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창비주간논평

6‧4지방선거, 보수와 진보의 민낯을 드러내다

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선거결과가 나왔다고 선거가 끝난 건 아니다. 선거는 대개 두 단계로 구성된다. 1단계는 선거일까지의 정당·후보 간 경쟁이다. 투표결과는 그 해석을 둘러싼 갈등과 세력 간 그리고 세력 내 역관계 재편을 낳는다. 이것이 2단계다. 선거 후 국면(post-election phase)이라 부를 수도 있다. 이번 6·4지방선거의 1단계는 여야 무승부로 끝났다. 1단계에서 우열이 분명하지 않을 경우 대개 성패는 2단계에서 결정된다. 그 2단계는 아직 진행 중이다.

 

선거에서 누가 이기고 졌는지는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된다. 그것이 정답이다. 광역단체장을 기준으로 보면 여야 8대 9다. 불안한 균형의 무승부다. 속을 들여다보면 다른 점도 있다. 집권 16개월 즈음에 치러진 '신혼선거'(honeymoon election)라는 점과 한국사회의 압도적 보수우위 지형에 주목하면 여당의 패배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과 여권의 지지율이 급락한 것에 비춰보면 야당의 패배다.

 

6·4지방선거에서 봐야 할 것들

 

좀더 긴 호흡으로 보자면 여야 모두 희망을 가질 대목은 있다. 여당은 임기 초반 '카트리나 모멘트'가 될 위기를 그런대로 극복했다. 대통령은 살아남았다. 야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형성된 수세 트렌드를 반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충청권의 광역단체장을 석권하고,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얻은 표를 기준으로 할 때 수도권에서 50여만표 앞서고, 부산과 대구에서 선전하는 등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만들어낸 다수연합(majority coalition)에 일부 균열을 만들어냈다. 차기 주자 구도에서도 야권이 더 남는 장사를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압승을 통해 유력주자로 부각한 반면 여권은 정몽준을 잃었다. 게다가 잠재적 후보라고 하던 안대희 전 대법관도 지워져버렸다.

 

이번 선거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른바 '선거의 여왕'으로 행세한 사실상의 마지막 선거다. 임기 중에 총선이 있기는 하지만 2016년이라 차기 주자들이 주도하는 선거다. 마지막 선거치고는 참 옹색하게 치렀다. 통일대박론이나 규제완화론 등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국정 어젠더들은 부각되지 못했고, 세월호 참사로 인해 대중적으로는 사실상 폐기된 바나 다름없게 됐다.

 

선거에서 여권이 들고 나온 건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달라는 박근혜 마케팅이 전부였다. 도와달라는 호소는 살려달라는 SOS에 다름 아니었다. 성과에 기댄 것도 아니고, 미래 비전에 의지한 것도 아닌 선거였으니 여권으로서는 패배하지 않았다는 평가 외에는 얻은 게 없다. 뿐인가. 선거과정에서 여권이 새롭게 내세울 만한 스타 하나 배출하지 못했다. 남경필, 권영진, 원희룡 등 차세대 주자들이 광역단체장에 포진한 건 성과지만 2017년에 뛸 만한 인물을 부각해낸 건 없다. 김무성, 김문수를 비롯해 차기 주자들은 다들 박근혜 마케팅에 막혀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앞으로 '박근혜 없는 선거'를 여권이 어떻게 임할지 생각해보면 여권이 얼마나 이번 선거를 소모적으로 치렀는지 알 수 있다. 여권이 잃은 건 또 있다. 전가의 보도인 안보 프레임은 아예 가동하지도 못했고, '이석기사태' 후 공들여 준비해온 통합진보당 변수도 활용하지 못했다.

 

야당 역시 별로 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잘한 것도 있다. 기초연금법 등에서 '발목 잡는 야당' 담론이 먹히지 않도록 사전에 수세 쟁점을 해소한 덕에 여권으로선 유효한 선거소재를 잃게 됐다. 여권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 공약을 통해 부산시장 선거를 지원하고, 제2경부고속도로 노선에 충북지역을 포함시키는 약속으로 충북도지사 선거를 돕는 등 '철 지난' 낡은 방식을 고육지책으로 채용해야 할 정도로 동원 가능한 수단이 거의 전무했다. 그러니 막판에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을 파는 감성 프레임, 읍소전략에 올인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확인된 사실들, 그리고 새로운 과제

 

이번 선거에서 분명하게 확인된 사실은 두가지다. 여권에게는 박근혜 대통령 외에 아무도 없다. 골목대장들뿐이다. 이게 하나다. 다른 하나는, 야당에겐 승리전략이 없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여론이 심판론으로 흐르는 분위기에서도 거기 편승하는 데 급급했다. 세월호 참사가 제기한 숱한 숙제,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어젠더 중에 한두가지의 공감 이슈를 추출해 그것을 중심으로 프레임을 짰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이 먹힐 공간을 열어주진 않았을 것이다. 2010년 선거에서 천안함을 계기로 한 안보 프레임을 제압한 것은 무상급식을 쟁점으로 한 복지 프레임이었다. 세월호 참사를 감성 모드가 아니라 정책 모드로 풀어내 무상급식과 같은 쉽고 간명한 정책쟁점으로 만들어냈다면 야권은 압승했으리라. 불행하게도 새정치민주연합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당내 갈등에 허우적댔고, 여론 동향에 휘청거렸다.

 

선거 전후를 포괄해서 볼 때 6·4지방선거의 성패는 7·30재·보궐선거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선거 2단계, 또는 선거 후 단계에서 표를 통해 드러난 민심을 누가 정확하게 해석하고, 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책임정치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정치지형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어떻게 해야 할까? 6·4선거는 이것을 주문한다. '먼저, 그리고 충분히 스스로를 혁신하라.'

 

2014.6.1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