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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1년, 모두 잊으라는 정부

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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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합동분향소에 안치되었던 아이들의 영정을 부모들이 내려받았다. 한 엄마는 분향소 문이 열리며 바람이 들자 영정사진을 홱 돌렸다. “우리 아이 바람 맞겠네.” 또다른 엄마는 분향소로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였다. “도저히 못 보겠어. 아빠가 들 거야.” 어떤 엄마는 서둘러 화장실에 다녀왔다. “몸이 떨려서 뭐라도 비워야겠어.” 그리고 또 한 엄마는 흐느끼다가 통곡을 했다. “나는 언제 상복을 입혀줄 거야! 이런 나라가 세상에 어딨어! 우리 아이 빨리 찾아달라고!”

 

1년이 되어가지만 수백명이 상복을 입고 영정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은 여전히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비현실성을 통해 현실을 너무나 투명하게 알아가고 있다.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을 촉구하고 정부가 제출한 특별법 시행령을 폐기하라는 도보행진이 있고 난 4월 6일, 박근혜 대통령은 아주 오랜만에 ‘세월호’를 언급했다. 그러나 특별법 시행령 폐기 요구에 대한 응답은 없고 인양에 대해서는 연초부터 정부가 말해온 것을 반복했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면 여론을 수렴해 검토’하겠다는 입장 말이다.

 

세월호 인양은 국가의 의무다

 

순서가 거꾸로다. 인양은 추진되어야 한다. 여론이 문제라면 설득해야 한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심지어 인양기술을 검토하는 정부의 태스크포스팀은 ‘할 수 있다’, 대다수의 국민은 ‘해야 한다’고 했다. 인양을 추진할 의지를 밝히지 않는 정부가 문제의 근본이다. 1주기가 되기 전 인양을 결정하라는 가족들의 요구에 대해 박대통령은 ‘글쎄요’라고 답한 셈이다. 상복을 입게 해달라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그냥 잊으라’고 말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과 다른 점은 에둘러 말했다는 것밖에 없다.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실종된 사람의 소재와 운명을 국가가 밝혀야 한다는 것은 확립된 국제인권기준이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이를 위한 효과적인 조사를 수행하지 않는 것이 인권침해라고 결정했다. 생명권 보호를 지속적으로 이행해야 할 국가가 절차적 의무를 위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양은 실종자 가족들에게 시혜처럼 베풀 선물이 아니라 국가가 마땅히 져야 할 책무다. 끝까지 찾기 위해 세월호를 인양해 샅샅이 조사하는 과정을 건너뛸 수는 없다. 가족들이 ‘실종자를 가족 품에 돌려달라’고 외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인간의 권리다.

 

국민의 염원이 담긴 세월호특별법을 매장시킬 정부 시행령

 

한편 박대통령은 특별법 시행령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특별법이 쟁점이 될 때는 입법부의 소관이라며 발언을 회피했는데 정부가 제출한 시행령이 문제가 된 지금은 어떤 변명을 댈지 궁금하다. 시행령은 대통령이 서명해서 공포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령이라고도 한다. 지금 가족들의 요구는 정부가 제출한 시행령에 서명하지 말고, 특별조사위원회가 마련한 시행령을 공포하라는 것이다. 이번에도 책임을 피하려는가.

 

특별법은 진상규명, 안전사회, 지원을 다룰 3개의 소위원회를 두고 3명의 상임위원이 각 하나씩 맡아서 업무를 보도록 했다. 그런데 정부 시행령은 모든 업무의 기획, 조정, 총괄을 정부 파견 공무원이 하도록 기획조정실을 뒀다. 특히 중요한 진상규명소위원회 조사1과장 역시 정부 파견 공무원으로 정했다. 여야 모두 안중에도 두지 못했던 ‘안전사회 소위원회’를 겨우 만들었더니 해양선박사고만 다루도록 업무범위를 축소해버렸다. 시행령이 오히려 상위에 있는 특별법을 통제하고 있는 셈이다.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에 있어서 정부의 책임을 밝히는 것이 중요한 과제인데도 정부 파견 공무원들이 요직에서 조사를 총괄하거나 수행하게 해놓았고, 조사내용마저도 ‘세월호참사 구조구난 작업에 대한 정부조사자료 분석과 조사’로 한정해놓았다. 더이상의 진실도, 더이상의 책임도 원천봉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2014년 4월, 대한민국 정부는 침몰하는 배에서 아무도 구하지 못하고 304명의 목숨을 물속에 매장했다. 2015년, 정부는 600만명이 넘는 국민이 가족과 함께 만든 특별법을 시행령으로 매장하려고 한다. 그리고 심지어 배·보상금이 한사람당 얼마라는 식의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이제 피해자들까지 사회적으로 매장하려 들고 있다. 어떻게든 참사의 흔적을 지우고 탈출하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진실을 알 권리도, 안전할 권리도, 배상에 대한 권리도 다 같이 매장되고 있다.

 

인간의 존엄을 바로 세울 때

 

“진실은 인간의 내재적 존엄성에 근본적인 것이다.” “사건을 조사하고 원인을 분석”하는 목적은 “신뢰할 만한 역사적 기록을 만듦으로써 그런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다”(유엔인권최고대표실 「진실에 대한 권리 연구」, 2006). “배상은 제도가 이제 권리 침해를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진실, 정의, 배상, 재발방지 보장에 관한 유엔특별보고관 보고서」, 2012). 진실·안전·배상의 권리에는 어떤 거래도 허용될 수 없다. 거래의 결과는, 지금 정부가 보여주는 것처럼 모든 권리의 매장일 뿐이다.

 

참사는 사고의 규모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가 붕괴되는 인간의 경험이 참사다. 사회를 이끄는 가치와 규범을 다시 인정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기억과 회복을 시작할 수 있다. 어떤 법을 놓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힘을 모았던 적도 별로 없다. 시행령 수준이 되면 더욱 그렇다. 국가가 사라져버린 자리에 무언가 다시 세워야 한다는 의지와 열망이 ‘특별법을 제정하라’에서 ‘시행령을 폐기하라’로 옷을 갈아입은 것이다. 참사 이전의 사회와 단절하고 사람 사는 사회의 근본을 다시 세울 때까지 우리는 멈출 수가 없다. 인간의 존엄을 다시 세워야 한다.

 

 

미류 /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2015.4.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