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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 무엇이 문제인가?

 

백병부

백병부

2010년에 지정된 1기 자사고(자율형사립고)의 재지정 평가가 진행되면서 자사고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특히 평가 대상 자사고 14개교 중 8개교의 재지정을 취소하기로 결정한 서울에서는 서울시교육청, 자사고 교장단, 입장을 달리하는 시민단체들이 연일 충돌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교육부는 서울시교육청의 결정이 교육감의 재량권 일탈 및 남용에 해당한다면서 자사고 지정취소를 위한 협의 요구를 반려한 데 이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의 개정을 통해 교육자치의 흐름을 되돌리려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자사고가 학교교육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학교선택권을 통해 학부모와 학생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고, 경쟁을 통해 공교육의 질을 전반적으로 개선시키겠다는 원래의 목표를 달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다른 사람들은 자사고의 부작용을 인정하면서도 자사고가 전체 고등학교의 2.1%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리 교육에 끼치는 영향은 그렇게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자사고가 도입 당시의 명분과는 달리 우리의 공교육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들고 있으며, 이를 방치할 경우 멀지 않은 장래에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사고 뒤에 숨겨진 욕망

 

자사고의 도입 명분 중 하나는 학교선택권을 통한 학부모와 학생의 다양한 요구 충족과 경쟁을 통한 공교육의 질 개선이다. 그러나 이러한 명분은 경기침체 국면에서 기득권 수호에 위기의식을 느낀 상층계급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것이었다. 경제팽창 국면에서 학력경쟁을 통해 상층계급으로 진출하는 데 성공한 기득권층의 불안은 자식세대에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학력경쟁에서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표출되었다. 그에 따라 이들은 집요하게 고교평준화 정책을 공격했고, 급기야는 상층계급 자녀들을 위한 귀족학교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사고를 도입하고자 했던 것이다.

 

자사고 도입 이후에 나타난 공교육 생태계의 변화는 도입 당시부터 충분히 예상되었던 것이다. 자사고가 사회경제적 배경이 우월한 상위권 학생들을 선점하면서 입시 명문고로 자리를 잡은 반면 일반고는 학생 구성이 달라지면서 정상적인 수업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위기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궁극적으로 현대사회에서 학교가 계층이동의 사다리이기보다는 계급을 재생산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는 갈등론자들의 논의와 일맥상통한다. 일반고보다 세배 정도 많은 납입금을 내야 하는 자사고의 확대로 인해 학생 구성이 달라졌다는 것은 학교 유형에 따라 학생의 성적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배경이 상이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에 따라 학교 간 학업성취 격차가 심화되어 결국 학교가 계급을 재생산하는 기제로 작동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고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자사고의 확대를 비롯해 일반고를 둘러싼 구조적 조건이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고교선택제와 학교다양화 정책이 동시에 추진되는 상황 속에서 일반고는 상대적으로 사회경제적 배경이 우월한 학부모와 학생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비교육적 결과는 간과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많은 일반고가 상위권 학생 중심의 입시지도와 야간자율학습 부활, 강력한 규율을 통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 구 패러다임의 부활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같은 현상은 급기야 사회경제적 배경이 열악한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내모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자사고 폐지는 공교육 혁신의 필요조건

 

사정이 이렇다면 자사고로 대표되는 사적 자유 신장을 위한 정책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무기력한 부모와 학생들이 학교교육을 포기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학교선택권을 비롯한 사적 자유의 극대화 전략을 추진한 결과 공교육이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영국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정책 당국의 방조 아래 최종적으로 누가 승자가 될 것인지 뻔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서 패자가 될 것이 확실한 학부모, 학생들이 학교를 신뢰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뜨거운 교육열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다. 나아가 계급이 재생산되는 상황에서 학교가 계층상승에 대한 기대와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해주지 못할 때 학생들은 반(反)학교문화를 형성하여 자발적 저항의 길로 나서게 된다는 저항이론가들의 주장이 한국사회에서도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국가의 교육정책은 국민이 교육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을 때라야 의미가 있다. 따라서 국가는 학교서열화와 국민의 교육포기 선언을 야기할 수 있는 제반 정책에 대해 재검토하고, 가정배경이 영향을 덜 끼칠 수 있는 방향으로 입시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선 성적과 가정배경이 우수한 학생을 과점하고 있는 자사고 정책은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통해 국가 수준에서 전면적으로 폐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8개 자사고를 지정 취소하기로 한 서울시교육청의 결정은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진 것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재지정된 자사고의 인기는 더욱 높아질 것이며, 이것이 공교육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경기도교육청을 비롯한 여러 시·도교육청에서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을 선도하고 있는 혁신학교 정책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경기도교육연구원에서 수행한 일련의 연구에 따르면 혁신학교는 자사고와는 반대로 형평성, 협동과 소통, 자율성 등을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우리 학생들에게 부족한 정의적 영역이나 삶의 태도 측면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다. 나아가 혁신고등학교는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일반고의 위기를 해소하는 데 의미있는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혁신고등학교에서는 지금과 같은 구조적 조건의 변화가 없다면 혁신의 성과가 지속되기 어렵다고 토로하고 있다. 서열화된 고교체제와 이를 용인하고 조장하는 입시제도가 변화하지 않는 한 혁신고등학교의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은 불안 속에서 학교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학교서열화 체제 속에서 구 패러다임의 복원을 통해 위기를 해소하려는 일반고가 증가하면서 혁신고등학교를 통해 확인한 교육혁신의 가능성이 뿌리내리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국가 수준에서 자사고를 폐지하는 것이 공교육 생태계 복원의 필요조건이라면 혁신학교의 확산은 그 충분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백병부 /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

2014.9.1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