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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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부동산정책, 없는 이들의 빚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정부정책

 

임동근

임동근

기획재정부장관이 바뀌는 와중에 부동산정책을 포함한 정부의 경제정책 전반에 대해서 많은 말들이 오고간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내각의 인적 구성이 바뀔 때마다 언론은 정부의 정책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자신의 논지를 편다.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정부정책은 국가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아주 작은 변화라 할지라도 개인의 경제활동을 결정적으로 좌우하기도 하기에 사회는 이에 촉각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동산정책의 내용을 들춰보면 한없이 낯설고 당혹스럽다. 십여년 전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고 법석이었지만 오히려 폭등했고, 지금의 정부는 집값을 올리겠다고 난리지만 집값은 내려간다. 경제상황은 오르락내리락 급변하고 정부는 이 물결의 반대로 기를 쓰며 움직인다. 효율은 차치하고 효과 면에서도 우리는 정부의 정책실패만을 보고 있다.

 

새로운 부동산 정책, 말(言)의 향연

 

정치권의 여러 반응도 낯설다. 정치권은 정책의 실효성과, 그 효과의 유무와 정도를 놓고 따지는 것을 업으로 하는 곳이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를 살리겠다는 정부정책에 대해 야당은 실효성이 없다고, 부작용이 많다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야당도 부동산 경기를 살린다는 취지 자체에는 공감하는 것인가? 집값 상승을 비판하고 안정화를 논하던 사람들이 집값 하락은 원치 않기 때문인가? 부동산이라는 정책 이전에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그 가치지향이 무엇인지는 괄호 안에 감춰져 있다. 이는 효과를 논하며 존재이유를 지워버리는, 자유주의 통치성에서 늘상 보이는 전환의 순간이다.

 

낯섦은 정책의 말들에서도 나타난다. 정부는 부동산 경기를 살리고자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풀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 제도는 각각 2002년, 2005년에 집값 폭등을 막겠다고 도입한 것으로, 사회에서 널리 회자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실제로 얼마나 큰 힘을 발휘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어찌됐건 폭등을 막기 위한 장치인 만큼 이것이 사라진다고 당연한 폭락을 막을 수는 없다. 폭등과 폭락은 다른 동력 위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패를 물리듯 거둬들인다고 옛 상황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단지 사회적으로 집값 상승을 억제한다던 그 낯선 말들의 상징성이 여전히 소비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상징의 향연에서 정책의 언사들이 수많은 용어와 숫자들로 구성되고, 그 숫자들은 우리에게 마치 신탁(神託)인 양 행세한다. ‘주택매매거래지수’ ‘주택가격대비 전세가율’ 등의 숫자가 바뀔 때마다 정부정책은 당연히 필요한 것처럼 등장하고, 숫자에서 시작한 정책은 정부를 성공시키기도 좌절시키기도, 떼돈을 버는 이와 굶어 죽는 이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정책의 존재이유가 정당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주택담보대출비율은 당연히 주택담보대출을 정당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숫자는 사고의 덫을 만든다. 이번 경제팀은 LTV‧DTI의 비율과 그것이 적용되던 영토의 범위를 조정하겠다고 했고, 우리는 이것이 미치는 효과를 논하는 것 이상의 사고틀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그 용어는 2002년 이전에는 우리에겐 없던 것이기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도, 비율 높낮이의 찬성여부에 따라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원칙도, 이유도 희미해진 경제정책

 

