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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정치적 중립이 보장되려면

박성철

박성철

우리 헌법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된다고 선언한다. 교육현장에서 제법 자주 들을 수 있는 선언이다. 근엄하고 단호한데 그럴수록 공허하다. 주장하는 사람이나 듣는 이나 교육과 정치가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지 쉽게 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지침도 모호하다. 구체적인 행동규범을 내세울 때도 합의가 어렵다는 현실을 잘 안다. 토론하고 동의를 구하기보다 거창한 명분으로 굴복시키려고 하니 상대방을 겁박하는 주장만 넘쳐난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바라보는 정반대의 시선이 공존한다는 데서 논의를 풀어갈 필요가 있다.

 

우선 교육의 당파성 혹은 편향성 배제를 강조하는 시각이 있다. 공교육이 정치적·파당적·개인적 편견을 선전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정치적·파당적’은 특정 정당에만 유리하거나 불리할 때를 일컫고 ‘개인적 편견’이란 학술원칙이나 논리를 거스르는 독선적 주장을 말한다. 특정 교육내용이 당파성을 띤다거나 편견을 조장한다고 여기면 헌법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적극적인 개입을 시도하게 될 것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낱말 그 자체에 충실한 해석으로 충분히 존중되어야 할 입장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파시즘 극복의 산물

 

다만 교육내용에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는 기준만 강조하는 견해는 동전의 다른 한 면을 보여주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가짜 화폐의 혐의에서 벗어나 시중에 유통되기는 어렵다. 교육과 정치를 분리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중립성을 파악하는 시선이 비로소 또다른 한 면을 그려낸다. 교육이 국가나 정치권력으로부터 부당하게 간섭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데에 방점을 찍는 입장이다. 대개 헌법학자들이 취하는 학설이다. 권력지배로부터 교육이 독립할 때 중립이 달성된다고 믿는다. 교육하는 내용에 정치요소를 제외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교원의 비정치화와 정치교육 배제는 교육이 결국 정치권력의 노예가 되는 결과로 이어질 뿐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정치교육이 긴요하다고 역설한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가치가 근대 이후 발현된 원칙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보면 쉽게 이해된다. 파시즘과 일당독재가 지배하는 국가에서 교육은 국가목적에 봉사하고 정치에 종속된다고 여겨졌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파시즘이 붕괴하면서 본격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존중하며 거리두기를 핵심가치로 여기는 시각에서는 교육계에 간섭하면 간섭할수록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된다고 본다. 파시즘으로 회귀하는 게 아닌지 두려워한다. 

 

어느 한쪽 견해를 무시하는 방법으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가치를 온전히 달성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학교현장에서 노란리본 달기가 문제된다면 그 징표가 당파적 혹은 편향적인지 뿐만 아니라 누가 누구에게 금지할 수 있는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개입과 불개입이라는 목적지에 동시에 이르기 위해서는 역할을 알맞게 분담해야 할 것이다. 골키퍼와 공격수처럼 서로 다른 동선으로 움직이며 각자의 방식으로 기여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치권력은 과도한 참견을 멈춰야 할 것이다. 권력자가 교육내용을 좌지우지하려는 간섭을 일삼는다면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지탱하는 한 축이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당파성에 사로잡힌 교육이 행해지고 있다고 가정해보더라도 정치권력이 스스로 위반 여부를 판단하고 교정을 위한 집행을 부지런히 할수록 거리두기에 실패하게 된다. 마침내 중립성이 훼손되는 역설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권력의 숙명이다. 정치권력이 가만히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안하는 게 아니다.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는 셈이다.

 

가만히 있어야 할 사람과 움직여야 할 사람

 

당파성과 편향성 극복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와 같은 교육 내부 주체들이 열심히 풀어야 할 숙제다. 우리 헌법은 교육의 자주성을 함께 보장한다. 교육 내용과 기구를 교육자가 자주적으로 결정한다는 뜻이다. 권력에 의한 통제를 멀리할 때 자주성이 담보된다. 교육시설 설치자·교육감독권자로부터의 자유를 얻고, 교육내용에 대한 교육행정기관의 권력적 개입을 물리치며 교육자치 보장이라는 원칙으로 이어진다. 교육의 자주성에 터 잡아 정치적 중립을 달성하려는 시도가 교육계 내부에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반대다. 쉽게 힘을 보여줄 수 있는 정치권력은 끼어들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워한다. 편향된 교육이 행해지고 있다고 판단한 권력자는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 때로 불개입은 직무유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거리두기는 오히려 교육주체들의 행동양식이 되곤 한다. 교육과정에 담긴 내용을 주입하고 암기하기에도 여력이 없는데 편향여부를 따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수 있다. 치열한 경쟁에서 낙오되기 십상이니 가만히 있는다고 탓할 수만도 없다.

 

움직여야 할 사람과 가만히 있어야 사람이 누구인지 뜻을 모으는 데서 해법 찾기를 시작하면 좋겠다. 권력이 어디서 나와서 누구에게 봉사해야 하는지 생각하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박성철 / 변호사

2014.10.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