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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후이 『절망에 반항하라』

사상과 이데올로기 사이

- 왕 후이 『절망에 반항하라: 왕 후이의 루쉰 읽기』, 글항아리 2014

 

 

julmang위험한 사상가

 

아마도 현재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을 꼽으라면 왕 후이(汪暉, 1959~ )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1980년대말 루쉰(魯迅) 연구자로 혜성처럼 나타난 그는 화산처럼 들끓던 1990년대 중국 지식계에서 ‘신좌파’의 선봉장으로 성가를 올렸다. 또한 1996년부터 2007년까지 종합교양지 『두슈(讀書)』를 중국 최고 지성의 반열에 올려놓은 인물이기도 하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왕 후이의 발언은 이미 무시할 수 없는 파장을 지니고 있다.

 

그런 만큼 왕 후이는 또한 문제적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주위에는 항상 논란과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그를 둘러싼 의혹은 단적으로 말해 그의 사상적 입장과 국가 이데올로기 사이의 거리를 겨냥한다. 『중국 현대사상의 흥기』(전4권, 2005)로 윤곽이 드러난바, 1990년대 이래 왕 후이의 방대한 사상사 작업에는 그 전제와 목적이 대체로 명확하다. 간단히 말하면 중국 현대국가의 제도와 이념을 뒷받침할 사상적 자원을 근(近)과거인 만청(晩淸)에서 찾음으로써, 근대 서구의 민족국가(nation state)와 구별되는 중국 국가 모델의 근거를 확보하는 것이다. 물론 이 기획을 위해 전적으로 만청에만 기대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왕 후이는 마오 쩌둥(毛澤東)으로 대표되는 중국 좌파의 사상유산으로부터 신자유주의에 맞설 대안적 국가상을 모색해왔다. 말하자면, 사상가로서 왕 후이의 야심은 서구식 민주주의에 기반한 근대 민족국가를 넘어서는 새로운 국가 모델의 정당성을 중국의 내부―멀게는 만청, 가깝게는 사회주의 현대―에서 찾는 것, 그의 표현을 빌리면 “진정으로 근대성에 맞서는 근대”를 찾는 작업이다.

 

‘근대를 극복하는 근대’의 사상자원을 중국 ‘안’에서 찾으려는 왕 후이에 대해, 현대판 중화주의자라거나 국가 이데올로기의 옹호자라는 의혹과 비판이 끊이지 않아왔다. 물론 타당성 있는 비판이다. 문제는 이러한 비판이 대상에 대한 인식적 진입을 차단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분명 왕 후이는 우리 시대 흔치 않은 사상가형 지식인이다. 왕 후이가 주는 불편함은 우리가 중국을 인식하고 중국과 관계 맺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관문이다.

 

루쉰의 역설

 

그런 점에서 왕 후이 청년시절의 저작 『반항절망』의 한국어판 출간이 반갑다. 이 책은 1988년 중국사회과학원에 제출된 그의 박사논문이다. 1990년 대만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1991년과 2000년 상하이와 허베이에서 재판이 나왔다가 2008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한국어판 『절망에 반항하라』(송인재 옮김)는 2008년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중국 지식인 대부분이 그렇지만 왕 후이는 책이 나오고 나서도 줄기차게 글을 고치는 사람이다. 20년의 간격을 생각할 때 사고의 변화도 있겠지만 사실 정치적 상황 같은 외적 요인도 무시하기 어렵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1990년에 나온 초판이야말로 왕 후이의 맨얼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절망에 반항하라』에서 지금 왕 후이의 모습을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전에는 루쉰 연구자에서 사상가·이론가로의 변화가 꽤 드라마틱한 변신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찬찬히 읽어보니 그의 사유의 골격은 이미 이 책에 다져져 있었다. ‘계몽자’ 루쉰이라는 종래의 관점에서 벗어나, 서구 근대문명에 회의하고 반항하는 반(反)이성자로서 루쉰을 읽어내는 왕 후이의 해석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그간의 루쉰 연구가 좀처럼 조명하지 않았던 니체(F. W. Nietzsche), 슈티르너(M. Stirner), 안드레예프(L. N. Andreev) 등과의 영향관계에 주목하면서, 그는 사회에 대한 명징한 인식을 지닌 계몽자가 아닌 분열과 혼돈 속에 몸부림쳤던 루쉰의 절망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이 책의 독보성은 단연 루쉰의 역설을 부각한 데 있다. 20세기초 서구의 반근대 사상조류와 루쉰을 연결시키면서도, 왕 후이는 결코 루쉰을 극단적인 반근대주의자로 읽지는 않았다. 그는 근대에 대한 루쉰의 회의와 부정이 자기에 대한 부정, 즉 중국 전통에 대한 부정과 한몸을 이룬다고 보았다. 세계와 나, 근대와 전통에 대한 부정이 몸속에서 벌이는 사투, 이것이 바로 루쉰의 역설이자 ‘문학자 루쉰이 사상가 루쉰을 부단히 탄생시키는’(竹內好) 지점인 것이다. 루쉰은 서쪽에 무덤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상처난 다리를 절뚝이며 서행(西行)을 멈출 수 없었던 과객(『들풀』)이다. 이 역설의 여정을 왕 후이는 “절망에 반항하다(反抗絶望)”라는 말로 집약한 것이다. 계몽에 회의했던 계몽자, 자유와 민주를 제기하면서도 믿지 않았던 의심쟁이, 근대에 맞섬으로써 진정한 근대인이 된 루쉰. 『절망에 반항하라』에는 이러한 역설의 바퀴가 쉼 없이 돌고 있다.

