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세금폭탄 논란을 넘어 복지증세로
‘13월의 세금폭탄’. 지금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는 화두다. 연말정산 시기를 맞아 이전보다 늘어난 세금에 대한 월급쟁이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2013년의 세법개정으로 2014년 소득부터 각종 소득공제 항목이 대거 세액공제로 전환되면서 돌려받는 금액이 줄어들거나 오히려 토해내게 된 것이다.
야당은 ‘서민증세’라며 ‘세금폭탄론’을 들먹이며 과거에 당한 것이 억울하다는 듯 공세를 펼치고 있다. 원래부터 세금 자체를 싫어하는 보수언론과 증세를 주장하던 진보언론마저 연일 조세저항에 편승하여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여론에 밀린 정부는 일부 세액공제를 되돌리면서 이를 소급적용까지 하는, 정책적으로 매우 부정적인 무리수로 더욱 신뢰를 잃었다. 굳건하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층까지 균열을 일으켜 마침내 사상 처음으로 30%선까지 무너졌다.
개정 세법을 둘러싼 논란의 진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적용된 개정 세법은 정말 잘못된 것일까? 개정 세법의 주요 내용을 보면 의료비·교육비·기부금 등 그동안 소득공제를 해주던 것을 상당부분 세액공제로 전환한 것이다. 아울러 근로소득공제도 소득에 따라 5~80% 하던 것을 2~70%로 축소하고, 소득세 최고세율(38%) 구간이 3억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내려갔다. 사실상 증세를 했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꾼 것이다. 소득공제는 수입에 대해 먼저 공제한 후 세금을 매기고, 세액공제는 세금을 매긴 후에 세금을 공제한다. 따라서 세액공제는 고소득자에게 불리하다. 예를 들면 소득공제의 경우 최고세율 38%를 적용받는 사람에게 1000만원 소득공제를 하면 내야 할 세금에서 380만원을 덜 내게 되고, 최저세율 6%에 해당하는 사람은 6만원을 덜 내게 된다. 하지만 10만원을 세액공제를 하면 두 사람 모두 내야 할 세금에서 똑같이 10만원을 공제받게 된다. 많은 전문가들이 세액공제로의 전환을 주장해온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경제학)는 2014년 소득세제 개편의 영향에 대해 계층별 소득세 부담률을 계산한 결과 “연소득 6000만원(상위 10%) 이상에서 증세, 그 미만에서는 감세를 가져오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소득 재분배 효과가 있었다”고 밝혔다(한겨레 2015.1.19). 정부의 세법 개정은 ‘고소득자 증세’에 가깝다는 이야기이다.
사실과 진실을 구별해야
개별 납세자들의 불만은 이해할 수 있다. 복지가 취약한 우리나라에서 연소득 7000만원~8000만원 가구를 고소득자라고 보기 어렵다는 항변이 나올 수도 있고 5500만원 이하의 직장인들 중에서도, 특히 맞벌이 부부라 세금이 늘어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유를 찾는다면 정책설계에서 오류를 범한 행정무능력을 들 수 있다. 이는 분명히 현 정부의 무능 때문이고 비판해야 한다.
또 하나의 불만은 법인세 등 부자증세를 하지 않고 소득세만 늘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산층과 고소득자를 중심으로 한 소득세 인상도 피하기 어려운 과제다. 소득세는 누진적인 성격을 강화할수록 소득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는 핵심 세목이다. 제대로 걷는다면 다양한 복지정책을 펼 재원도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세금공제가 고소득층에 집중되어 실효세율이 총급여대비 4.2%에 불과하다. 법인세는 16.37%이다. 연결재무재표를 통해 해외부분까지 고려하면 더 올라간다. 우리나라 소득세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3.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8.5%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문제는 세금 자체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반적인 증세는 불가피하다.
눈앞의 연말정산에 대해 당장 화가 날 수 있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자. 세금을 더 낸다는 사실보다는 세금의 쓰임까지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하는 진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아동수당, 기초노령연금이 해당되는 사람 모두에게 수십만원씩 보편적으로 지급되었다. 그만큼 혜택이 늘었는데, 그만큼 세금을 더 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진지한 논의로
만일 받는 혜택이 없다면 복지확대를 요구해서 전 국민이 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인 자세일 것이다. 내가 못 받으니 남들도 받지 말아야 한다거나, 부유층이 혜택을 보더라도 나만 세금 더 안 내면 된다든가 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정치에서는 이런 부정적인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한다. 포퓰리즘을 반영하는 것은 좋은 측면도 있다. 복지를 요구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진보 및 개혁세력이 혹시 반개혁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지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조선시대 대동법을 통해 재정개혁을 시도했던 김육 등은 안민익국(安民益國, 백성이 편안해야 나라가 이롭다)을 주창했다. 백성의 부담이 줄어들어야, 나라의 부가 쌓인다는 것이다. 여기서 백성은 모든 백성이라기보다 ‘더 많은’ 백성을 의미할 것이다. 김육에게 재정개혁은 재정확충보다는 민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었다.
위기는 기회다. 미래를 생각하는 합리적인 세제개편과 증세를 하고 그 재원으로 복지를 시행한다면 민의 부담도 줄고 재정은 확충되는 안민익국이 실현될 것이다.
정창수 / 나라살림연구소장,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2015.1.2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