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창비주간논평

눈물로 새겨진 불멸의 역사: 제주4‧3의 진실을 흔들지 마라

 

오승국

오승국

아름다운 제주 산야와 해변을 붉게 물들였던 참혹한 양민학살의 역사, 오랜 세월 동안 발설조차 금기시되었던 한과 눈물의 역사, 지금도 정명(正名)을 갖지 못한 제주4·3의 역사는 한라의 아름다운 풍광 뒤에 숨어 허공을 떠돌고 있다.

 

1948년 제주도에서는 군인, 경찰, 서북청년단 등 국가공권력에 의해 수많은 도민이 목숨을 잃었으며, 중산간 마을 등 많은 가호가 불에 타 엄청난 재산피해를 입었다. 당시 27만의 인구 중 2만여명의 제주도민이 목숨을 잃었으며, 130여개의 마을이 잿더미가 되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전쟁이 아닌 상황에서 특정지역의 인구 10퍼센트가 정부 공권력에 희생되는 경우는 세계사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다.

 

어둠을 넘어 역사의 교훈으로

 

제주4·3은 제주도민들에게 큰 아픔을 주었고, 우리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많은 피해를 가져온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적·물적 피해 및 공동체 파괴 등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을 겪었던 4·3 유족과 제주도민 들은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이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반세기를 넘는 세월을 건너 4·3은 이제 67주년을 향하고 있다. 4·3에 대해 수많은 국민과 유족들의 열정적인 진상규명운동이 있었기에 일정한 한계 속에서도 진실과 해원을 향한 빛의 역사를 새길 수 있었다. 이런 노력의 결과, 2000년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특별법’이 제정됐고,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발족되면서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가 추진됐다.

 

2년여 동안의 조사와 정부위원회 심의를 거쳐 확정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는 제주4·3사건을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으로 새로이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폭동’으로 규정했던 정부의 인식이 공식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일부 보수단체들의 반대 속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공권력의 잘못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고, 이어서 평화의 섬 선포, 4·3 희생자와 유족 결정, 4·3평화공원 및 기념관 조성, 유해 발굴, 4·3평화재단 설립 등 일정한 성과를 얻어냈다. 특히 작년에는 4·3희생자추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어 4·3 해결의 최상위 해법을 이루어냈다. 소외와 침탈로 얼룩졌던 제주섬의 고통의 역사가 당당히 국가로부터 인정받는 진실의 역사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특히 한국현대사에서 과거역사의 청산을 통해 올바른 역사를 정립한 사례가 없는 상황에서 4·3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다는 것은 우리 현대사의 반성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대단하다.

 

4·3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최근 제주4·3사건 67주년을 앞두고 다시 4·3의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보수 성향 변호사단체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은 제주특별자치도와 4·3평화재단을 상대로 제주 4·3평화기념관의 전시 금지를 청구하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이 전시물들은 정부가 확정한 4·3진상조사보고서를 토대로 정부 산하 전시위원회의 수많은 검토 끝에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한 흠집내기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로, 다양한 시선으로 해석되는 역사의 문제를 법적 소송으로 끌고 가는 것은 유치한 행동이다. 그뿐 아니라 일부 보수단체들은 4·3특별법에 따라 법적절차를 거쳐 확정된 일부 4·3 희생자의 위패를 불량위패라 주장하며 집요하게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 희생자는 대부분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감당해냈던 독립운동가, 인자한 이웃집 친척 들이다. 할 말을 잃게 되는 순간이다. 그 수많은 선대의 억울한 죽음 앞에 무슨 이념이나 색깔을 덧씌운단 말인가.

 

이제 제주4·3은 보수와 진보의 문제를 넘어 한국사회의 처절한 반성의 지표 위에 서 있다. 4·3의 비극적 역사 앞에 쓰러져간 희생자를 폄훼하고 유족들의 아픈 상처를 덧내려는 시도가 중단되기를 희망한다. 한국 과거사 정리의 모범으로 평가받는 4·3의 불행한 역사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해원과 상생 그리고 평화로운 미래를 앞당기는 진정한 국민화합을 이루어내야 할 것이다.

 

 

오승국 / 제주4·3평화재단 총무차장

2015.4.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