생들을 많이 만나면 좋겠다. 고등학생들이 입시에 짓눌려 누렇게 뜬 얼굴로 밤늦게 학교를 나서지 않고 친구들과 어깨동무하면서 제 갈 길을 찾아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런 꿈같은 학교를 실제로 만날 날이 멀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는 데도 아이들, 교사들, 학부모들의 눈물이 함께했듯이, 앞으로도 더 많은 응원과 채찍을 들고 교육감들 곁에 서 있을 것이다. 교육감들의 분투를 빈다.
2014.6.1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