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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영 장편 『달 위를 걷는 느낌』

dal우리의 미래는 과거를 닮지 않는다

- 김윤영 장편 『달 위를 걷는 느낌』


지난 3월 시청 앞 광장에 갔다. 후꾸시마 원전 사고 3주기 행사가 한창이었다. 후꾸시마에서 온 주민들의 발언시간도 있었다. 그들은 죽음의 땅에서 묵묵히 이어온 삶에 관해 들려주었다. ‘생의 기록’이라고 행사 제목이 크게 적혀 있었다. 아이들도 제법 많았는데 광장을 뛰어다니며 웃고 떠드느라 참담할 겨를이 없어 보였다.

 

“우리 미래는 과거를 닮지 않을 거야.”(9면)

나는 아이들에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우리 곁에는 설계 수명이 진작 만료된 원전들이 버젓이 가동되고 있고, 이따금 불시에 멈춰 서기도 하고, 납품과 설치공사를 둘러싼 금품 비리 사건들이 쉬쉬하며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채 이자처럼 대책 없이 쌓여가는 방사능 폐기물 역시 입을 얼어붙게 만드는 요인이다.

 

“아빠가 제게 이렇게 말했어요. 끔찍한 시간이 닥치겠지만 꼭 기다리라고요.”(234면)

후꾸시마에서 여전히 삶을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나중을 기약하였다. 날마다 폐허를 응시하며 그들은 어떤 기다림을 꿈꾸는 걸까.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 피어나는 사유

 

가까운 미래에 관한 이야기는 때로 섬뜩하다. 별수 없이 내가 살아내야 할 시간인 탓이다. 김윤영의 청소년소설 『달 위를 걷는 느낌』은 지금으로부터 딱 한 세대 뒤의 삶을 가늠한다. 그 속에는 예측을 뛰어넘는 기상천외함 대신 익숙하게 반복되는 풍경들이 있다. 어른들이 자본의 고삐를 쥐고 세상의 질서를 공고히 하는 동안 아이들은 장애를 비정상으로 인식하고 약한 자를 괴롭히며 자신의 시간을 축낸다.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분류되는 어린 여자아이 루나에게 인생이 녹록지 않은 이유다. 아이는 늘 불안에 시달린다.

 

“사람들은 다 나를 놀리고 내 유전자는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아요.”(113면)

아이의 유일한 버팀목은 아버지였다. 그는 천체 물리학자이자 핵융합 과학자이고 운 좋게 기회를 얻어 달에 다녀온 우주 비행사이지만, 예견된 원전사고를 목격한 뒤 환경운동가를 자처한 원칙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상식과 원칙이 증발한 세상에 더이상 그의 자리는 없다. 그는 3년째 바람풍선처럼 병원에 누워 있다.

 

시절은 더욱 수상하여 코 없는 아기가 태어나고, 2미터짜리 지렁이가 출몰하고, 숲에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고, 아동복지국은 장애인과 영재를 모두 관리한다. 그럼에도 생명과 안전의 문제는 여전히 정치적 거래의 대상일 뿐이다. 아이는 등이 거북이처럼 딱딱해지는 시간들을 오롯이 혼자 힘으로 버티며 친구를 사귀고, 이웃을 만나고, 자기 안의 오해와 편견을 힘겹게 넘어선다.

 

“괴로운 기억의 총량은 줄어들 거예요. 에너지란 원래 그렇거든요.”(148면)

현실은 소설과 달라서 개인의 호의에 기대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미래에서 온 메시지가 삶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나침반이 되어주는 일도 아마 없을 것이다. 다만 위로가 되는 것은 ‘사상은 부귀한 신분에서 탄생하지 않는다’(시라까와 시즈까 『공자전』; 우찌다 타쯔루 「절반은 포기하고 사는 것의 미학」,『민들레』 Vol.93, 132면에서 재인용)는 사실이다. 불행히도 가진 것을 모두 잃었을 때, 우리는 세상의 구조에 대해 근원적인 사유를 시작할 기회를 얻는다. 에너지란 또한 그런 것이다.

 

후꾸시마의 미래에 대하여

 

억지로 머릿속에 구겨넣어야 할 것들이 많은 요즘 아이들은 눈치가 빤하다. ‘달 위를 걷는 느낌’에 대해 물으면, 그거 시험에 나와요? 되물은 뒤 스마트폰으로 얼른 답을 검색할지도 모른다. 불안한 세상에 어떻게든 안착하도록 길들여진 탓이다. 이 책의 미덕은 그런 아이들에게 부단히 삶의 원칙을 전하려 애쓴다는 데에 있다.

 

“우리 인간에겐 경이로움을 향한 시적인 욕망이 있단다. 과학의 원동력도 이와 다르지 않지. 과학 안에도 아름다운 시가 존재할 수 있고,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게 바로 과학자의 임무란다. 인간의 존엄성은 꺾이지 않아.(중략) 약하고 느리더라도, 아빤 그 사실을 믿어.”(228~29면)

 

눈앞의 세상은 언젠가 무너질 것이다. 영원한 시스템은 불가하며, 기차도 종국엔 멈추게 마련이다. 그리고 무너진 세상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순정한 사상과 원칙이다.

 

“그래서, / 우리의 미래는 과거를 닮지 않을 거야.”(228면)

지난 3월 시청 앞 광장에서 만난 후꾸시마 이와끼의 주민들은 오염된 땅 위에 손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렇게 발전한 전기를 축전지에 넣었다가 밤에 쓰고 있으며, 태양열 온수기와 태양광 전등을 만드는 워크숍도 진행 중이라 했다. 그들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후꾸시마의 미래에 대해 말하였다. 나는 이보다 더 강력한 탈원전의 메시지를 들어본 적이 없다.

 

 

진형민 / 동화작가

2014.7.3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