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의회정치, 활성화될 것인가
올해 큰 선거가 없다는 것은 우리 의회정치가 활성화되는 데 긍정적 요인이다. 선거가 있으면 각 정치세력은 큰 쟁점을 던지면서 뜨거운 전선을 만들고 강력하게 지지자들을 동원하려고 하기 때문에 의회정치의 대화·타협·조정 기제는 작동이 어렵게 된다. 그런 점에서, 전국단위 선거가 없는 2015년은 의회정치 활성화에 좋은 환경일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여당의 자율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 역시 고무적이다. 그간 의회정치의 파행은 대개 대통령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여당이 무리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박근혜정부 출범 당시 정부조직법 개정을 둘러싼 여야 대치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정치적 교착상황은 대통령 아젠다를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대통령이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여당이 거수기 노릇을 할 때 의회정치에는 항상 문제가 생겼다.
정치권의 변화 조짐들
올해 들어 새누리당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이와 관련하여 흥미를 끈다. 정의화 국회의장, 김무성 대표에 이어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되었다. 모두 박대통령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여당 지도자들이다. 특히 유의원의 등판은 여의도의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바른 소리를 주저하지 않는 소신파로 알려져 있다. 그가 제시한 출사표의 핵심 메시지는 ‘당이 주도하는 당·청관계’다. 유의원은 거기에 덧붙여 대통령과 정부가 소통에 더 노력해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그러면서 청와대에 대해 인적쇄신과 정책수정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당이 청와대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이 나서서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할까? 현실은 녹녹치 않아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에 대한 고삐를 늦출 리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뜨거워지고 있는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한 정책수정 논의를 보면 알 수 있다. 박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약속한, 증세 없는 복지 노선 외에는 어떤 얘기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증세란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는 말까지 쓰면서 그에 대한 논의 자체를 일축했다.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고 하는 새누리당과 의회의 지도자들이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박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다시 올라가지 않으면 새누리당은 좀더 자율성을 가지고 의회정치에 충실하려고 할 것이다.
2월 8일 전당대회를 통해서 구성된 새정치민주연합의 새 지도부 역시 의회정치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세우고 있는 것 같다. 문재인 대표는 자신과 당의 지지기반을 확장하기 위해 중도층 껴안기를 할 계획으로 보인다. 문대표는 우선 당내에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중도온건파들로부터 지지를 받아야 한다. 그러자면 강경한 대여투쟁 노선만을 채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박근혜정부와 전면전을 할 수도 있다’는 말로 투쟁의지를 천명했으나 그것은 일종의 전술적 입장을 밝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전략적 방향은 껴안기로 보인다. 껴안기 전략이란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성 높은 이슈를 던지면서 전선을 허물고 지지자들을 설득하는 것’을 말한다. 문대표가 현충원을 방문한 길에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에 참배를 한 것이 그 증표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내렸을 이 결정은 포용과 화해를 전략적 방향으로 정하고 있음을 확인해준 것이다.
협력과 합의가 필요한 때
집권세력에 대한 비판을 넘어, 수권능력을 가진 대안세력으로서 비전을 제시해야 할 문대표로서는 의회활동을 중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과 자신의 비전을 제시하고 뭔가 생산적인 성과를 내려면 그가 활동할 곳은 의회다. 물론 박대통령의 비타협적 국정운영이 계속되고 새누리당이 자율성을 가지지 못하게 될 경우, 결연한 대여투쟁은 불가피하며, 그럴 경우 문대표는 ‘전면전’을 불사하는 투쟁을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기본방향은 역시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는 의회정치의 활성화에 둘 것으로 보인다.
2015년 여야는 의회정치를 통해서 성과를 만들어야 그다음에 있을 국회의원총선거와 대통령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의회정치를 통한 성과는 여야가 협력을 해야만 얻을 수 있다. 정치세력들 사이의 협력뿐 아니라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야만 가능하다. 박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밝힌 경제혁신을 위한 공공·노동·교육·금융 부문 구조개혁은 여야의 협력과 사회적 합의 없이는 성과를 내기 어려운 것들이다. 어느 것 하나 이해당사자들의 공감을 구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국가재정과 복지 문제도 마찬가지다. 헌법과 선거제도를 고치는 일은 더욱 밀도있는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러한 현실의 본질을 잘 알고 행동하려는 것 같다. 문제는 국정 최고책임자인 박대통령이다. 그가 협력·합의·연대를 바탕으로 한 의회정치의 중요성을 잘 이해해야 한다. 정치·사회와 소통하려 노력하고 의회정치를 존중해야한다. 그래야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15.2.1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