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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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밀양, 반가운 손님

*본 글의 제목은 동명의 다큐(하샛별·노은지·허철녕·넝쿨·이재환 연출, 2014)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십년째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을 벌여온 '할매'들에게 행정대집행이 예고되었고 그리고 집행되었다. '밀양을 사는 사람들', 특히 움막을 지켜내던 할매들은 침착하고 강했다고 한다. 그동안 한번도 욕설을 입에 담지 않았던, 아니 담지 못했던 101번 움막의 구미현님이 집행 당일에 마치 방언이 터지듯 '욕설이 터졌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황악산 위로 괴물 같은 송전탑이 하나씩 하나씩 세워지면서, 그리고 결국 행정대집행이 예고되면서 투쟁 2단계인 '포스트 송전탑'이라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고,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는 말이 그뒤를 따랐다.

 

밀양을 사는 사람들도, 밀양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도 이 말의 구체적 내용이나 형식은 아직 모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투쟁을 이어온 밀양 주민들에게 이 말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우리가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 의미를 제대로 아는 것은, 이웃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어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윤리적 의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삶의 의미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

 

강정 구럼비 투쟁 이전과 이후,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이전과 이후,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 등 당대 한국 '국민'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이한 방식으로 삶에 결정적 분기점이 새겨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결국 강정 구럼비 바위에 폭파가 일어났을 때, 결국 밀양에서 행정대집행이 강행되었을 때, 그때 함께 파괴되고 무너진 것은 무엇인가.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 모두는 이 질문을 부적처럼 가슴에 품고 사는 역설에 직면해 있다. 개인의 사적인 삶과 정치경제의 시스템이 벌이는 길항작용이 점점 더 개인을 질식시키고, 철저하게 무기력한 패배자나 분열증 환자가 되게 만들수록 꼭 간직해야 할 한가지, 꼭 지켜내야 할 한가지를 질문하는 게 중요하다. 아니 어떤 질문을 누구에게 하고, 누구와 서로 합의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만약을 대비해 파놓은 구덩이에 들어가 몸에 쇠사슬을 감고 공권력이 밀어닥칠 그 순간을 기다릴 때 할매들이 꼭 지켜내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지금 우리는 물어야 한다.

 

행정대집행의 미친 폭풍이 지나고 난 뒤 움막 101에서 내려오는 고준길님의 발걸음은 더디기만 했다. 이삼십분이면 내려오는 그 길이 그날은 두시간이 넘게 걸렸다. 경찰을 만날 때마다 그 길로 오르내리지 말라고 간청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분명하게 들려줄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부'에 꼭 보고하라고, 한마디도 놓치지 말고 꼭 제대로 보고하라고 건넬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나라고, 이게
철탑 밑에 살면 죽는다고 우리가 십년을 울부짖어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이거 때문에 두 사람이나 분신을 했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안하는
이게 도대체 무슨 나라고.

그래 좋다, 힘없는 사람은 죽어야 되는 기다
세월호에 탄 아이들도 그냥 죽어야 되는 기고
밀양 노인네들도 그냥 죽어야 되는 기다, 그렇제? 맞제?

내가 괜히 와서 객기 부리는 거로 생각하는데
우리 주민들이 십년 동안 얼마나 힘들었겠노
먹고사는 것도, 농사도 떠나지 못하고 이래 살아온 것도
얼마나 얼마나 억울한데
저 깻잎 팔아 고추 팔아
뭐 하나 사가지고 막고 또 뭐 하나 사가지고 막고
그 돈 가지고 막아볼라고

그게 다 우리 피다, 피
그래도 나라는 꿈적 안하고

밀양 주민들 죽이러, 노인들 죽이러 왔잖아 너가
이리로 철탑 지나간다. 이리로 올라가면 철탑 자리가 있다
그 밑에서 어찌 살란 말이고
죽으란 말이지
우리가 그라면 죽어야 되지, 고만 죽어주면 안되겠나
인자 우리 죽을꼬마
이게 우리 주민들의 뜻이라 내가 전한다
이 이야기를 잘 보고해라

당신들 정말 꼴 보기 싫으니까 이 근처 이 굽잇길로 내려오지 마라
내려오지 마

저쪽에 좋은 길 있습니다
맨날 맻번 그리 가봐서
맨날 맻번 그 길을 우리가 지키고 있어서 그 길이 어딘지 내가 잘 안다고
거기가 더 좋으니까 그리로 다니세요
이리로 오고 이리로 내려오지 마세요
내 당부합니다

정말 우리가 죽으면서 간절히 부탁하는 겁니다
끝까지 사람을 짓밟지 마세요
우리 시골 노인들 아무 가진 것도 힘도 없지만
우리도 사람입니다 우리도 사람이고 국민입니다
그리 짓밟지 마세요
두번 세번 짓밟는 이런 짓 하지 마세요

잘 보고하세요*

 

끝나지 않은 싸움의 의미

  

나는 고준길님의 이 말씀을 반복해서 듣고 또 듣는다. 그 어떤 정치철학도 이보다 더 생생하게 국가의 이성이 실종되었음을 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삶의 속살 깊숙이에서 울려나오는 이 조종은 전율과 함께 뇌 속으로 심장 속으로 스며든다. 국가 공권력이, 자본폭력이 국민의 권리를, 시민의 자격을, 사람의 삶을 짓밟고 파괴하기 위해 들이닥칠 때 그것을 막아내기 위해 할매들은 움막을 지었다. 송전탑이 세워진다고 알려진 곳에 손수 흙짐을 지고 돌을 날라 움막을 짓고 낮과 밤을 지켜냈다. 움막을 향해 올라가는 험한 산길에 하나하나 돌을 놓아 디딤이 쉽게 만들었다. 그 디딤돌을 딛고 물과 음식을 진 채 산길을 오르내렸다. 깻잎과 고추 팔아 번 돈으로 해낸 일이다.

 

'이' 길은 자본과 국가폭력이 지나다니는 '저' 길이 아니다. 이 길은 할매들이 억울하고 또 억울한, 분하고 또 분한 마음 한가운데에서 그 어떤 권력도 폭력도 절대 파괴할 수 없는 생명으로 새겨놓은 길이다. 경찰은 절대 이 길로 지나가서는 안된다. 그것은 두번 세번 밀양 주민들의 삶을, 자존을 짓밟고 또 짓밟는 일이다. '너희가 아무리 송전탑을 세운들, 움막을 다 파괴하고 브이 자를 그리며 승리의 기념사진을 찍은들 우리의 자존을 파괴할 수는 없다. 우리는 끝까지 우리의 자존을 지켜낼 것이다.'

 

이것이 바로 '끝나지 않은 싸움'의 의미다. 밀양을 사는 사람들, 밀양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선택한 것이 바로 이 자존이다. 날마다의 삶에서 우리가 현재형 동사로 함께 기억하고 함께 지켜내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이 바로 이 자존 아닌가. 국가와 자본의 폭력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에게서 얼마나 더 뻔뻔하게 이 자존을 빼앗을 것인지, 질문하지 않고 지낸 오늘의 안전은 내일 들이닥칠 행정대집행의 값일 뿐이다. 이제 포스트 송전탑의 시공간은 우리 모두에게 찾아온 '밀양, 반가운 손님'과 함께 계속 질문하고 계속 싸워나가는 하루하루의 시공간이다.

 

* 이 부분은 밀양에 있었던 김일란 감독이 채록한 음성녹음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소중한 자료를 사용하게 해준 김일란 감독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김영옥 /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2014.6.1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