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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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보수의 의리에 대해

김종엽

김종엽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진보는 분열로 망해도 보수는 부패로 망하지 않는다. 분열엔 의리가 없지만 부패엔 의리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작가 박민규가 세월호참사에 대해 쓴 글 「눈먼 자들의 국가」의 한 구절이다. 통찰력 깊은 말이다. 그는 익숙한 격언 뒤에 비대칭성이 숨어 있다는 것, 그래서 진보와 보수 사이의 천칭은 보수 쪽으로 기울어 있음을 명료하게 표현했다. 아마도 자신을 진보 편에 위치시키는 사람이라면 박민규의 말을 뼈아프게 받아들이지 않기 어려울 것이다. 나 또한 그랬고, 그래서 그의 말이 오래 머리에 남았다.

 

부패와 의리를 동일시한 이의 비극

 

그러다가 지난 9일 자살한 성완종 경남기업회장이 경향신문과 한 마지막 인터뷰의 몇몇 구절에 눈길이 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거는 어느 나라나 정치집단이라는 게 의리와 신뢰 속에서 서로, 어떨 때는 참 목숨까지 걸고서 정권창출 하잖아요. 신뢰를 지키는 게 정도 아닙니까. 우리나라도 앞으로 그렇게 돼야 되잖아요. 나는 내가 희생됨으로 해서 앞으로 의리와 신뢰를 지키는, 이거는 시장이 되고 정치권이 돼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의 이런 말과 그의 운명에 박민규의 말이 겹쳐 보였다.

 

이제 모두가 알게 되었듯이, 고(故) 성완종 회장은 초등학교 중퇴의 학력으로 도급 순위 20위권 건설회사의 회장이 되었을 뿐 아니라 비록 선거법 위반으로 직을 잃긴 했어도 국회의원까지 지냈던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고향인 충청을 기반으로 장학재단과 충청포럼을 운영했고 자민련에서 자유선진당을 거쳐 한나라당 그리고 지금의 새누리당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보수세력의 중심에 이르기 위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숱한 정치자금을 보수정치인들에게 뿌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보수의 의리 없음을 통탄하며 분노를 토로했고 마침내 목숨을 던져 의리 없는 이들의 이름을 알렸다. 부패엔 의리가 있는 거라면, 어째서 그의 운명이 그렇게 흘러갔는가?

 

성완종 회장의 비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패엔 의리가 있다”는 말의 의미를 좀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성회장의 인터뷰 전문을 읽다보면 그가 부패와 의리를 전혀 구별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는 정치인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건낼 때, 돈으로 의리를 사고 있다고 조차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워낙 비자금과 부패의 온상이었던 건설업에서 잔뼈가 굵은 탓일 수 있다. 이유야 어쨌든 그에게는 불법 정치자금, 비자금, 부패, 의리가 구별 없이 뒤섞여 있다. 도착적이지만 기이한 순진성, 부패를 의리와 연결할 수는 있지만 그 둘이 같은 것은 아니라는 인식의 결핍이야말로 그가 겪은 비극의 한 원인으로 보인다. 그는 죽기 전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집 주변을 배회했다고 한다. 그 배회는 아마도 돈을 주며 서로 좋은 말을 주고받는 것, 직통 전화로 통화할 수 있다는 것, 그런 외양의 번듯함이 내면의 인간적 유대와 직접 연결되는 것이라는 믿음의 쓸쓸한 서성거림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보수의 실체가 드러나다

 

부패와 의리 사이에 학벌과 혼맥과 지연과 문화적 습속과 가문의 유래를 매개로 매우 촘촘하고 복잡한 교직이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 성회장이 겪은 비극의 주관적 조건이라면, 다른 한쪽에 객관적 조건이 있다. 그것은 이런 복잡성으로 인해 보수 내부에 분절성이 생기고 그로 인해 경쟁과 갈등이 형성된다는 점이다. 성회장은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친이계가 아니라 친박계임을 주장했다. 그의 이런 주장은 두가지를 시사한다. 하나는 보수 내부의 복잡성과 그로 인한 정보의 분절성 때문에 그의 불법 정치자금이 어디로 얼마나 흘러들었는지 검찰도 정확히 모니터하지 못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보수 내부 갈등의 희생양이라는 점이다.

 

후자의 측면은 보수 내부의 경쟁과 갈등이 부패와 비리 네트워크의 가장자리에서 희생양을 만들어내는 체제라는 점을 말해준다. 성회장은 “현대중공업도 3조 이상 떨어냈고 GS건설도 한 1조 떨어내고, 현대엔지니어링도 1조 떨어내고, SK건설, 대림산업 다 그렇게 떨어냈거든요. 떨어냈는데, 그거를 다른 놈은 괜찮고 어째 우리만 그중에 제일 적은 우리만 왜 이렇게 하느냐 이거야” 하고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그 이유는 자신이 말했듯이 “제일 적은” 탓이다. 그러니 보수의 의리란 영화 <타짜>에서 곽철용(김응수 분)이 고니(조승우 분)에게 자신이 잘나가는 비결에 대해 말했듯이 “잘난 놈 재끼고 못난 놈 보내”며 구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완구 총리가 사의를 표명했다. 필요하면 하나 더 재끼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부패엔 의리가 있다. 하지만 부패와 의리의 네트워크는 분절적이고 위계적이며 갈등적이고 가장자리를 거리낌 없이 희생시키는 체제이다. 그러니 보수와 진보의 천칭은 박민규가 생각한 만큼 기울어져 있다고 할 수 없다. 저울이 진보의 방향으로 기울지는 진보 자신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 진보주의자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이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자란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자원을 하나로 응집하는 것이 결정적 중요성을 가지며,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노선’의 경쟁이 생겨난다. 하지만 옳음을 향한 열정이 서로에 대한 배려와 자기확신에 대한 겸손한 성찰을 초과하게 되면 분열은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아마도 가장 가련한 보수주의자가 부패와 의리를 동일시하는 자라면, 가장 가련한 진보주의자는 자신의 옳음 자체를 탐닉하는 자일 것이다.

 

 

김종엽 /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5.4.22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