잠시 시각을 넓혀 경제정책 전반에 걸친 정부의 말들을 생각해보자. 작년 정부는 집을 세놓는 사람에게 월세든 전세든 상관없이 세금을 제대로 걷겠다고 발표했다. 이유는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 때문이라고 했다. 십분 동의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 원칙은 이번 들어 슬금슬금 사라졌다. 또 정부는 기업이 쌓아놓은 돈에 과세를 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돈은 사회 곳곳으로 돌아야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또한 정부정책자가 기업인들을 만나 주식배당 등을 추진하라고, 그럴 경우 세금혜택 등 당근도 같이 주겠다고 했다. 투자자와 주주, 즉 부자들의 세계 안에서 돈이 돌면 그것이 낙수효과처럼 퍼져나가지 않음은 점점 더 명확해지지 않던가. 거기에 주식의 대부분이 외국인의 소유이기에 배당금은 외국으로 나간다. 결국 노동자의 임금상승, 청년과 장년의 고용문제 등 알맹이는 빠진 채, 경제가 원활하게 돌기 위해 사회 곳곳으로 돈을 흘려보낸다는 원칙은 희미해졌다.

 

연이어 정부는 부동산정책으로서, 집을 살 때 은행에서 대출을 많이 해주겠다고, 정확하게는 얼마 이상 빌릴 수 없던 돈을 더 빌려주겠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그 원칙 혹은 이유는? 앞에서 말했듯 기존의 제도들은 집값이 올라가는 것을 막는 장치이고, 지금 상황에서는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더이상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쪽도 이를 반대하는 쪽도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다. 왜 정부가 가계대출 중 주택대출 항목을 따로 관리하며 낮은 이자율로 돈을 빌려주는지, 거기에 왜 주택담보대출이 청년들의 학자금대출보다 더 싼 이자를 받는지 등에 대한 말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부의 부동산정책 변화, 가령 LTV와 DTI의 규정의 미세한 변화에 우리가 반응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성장동력으로서의 대출을 통한 가계지출 확대’라는 어설프게나마 감추어진 정부의 속내도 볼 수 있고, 그 정책의 효과는 당연히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이번 정책은 돈 없는 이들의 돈조차도, 아니 돈뿐만 아니라 힘도 없는 이들의 돈을 돌리고 싶은 정부의 욕심에서 나왔다. 이런 정책들은 필부(匹夫)들까지 빚으로 주식을 하게 만들고, 급전이 필요한 이들에게 신용카드를 남발하는 등등, 예전부터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볼 것들이다. 이번에도 지주들에게 세금을 걷겠다고, 기업의 쌓아놓은 돈을 풀라고 말 몇마디 건네다가 그 힘 앞에 움츠러들고는, 각종 다양한 방식의 빚 중 하나인 주택대출을 통해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그들의 미래 소득을 모두 끌어들이겠다는 말이다.

 

끝으로 정부가 고안해냈지만 수많은 비율로만 제시되며 잘 드러나지 않는 숫자들의 그래프를 보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하나는 주택거래수를 호별로 계산 한 그래프(자료1)이며, 다른 하나는 은행권의 주택대출과 주택매매 및 전세지수의 비교(자료2)이다. 자료1의 주택거래수를 통해 언론에서 말하는 ‘거래절벽’이 해가 바뀔 때마다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일정 수준으로 집을 사고판다. 정책에 따라 시기적 몰림이 있을 뿐이다. 자료2는 주택의 매매가보다 전세값이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규모와 비슷하게 움직임을 보여준다. 아직 전세대출에 대한 정부의 통계는 없지만 담보대출과 변화추이가 거의 비슷하고 그 액수도 담보대출의 1%도 안되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액을 비교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으나 전세값은 정부의 대출과 함께 계속 올라가고 있다. 이 둘의 인과관계를 따지는 것은 물론 중요하겠지만 주택대출의 사회적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빚은 쌓이고 전세값은 올라간다.

 

자료1. 주택거래동향 <출처: LH>

자료1. 주택거래동향

 자료2. 주택담보대출 증가와 주택매매 및 전세 가격지수 변화 <출처: 한국은행(대출), 국민은행(가격지수)>

자료2. 주택담보대출 증가와 주택매매 및 전세 가격지수 변화

 

 

임동근 / 매핑 및 모델링 연구소 소장 

2014.7.23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