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전작권 환수 재연기로 누더기가 된 안보주권
한국과 미국이 지난 2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46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재연기하기로 합의했다. 이전 두 차례 합의와는 달리 환수시기를 못 박지 않았다. 시기가 아니라 조건이 충족될 경우 환수하겠다는 것이므로 사실상의 무기한 연기이며, 더이상 전작권에 관해 어떤 문제제기도 못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게다가 제시된 전환조건은 너무도 추상적이고 포괄적이어서 갖출 수 있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듯싶다.
국방부는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인 KAMD와 선제 타격 시스템인 킬체인(Kill Chain) 구축 예정시점인 2022년 이후를 전작권 전환 추정시점으로 내놓았다. 17조의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이것이 북한의 위협을 무력화할 수 있는 요술방망이가 결코 아니며, 미국도 완성하지 못한 미사일방어를 한국이 8년 만에 완성한다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환수 재연기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까
정부 역시 내심 구차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앞으로 한미연합군 사령관을 한국군이 맡고, 미군이 부사령관으로 보조하는 방식이 될 것이기 때문에 군사주권행사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한다. 이 말을 뒤집으면 전작권을 환수한 후에 이런 식으로 보완·개편하면 될 것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후자의 방법으로 한국이 실질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능력을 갖출 수 있는 동시에 미국을 활용해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정부와 보수세력은 전작권을 환수하면 한미동맹이 깨진다거나 미군이 철수한다는 식으로 호도하고 있지만 그것들은 서로 전혀 별개의 이슈다. 전작권을 회수하더라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작동한다. 미국의 참전을 더 확실히 보장받고 싶다면, 전작권을 환수하면서 현재 방위조약에 담기지 않은 자동개입조항을 제대로 삽입하면 된다.
어떻게 포장하더라도 전작권 환수 재연기는 군사안보주권을 포기한 굴욕적인 결정이다. 북한보다 경제규모 40배, 국방비규모 15배가 크고, 1년에 35조원에 달하는 세계 7위의 군사비를 사용하면서도 작전수행과 지휘통제를 할 능력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은 굴욕을 넘어 직무유기다. 미국의 동맹국이 60여개국인데, 한국만이 유일하게 전작권을 미국에 넘겨주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번 결정으로 한미동맹이 본격적으로 미국의 동북아지역군화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는 점이다. 과거 부시정부가 전략적 유연성 측면에서 한국에 전작권을 넘기려 했던 것은 방위비분담의 차원이 강했지만, 현재 미국의 아시아전략은 통합이 강조되고 있고, 특히 한-미-일 3각 군사협력의 통합네트워크 구축의 차원에서 미국이 전작권을 계속 보유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러한 미국의 필요에도 불구하고 환수 재연기를 한국이 요청했다는 점에서 대미 레버리지를 잃어버리고 막대한 댓가를 지불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른바 ‘조건충족’을 위해 수십조원에서 많게는 수백조원의 무기를 미국으로부터 추가로 구입해야 할 것이고, 미국이 강력히 원하는 미사일방어 참여를 종용받을 것이다. 또한 미군은 용산과 동두천을 떠나지 않으면서 동시에 평택의 신기지를 모두 보유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이번 결정은 국가적 자존심과 이상의 측면뿐 아니라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손해가 막심하다.
수렁에 빠질 수 있는 한국의 안보상황
문제는 더 있다. 역설적으로, 우리가 북한 핵과 미사일로 인해 전작권 환수를 미룬다고 선전함으로써 오히려 북한 핵과 미사일의 위력을 스스로 보증해준 셈이 되어버렸다. 북한은 당연히 핵과 미사일을 계속 보유하고 싶어할 것이고 이를 적극 활용하고자 할 것이다. 또한 북한과의 대화주체로 인정받지 못할 뿐 아니라 주변국에 대한 협상력도 약화될 것이 뻔하다. 이는 모두 안보포퓰리즘, 안보장사꾼, 냉전사고가 지배해온 박근혜정부의 대외정책이 빚은 결과다. 북한의 핵개발과 도발에 우선적 책임이 있지만, 외교와 협상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안보 대 안보’ 프레임에 빨려들어갔다. 냉전을 벗어나자면서 냉전프레임에 갇혀 있고, 통일대박을 얘기하면서 분단비용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대화나 평화모색 등을 통해서 한반도의 안정을 적은 비용으로 이루어야 함에도 평화담론은 자취를 감추었고, 통일론은 북한붕괴라는 제한적인 용도로만 사용된다.
이번 전작권 환수 재연기를 정리하면, 안보에 전부를 걸고, 미국의 동북아전략에 한반도를 맡기고, 이를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할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증가하겠지만 그 효과는 장담할 수 없다는 황당한 결론에 이른다. 국내정치와 달리 국제정치는 정책효과가 즉각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특히 실패한 대외정책은 자각증상이 별로 없는 암과 비슷하다. 한국의 안보주권이 점점 누더기가 되고, 한국의 안보미래가 끝없는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
김준형 / 한동대 교수, 국제정치
2014.10.29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