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남북 당국, 아직도 준비가 덜 되었는가?
올해 박근혜 대통령의 8·15 경축사 중 남북관계의 열쇠말은 뭘까? ‘환경협력’ ‘민생협력’ ‘소통’과 ‘융합’이라는 단어가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져 있지만 무게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강조점은 북한의 ‘성찰’에 가 있다. 그것은 경축사의 초입에 나오는 “북한의 남침에 맞서 나라를 지키고자 피와 땀과 눈물을 바쳤”다는 찬사에서 시작하여 “계속되는 미사일 발사와 핵개발로 대한민국에 위협을 가하고”로 끝나는 분노감 표현 어휘에 담겨 있다.
한편, 8월 14일에 북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발표한 성명의 키워드는 ‘완전한 자주독립’이다. “조국의 남반부에서 일제의 강점 40여년이 미제의 강점 70년으로 이어”졌기에 오늘 제1의 과제는 “조선반도에서 미국의 지배와 간섭을 끝장내”는 것이다. 김일성의 통치담론인 민주기지노선은 이렇게 살아왔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도, 김정은 제1위원장도 6‧25전쟁을 포함한 남북대결사에 책임이 없는 2, 3세대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야말로 서로를 구속할 수 있는 과거의 책임을 죽은 사람에게 떠넘길 수 있는 위치의 인물인 셈이다. 그러나 둘의 선택은 오히려 과거에서 지지를 구하는 행보로 이어졌다.
엇박자를 거듭하는 남북
과거를 향한 구애는 북에게서 더 두드러지는데, 이는 ‘백두혈통’의 통치체제를 가장 중요시하는 북의 특성상 불가피한 것이다. 과거에의 의존 프레임을 잘 보여주는 것이 7월 7일의 강조이다. 북은 이 날을 계기로 국방위원회 중대제안을 내놓고 ‘조선정부’ 성명을 발표했다. 7월 7일은 김일성 사망(1994) 하루 전날로, 그날 김일성 주석은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 시기 북남최고위급 회담에 관한 력사적 문건에 불멸의 최종 서명을 남”겼다고 한다. 2013년 12월 장성택을 숙청하는 날을 선택할 때, 김정일 위원장 사망일인 12월 17일(2011)을 염두에 두었던 설계와 닮아 있다. 그때와 비교해서 다른 점이 있다면 김정은의 지도력이 대남관계와 통일문제로 이동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런데 이 맥락에서 유의 깊게 봐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과거에의 구애가 반드시 보수화의 의미로만 연상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 올해 7월 7일 발표한 ‘조선정부’ 성명은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선수단 파견을 공식화하고 있다. 북의 이 발표가 남북관계에 대한 긍정적 신호였음은 물론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일관된 특징을 보여준다. 그의 2014년도 야심작인 드레스덴 연설(3.28)을 보자. 여러 긍정적 대북제안과는 별개로 상대를 야유하는 표현들이 눈에 들어온다. “경제난 속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거리에 방치되어 있었고 추위 속에서 배고픔을 견뎌내고 있”다거나 “자유와 행복을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탈북자”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대통령의 연설에 담기에는 매우 불편한 이런 표현들을 굳이 집어넣는다는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기억의존 성향도 지독하다 할 수 있다.
남북이 보이는 이런 현상들의 이면에는 통치 중심의 사고방식이 있다. 하나의 정권으로서 지지세력 결집효과를 늘 염두에 둔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남북관계는 남북 각각의 정치에 종속되어 있다. 그렇다면 남북관계는 앞으로도 이런 엇박자만 계속 보게 될 것인가?
기대와 안타까움이 공존하는 상황
실망스러운 8·15가 지나간 후, 남북관계의 변화를 조망할 수 있는 소식이 두곳에서 들려왔다. 하나는 개성에서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5주기(8.18)를 맞아 북이 보낸 조화를 주고받는 작은 행사에 북의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나타나 대면접촉에서 전할 수 있는 좀더 현실적인 메시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 만남에서 김양건 부장이 한미군사훈련, 북핵폐기의 거론, 언론 등의 대북비난을 놓고 강하게 ‘푸념’한 것은 사실이고, 거기 덧붙여 한국정부가 5·24조치 문제나 금강산 관광에 대해 과감한 결단을 했으면 한다는 북의 분위기를 우리 측 인사들이 느꼈다고 한다.
다른 한곳은 8월 18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로, 여기서 통일부가 2차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 중 ‘2014년도 시행계획’을 보고했다. 통일부는 이 시행계획 수립에 대해 2006년 남북관계발전에관한법률 제정 이후 ‘처음’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통일준비위원회 출범 등 최근 바빠진 통일부의 동향과 더불어 조금은 의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물론 내용은 대통령의 연설수위를 벗어나지 않는 정도로 미미하다. 다만, 8월 11일에 북에 제안한 고위급 접촉과 연관하여 5·24조치까지도 만나서 논의할 수 있다는 언급을 한 것이 변화라면 변화다.
5·24조치 문제는 천안함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와 맞물려 남북이 쉽게 넘을 수 없는 금역(禁域)이 되었다는 지적이 있지만 2014년을 넘어오면서는 좀더 분명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것은 2013년에 남북경제협력 지표가 2012년에 비해 무려 42% 수준의 감소를 경험한 것과 관련이 있다. 5‧24조치로 일반교역과 위탁가공교역이 거의 소멸된 상태라는 점을 감안하면 개성공단에서조차 교역이 거의 반토막이 나고 만 것이다. 남북 공히 서로 다른 곳을 쳐다보며 통일 통일 하는 중에 남북관계는 바짝 말라 바닥을 드러낸 호수 같으니 안타까움이 더하다.
남북 당국은 스스로 얼마나 준비가 되어야 서로에게 진실해질까?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정권 차원의 준비라는 건 결국 ‘선건설 후통일’의 족쇄에 갇혀 정권의 안위만을 생각하다 아무것도 못하고 끝날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남북 당국에게 두려움에서 벗어나라고 충고하고 싶다. 우리가 보기에, 서로의 필요는 충분하며 단지 한마디 말이 모자란 정도라고 말해주고 싶다.
9월 19일에 인천아시아경기대회가 시작된다. 여기 북 선수단이 온다. 서로를 돌아볼 또 한번의 기회다. 좋은 결실이 났으면 하는 기대를 끝내 감추지 못하는 것이 분단현실을 사는 우리네 삶이다.
정현곤 / 세교연구소 상임기획위원
2014.8.2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