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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이사회는 비밀조직인가

2011년말의 국립대학법인 출범 이후 서울대학교의 운영은 점점 더 과거의 전통과 관행은 물론이고 최소한의 상식과도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과거에 문제가 없었다는 말은 결코 아니지만, 법인체제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이 국립대학 시절에는 없었던 이사회의 구성과 운영이다.

 

서울대 이사회는 대학 운영과 발전을 책임지는 최상위 의결기구이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이사회 관련 법규는 처음부터 많은 우려를 낳았으며, 최근의 총장과 이사장 선출과정에서 심각한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영구집권’이 우려되는 서울대 이사회

 

법에 따라 외부인사를 2분의 1 이상 포함하는 서울대 이사회는 외부인사 8인, 내부인사 7인, 총 15인으로 구성되었다. 총장, 부총장 2인, 기획재정부와 교육부 차관 각 1인, 평의원회의 추천을 받은 인사 1인이 포함되며, 첫 이사장은 총장이 겸직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런 구성 자체가 외부 이사들이 이사회를 좌우할 가능성을 높여놓았다. 더구나 이사후보초빙위원회가 “이사장을 포함한 5명 이내의 이사(그중 2분의 1 이상은 외부인사로 한다)와 2명 이내의 이사가 아닌 내부인사로 구성”(정관 제5조 3항)되는 조건에서 일단 구성된 이사회가 기존의 이사진에 의해 자기재생산되면서 일종의 ‘영구집권’ 상태를 굳힐 염려가 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사립대학 정관은 사립학교법에 근거한 교육부 고시에 따라 이사의 성명, 연령, 임기, 현직 및 주요경력 등을 대학 홈페이지에 상시 공개토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대 정관에는 해당 조항이 없다. 이사의 사진, 성명, 현직만이 홈페이지에 나와 있으며, 연령과 주요경력, 임기(!)는 숨겨져 있다.

 

사립대 정관은 사학법에 따라 이사회 개최 후 회의록을 10일 이내에 홈페이지에 올려 3개월간 공개하며 비공개사항은 사립학교법 시행령 제8조의2에 한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대는 “이사회의 의사결과는 공개한다. 다만, 이사회에서 비공개하기로 의결한 사항은 공개하지 아니한다”(정관 제17조 3항)라는 관련 조항이 유일하니, 그야말로 엿장수 마음대로다. 신임 이사장으로 두산그룹 회장을 역임한 박용현 이사가 선출되어 사회적 이목을 끈 8차 이사회(7월 28일) 회의록은 보름이 넘은 8월 13일 정오 현재 홈페이지에 게시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고등교육법 개정을 통해 국립대학법인을 국립학교로 규정했지만, 서울대는 국립대학도 사립대학도 아닌 어정쩡한 법적 지위를 가진 상태에서 편의적으로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가는 기형적인 운영을 하는 셈이다.

 

사립대와 달리 내부인사인 교수들이 이사회에 포진하게 되어 있는 것도 학내 구성원의 의사를 반영하는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 효과가 크다. 사립대학의 경우, 사학법에 따라 이사나 감사가 해당 법인이 설치·경영하는 학교의 교원 혹은 직원(단, 총장은 예외)을 겸직할 수 없다. 이러한 법률의 취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유독 (내가 보기엔 사립대학이나 매한가지인) 서울대만이 이사회에 부총장 2인 외에도 내부인사인 (명예)교수 4인이 이사로 재직한다. 하지만 이들이 학내여론을 대변하도록 보장할 제도적 근거는 없다. 오히려 내부 이사의 존재는 교수진 사이에 어지러운 학내 정치가 난무할 여지만 넓혔고, 그것은 이번 총장과 이사장 선출에서 어김없이 현실화되었다. 이 모든 일이 궁극적으로 국립대학도 사립대학도 아닌 기형적인 법인체제 탓이다.

 

한마디로, 서울대 이사회는 ‘낙하산 인사’가 늘 벌어지는 정부 산하의 공공기관이나 정부 투자기관 이사회 수준의 독립성과 자율성도 제도적으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당연직 이사인 기재부와 교육부 차관은 바쁘면 휘하의 직원을 회의에 보내도 좋도록 정관에 규정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대 교수와 서울대병원장을 지내긴 했지만 재벌그룹 회장 출신인 신임 이사장이 참된 대학발전에 기여하리라고 믿기는 쉽지 않다.

 

국민과 학내 구성원 위에 군림하려는 처사

 

지난 6월 이사회는 자신들이 추천한 인사 5인을 포함한 총 30인(외부인사 10인 포함)의 총장추천위원회가 몇달간 활동하여 올린 3인의 총장 후보자 중에서 1순위자가 아닌 공동 2순위자 중 한명을 최종 후보자로 확정했다. 오랜 관행은 무시되었고 아무런 사유도 제시되지 않았다. 더 가관은 총장 선출과정에서 이사들 간에 입장표명이나 의견교환도 없이 바로 비밀투표를 했다는 점이다. 외부연구비까지 합치면 1조원을 넘나드는 예산과 수만명의 교직원 및 학생을 거느린 ‘국립학교’를 이끌 총장을 기명투표 아닌 이런 방식으로 뽑아도 되는가? 왜 전임 오연천 이사장은, 그리고 이사들은 서로에게 자신의 입장을 굳이 숨겨야 했나?

 

궁금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딱 두가지만 추가질문을 던진다. 첫째, 6월 19일 6차 이사회에서 총장 후보를 확정하는 표결은 1차에서 싱겁게 끝났다. 그런데 이사들이 사적으로 밝힌 바에 따라 표를 합산하면 총 지지표가 이사 총수인 15표를 넘는다고 한다. 몇몇 이사는 아무개를 찍었다고 말하면서 실제 다른 사람에게 표를 던진 것이다. 대체 왜?

 

둘째, 신임 성낙인 총장은 취임 직전 평의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자신도 이사장을 겸하면서 추진력을 발휘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런데 얼마 후의 이사장 선출과정에서 막상 성총장을 지지한 표는 단 1표였다고 한다. 그가 갓 임명한 두 부총장마저 표를 주지 않았다. 그사이에 무슨 변화가 있었기에 이러한가? 회의록이 공개되어도 알기 힘들 것이다. 한마디로, 비밀기관과 유사한 이사회가 한국을 대표하는 대학이라는 서울대 위에 군림하는 형국이다.

 

이사회에 대한 평의원회와 교수협의회의 요구는 여전히 유효하다. 평의원회는 총장 선출결과에 대해 “납득할 만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 이사회와 총장은 공식 사과하고 엄중히 책임”지고 “대학의 자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속히 관련 법규를 개정”하라고 요구했다. 교수협의회도 임시총회를 통해 “현 이사회는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고 서울대의 공공성에 합당한 국민적 대표성을 가지도록 “이사회의 구성방식을 바꾸고 이사회 운영의 투명성을 보장할 것을 약속”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연천 전임 총장은 총장 이임사에 미적지근한 유감표명을 슬쩍 끼워넣는 꼼수를 쓰는 데 그쳤다.

 

하나의 집단으로서 대학의 공공성과 자율성을 위해 제대로 싸워본 이력이 없는 서울대 교수들의 주장을 이사회는 가볍게 무시할 것이다. 그것 하나는 귀추가 전혀 궁금하지 않다. 궁금한 것은, (나를 포함하여) 서울대 교수들이 대학의 대학다움을 위한 싸움에서 정말 환골탈태하여 국민 앞에 자신의 소임을 다할 것인지의 여부이다.

 

 

김명환 / 서울대 영문과 교수

2014.8.13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