 

정신해방 시대의 고아

 

이는 왕 후이의 역설이기도 하다. 근대에 반항하면서도 근대인이 되어야 했던 루쉰의 곤혹은 바로 1980년대말 청년 왕 후이가 맞닥뜨린 곤혹이었다. 이번에 『절망에 반항하라』를 읽으면서 새롭게 발견한 것은 이 책이 루쉰 연구서로뿐 아니라 1980년대 중국 지식인의 내면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미있는 저서라는 사실이다. 80년대란 어떤 때인가. 문화대혁명의 종결 후, 사회주의 30년의 혁명역사와 ‘고별’하고 개혁개방으로 열린 신천지를 향해 달려나가던 때가 아닌가. 『절망에 반항하라』에는 우상의 세계를 잃고 우연의 세계로 던져진 황당함, 자유가 생겼지만 돌아갈 집을 잃은 막막함에 포위된 고아의 심경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이 책의 키워드인 ‘역사적 중간물’은 비단 루쉰만이 아니라 루쉰을 응시하는 독서주체, 왕 후이 자신에 대한 분석이 투영된 것이기도 하다. 왕 후이의 ‘역사적 중간물’은 한마디로 자기부정 이론이다. 왕 후이 스스로 역설하듯 이 자기부정은 소극적인 정서가 아니다. 전통 전반에 대한 최고 수위의 철두철미한 부정을 통해 자기에 대한 존재론적 탐문을 바닥까지 밀고 내려가는 것이 ‘중간물’ 이론이다. 이 개념을 설명하면서 왕 후이는 ‘구체적 체감의 세계관’을 거듭 언급한다. 세계를 지배해온 규범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폐허에서, 어떤 외적 절대자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내면의 사투를 통해 자신과 세계와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젊은 왕 후이의 실존적 고뇌가 여기에 담겨 있다.

 

문학자와 사상가

 

루쉰이 근대에 대한 반항의 칼끝을 자기의 내면으로 돌려세웠던 것처럼, 왕 후이 역시 근대에 대한 반항의 자원을 찾아 중국의 ‘내면’으로 파고들었다. 서구 근대에 반항하는 사상적 자원을 만청사상에서 찾은 것이나 마오의 사회주의를 ‘근대극복의 근대기획’으로 명명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궤적의 자취일 것이다. 그러나 왕 후이의 저간의 사상작업은 20년 전 그가 예리하게 간취했던 루쉰의 역설에서 어딘가 멀어진 느낌이다. 그것은 루쉰의 역설을 지탱했던 절망, 다시 말해 철저한 자기해부와 자기부정을 통과하여 없는 길을 만들어가는 힘으로서의 절망이 왕 후이에게 실종되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심장을 후벼 파서 스스로 먹다. 본래의 맛을 알고자. 아픔이 작열하는데 본래의 맛을 어찌 알까? 아픔이 가라앉은 다음 천천히 먹다. 그러나 심장이 이미 변질되었는데 본래의 맛을 또 어떻게 알까. 대답하라. 아니면 떠나라!” (루쉰 「墓碣文」 중)

 

대상뿐 아니라 자기의 심장까지도 해부의 대상으로 삼을 만큼 지독한 부정정신이 있었기에, 루쉰의 절망은 어떤 반항보다 위대한 사상이 될 수 있었다. 왕 후이가 읽은 루쉰으로 다시 왕 후이를 보니, 문학자 루쉰이 사상가 루쉰을 탄생시킨 길과 문학자 왕 후이가 사상가로 선회한 길 사이의 간격이 시야에 들어오는 듯하다.

 

 

백지운 /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2014.9.2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