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참여연대 20주년에 생각하는 시민운동의 미래
한국의 대표적 시민운동단체인 참여연대가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1987년 6월항쟁 이전, 아니 식민지시기, 더 거슬러 올라가 독립협회 시절까지 우리 근대 시민운동의 기원을 추적할 수 있지만, 현재와 같은 대변형(advocacy), 포괄적 시민운동은 89년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창립과 이후 참여연대의 창립(1994)에서 시작되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참여연대 준비와 초기 활동에 개입한 사람으로서 나 역시 여러가지 기억과 감회를 갖는다.
참여연대는 정부나 기업의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지금까지 잘 버텼고, 반부패·복지·경제민주화 등 각종 의제를 설정하고, 정부·대기업과 싸워서 이겼고, 평범한 시민들을 각성시키고 동원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었다. 권력감시, 입법청원, 비리정치인 퇴출, 재벌감시, 공익소송, 정보공개 압박, 내부고발자 격려, 새로운 사회적 의제 설정 등 수많은 일을 새롭게 시작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우리 사회에도 약자를 대변하는 공익조직이 있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보여주었다.
한국사회가 만들어낸 새로운 운동, 그리고 위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이렇게 중앙정치를 감시하고, 여러 사안을 다루는 포괄적 시민단체의 등장은 한국의 독특한 정치사회의 산물이다. 노조의 정책적 역할이 미약하고 풀뿌리 지역 주민참여가 거의 없는 가운데, 중앙정부나 관료조직은 공공성과 책임성을 거의 갖지 못하고, 제1야당은 약자를 대변하지 못하며, 분단냉전 조건의 제약 때문에 기성 여야 정당은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별 차별성이 없을뿐더러 진보정당이 제대로 클 수 없는 반쪽의 ‘민주화’ 국면이 만들어낸 시대적 산물인 것이다.
이런 새로운 비판·견제세력의 등장을 손톱 밑의 가시처럼 여긴 권력집단은 주로 그들의 대변지인 보수언론을 통해 각종 색깔시비, 흠잡기, 성과 묵살하기와 깎아내리기 공세를 취해 왔다. 이 과정에서 운영의 미숙함, 전문성의 부족, 일부 대표들의 잘못된 처신으로 공격의 빌미를 주기도 했고, 조직 내부에서도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특히 이명박정부 이후에는 낡은 관변단체들이 ‘시민단체’의 이름으로 정부의 지원을 독식하면서 정부지원에 의존하던 시민단체의 존립은 더욱 힘들어졌고 영향력도 축소되었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시민단체의 주요 지지층인 중산층의 몰락과 경제양극화, 공공 마인드의 쇠퇴와 소비주의의 심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내부의 관점에서 보면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이벤트 사업이나, 풀뿌리 대중의 참여를 오히려 어렵게 하는 소송 등에 과도하게 의존하거나, 청년, 촛불시민 등 비정형적이고 일시적인 참여세력을 조직화하지 못한 조직 타성에도 책임이 있을 것이다. 특히 애초 기치로 내건 시민참여를 통한 시민 의식화, 우리 전통사회의 개념을 동원하면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新民)을 계속 화두로 잡아 추진하지 못하고 단기 성과나 정치상황 변화에 과도하게 흔들린 점은 없었는지 반성해볼 점이 있다.
시민과 함께하는 시민운동의 미래
지난 2000년 당시 낙천·낙선운동이 전국을 뒤흔들 때 후원금 2억이 모였다는 소식을 접한 어떤 외국인이 어이없다는 듯이 한 말이 생각난다. “나는 이 정도의 운동이면 후원금이 200억은 모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2억이 뭔가?” 그렇다. 한국 사람들은 교회나 절에 헌금하거나,친구들과의 술값에 지출할 돈은 있어도 시민단체에 단돈 1만원을 후원할 의사는 없다. 이것이 오늘 한국의 시민운동, 아니 민간의 힘이 빈사상태에 있고 ‘관피아’ ‘교피아’ ‘법피아’가 이렇게 창궐하는 물적인 현실이다.
의로운 시민, 내부고발자가 조직에서 보복을 당해도 싸우며 버틸 수 있는 근거가 있다면 지금의 세월호참사나 지난 정권의 4대강 비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질서가 심화된 지난 20년 동안 시민들의 자발적 후원이나 참여는 더 드물어졌다. 게다가 학생운동의 소멸, 뜻있는 청년교육기관의 부재, 각종 자원봉사 사업을 대기업이 주도함으로써 여러 시민단체에서는 공익 마인드를 갖는 청년 간사를 구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
물론 상황 탓만 할 일은 아니다. 전근대적 군사주의 억압과 자본 만능의 문화가 이중적으로 옥죄는 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각 영역과 지역의 구체적 ‘시민’과 밀착하여 그들을 대변해야 하고, 장차 그들이 문제해결의 주역이 되도록 해야 한다. 시민운동에만 몸담아도 충분히 생계를 유지할 수 있고, 사회적 영향력도 발휘할 수 있다는 전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자면 모금을 더 과학화해서 재정적인 기반도 안정화시켜야 할 것이다. 선진 외국처럼 어릴 때부터 기부 참여가 몸에 밸 수 있도록 청소년 교육에도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맥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가 국가나 제도, 정치나 시장에 덜 의존하고서 스스로를 치유하고 또 문제해결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역량을 시민단체가 앞장서서 마련하는 일이다. 갈 길이 멀다.
김동춘 /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2014.9.3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