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민주공화국은 어떻게 국가분열을 막고 국민통합에 나서는가?
-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고,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실을 보여주었다. 많은 사람들은 참사를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말고 상처 치유와 재발방지를 위한 자양분으로 사용하자고 했다. 하지만 여야 정치권, 일부 시민단체와 지식인들은 세월호 참사를 치유하고 재발방지에 전력하기보다는 ‘정권퇴진론’ ‘세월호심판론’ ‘정권심판론’ ‘정권수호론’ 등 6‧4지방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세월호 참사를 균열축으로 이용하였다.
세월호 참사를 선거에 이용한 결과가 무엇인지는 낮은 투표율과 당선결과의 애매함이 잘 보여준다. 민심은 전반적인 선거 무관심 속에서 여당에게 경고를 보내면서도 기회를 주었으며 야당에게도 일방적인 승리를 주지 않고 분발을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교육감선거에서는 진보교육감이 대거 승리하여 교육을 통해서라도 세월호 문제를 해결하라는 민심이 드러났다. 최근 국무총리 내정자의 연이은 낙마는 사실관계를 떠나 국민정서와 헌법적 절차의 충돌 등 여야 대립과 대통령에 대한 국민이 불신이 어느 정도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7월 재보선을 앞두고 여야의 대립과 갈등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대립과 분열상이 계속된다면,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던진 시대적 과제, 즉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방지와 치유를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하는 과제를 달성할 수 있을지 많은 회의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여당은 야당을 탓하고, 야당은 여당과 대통령을 탓한다. 국민은 정부를 불신한다. 여야의 공통점은 둘 다 분파이익과 파벌의식은 가지고 있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이익에 대한 고려와 주인의식은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이러한 답답함을 해소하는 데 추천할 만한 고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천병희 옮김, 숲 2009)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국가가 분열‧쇠락하는 것을 보고 당시 그리스 정치가와 통치자에게 많은 답답함을 느꼈다. 그는 국가가 융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운 좋게 그것을 실천할 기회를 얻었다. 41세에 마케도니아 필립포스 왕의 부탁으로 훗날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왕사(王師)가 되어 철학, 문학, 정치학 등을 가르친 것이다. 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통해 자신의 꿈과 이상적 실천을 펼치고 싶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현실정치가이자 국가통치자가 될 알렉산드로스를 위해 특히 신경 써서 가르친 과목이 『정치학』이다.
『정치학』은 총 8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권은 순서대로 국가공동체의 본질, 이상국가, 시민과 정체(政體)에 관한 이론, 실제 정체와 그 변형, 혁명과 정체변혁의 원인, 민주정체와 과두정체의 안정적인 구성방안, 이상국가와 교육의 원리, 공교육을 다룬다. 『정치학』은 정치권력을 잡고자 하는 야심가들과 선량한 피치자들에게 아주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그중 핵심적 사항을 몇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본성(physis)을 국가(polis)라는 정치공동체를 구성하여 자신의 탁월함과 행복을 발현시킬 수 있는 ‘정치적 동물’(zōion politikon)로 보았다. 둘째, 그는 인간이 혼자서는 자신의 탁월함과 행복을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국가라는 공동체가 개인의 잠재성을 발현하도록 적극 도움으로써, “단순히 모여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탁월하게 활동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셋째, 통치자의 수와 통치의 목적과 권력의 사용방식에 따라 국가를 총 6종류로 유형화했다. 그는 ‘좋은 국가’의 유형 중 1인이 통치하는 형태를 군주정(kingship), 소수자가 통치하는 형태를 귀족정(aristocracy), 다수자가 통치하는 형태를 혼합정(polity)으로 규정했다. 반대로 ‘나쁜 국가’로는 군주정이 타락한 참주정(tyranny), 귀족정이 타락한 과두정(oligarchy), 혼합정이 타락한 민주정(democracy)을 제시했다. 넷째, 그는 가장 좋은 국가로 과두정과 민주정을 중용적·중도적으로 혼합한 혼합정을 지지했고, 가장 타락한 형태로 참주정을 꼽았다. 다섯째, 그가 혼합정을 지지한 이유는 국가가 ‘순수한 단일정체’(pure regime)만을 지향할 경우 부자만을 대변하는 ‘과두정’이나 빈자만을 대변하는 ‘민주정’으로 타락하게 되어, 정체의 균형을 잃고 결국 망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산술적인 평등을 강조하는 ‘민주정’과 자격 및 능력에 따른 비례평등을 강조하는 ‘귀족정’이 결국 부자와 빈자의 갈등을 낳아 그 사회를 불안과 극단으로 치닫게 만든다는 것이다. 혼합정은 오늘날 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의 기원이다. 민주공화국은 평민이 중심이 되는 민주정(democracy)과 부자만을 대변하는 과두정과도 다르다. 민주공화국은 군주, 평민, 귀족 간의 계급투쟁을 인정하되 서로 죽이지 않고 상대를 인정하면서, 하원, 상원, 대통령, 사법부, 연방제 등으로 제도화하여 권력의 분점을 통한 견제와 균형 및 공존과 공공선을 추구하는 정치체제를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정이 수립된 지 27년이 되는 우리에게 민주공화국은 독재와 민주라는 이분법의 대립구도와 독재, 분단, 일제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성숙한 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이다. 마지막으로 일곱째,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국가가 되려면 국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탁월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시민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이 위기에 취약할 뿐만 아니라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복원력도 약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혹자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의 모습에 실망할 것이다. 혹자는 규제철폐를 요구하는 ‘관피아’의 욕망과 부정부패의 탐욕을 막아내지 못하는 국가의 모습에 실망할 것이다. 하지만 『정치학』에 따르면 이러한 문제보다 재난위기 속에서 민주공화국이 공공선과 국민통합에 이르지 못하고 국론이 분열되어 국가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또한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국가 재난사태에 대해 합심하거나 건설적으로 노력하기보다는 이전투구 방식으로 서로를 비난하면서 정작 중요한 세월호 참사를 치유하거나 재발방지에 필요한 활력으로 나아가지 못한 점이 더 크게 지적되어야 한다 . 『정치학』은 민주정도 과두정도 최선의 정체가 아니며 ‘혼합정’만이 최선의 정체로, 이 속에서 국가의 분열을 막고 국민통합에 성공할 수 있다고 제언한다.
채진원 /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비교정치학
2014.7.16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