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송재소 『시와 술과 차가 있는 중국 인문 기행』
한시를 즐기며 배우는 인문학의 또다른 창
-송재소 『시와 술과 차가 있는 중국 인문 기행』, 창비 2015
여행은 인간의 영원한 로망이다. 누구든 돈과 시간만 허락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이 여행일 것이다. 여행의 기쁨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감성적 해방이고, 또 하나는 가보고 싶은 곳을 찾아가는 세상구경이다. 그런데 세상구경에는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한다. 이것이 기행문을 찾는 이유다.
그러나 기행문을 쓰는 저술가와 독자 입장은 사뭇 다르다. 독자는 그곳의 모든 것을 원하지만 저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집약하고 때로는 자신의 감상을 앞세우곤 한다. 이 간극은 외국기행문을 쓸 때 더욱 크게 벌어지게 된다. 내가 ‘일본문화유산 답사기’(『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전4권, 창비 2013~14)를 쓰면서 크게 고심한 것은 일본역사에 대해 별도의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우리 독자들에게 쿄오또의 명소들이 갖고 있는 문화적 가치를 어떻게 역사적 맥락에서 해설하느냐는 문제였다. 나는 이 어려운 과제를 ‘쿄오또 답사의 미적분 풀이’라고 했다.
그러면 중국답사기는 어떻게 써야 할까. 이 과제를 한창 고민하던 중에 송재소(宋載卲) 교수의 『중국 인문 기행』을 만나게 되어 아주 반가웠다.
2.
우리가 기대하는 중국답사기의 내용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중국에 있는 우리 역사의 자취인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유적과 항일독립운동 유적지, 동북삼성에 있는 조선족의 삶을 답사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역사상 중국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였던가라는 관점에서 신라인이 당나라에서 활동한 자취, 원나라시대 고려인의 체취, 조선시대 연행사신과 학자 들이 활동했던 내용을 유적·유물로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아주 본질적인 것으로,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으로서 중국문화의 진수에 대한 답사기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중국인 당사자의 답사기는 생각 밖으로 적다. 근래에 위 치우위(余秋雨)가 펴낸 『중국 문화 기행』(전2권, 미래M&B 2007)이 그중 가장 유명하고 한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지만 그 정보의 내용과 해석에서는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는 다른 면이 많다. 예를 들어 연암 박지원도 다녀온 열하의 피서산장에 대한 그의 해설은 대단히 유익한 내용이어서 중국인이 아니면 알기 힘든 사실을 많이 알려주고 있지만, 그의 고향땅 이야기 같은 신변잡기는 하나의 에세이로는 감명이 있을지 몰라도 답사기로서는 별 영양가가 없다. 돈황에 대한 그의 기행문도 서양의 탐험대들에게 상처받는 과정에 대한 민족적 분노가 넘쳐서 오히려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의 『돈황』이 훨씬 유익하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볼 때 중국기행문은 테마기행이 아니면 성공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기행문뿐 아니라 실제 중국여행도 그렇다. 황산·장가계·계림·무이구곡 같은 자연관광, 실크로드·티베트 같은 오지기행, 공자의 유적답사, 『삼국지』를 따라가는 여행, 사마천 『사기』 여행, 운강석굴과 용문석굴, 동정호와 소상팔경 등이 중국여행의 주요 테마로 될 수 있다.
그중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굵직한 주제의 하나가 명시(名詩)의 현장답사다. 동양의 고전으로서 도연명, 두보, 이태백, 소동파의 명작이 탄생한 현장을 답사하는 기행문이라면 중국문학사를 책으로 읽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생동감을 기대할 수 있다. 송재소 교수의 『중국 인문 기행』은 내가 기다리던 바로 그런 기행문이었다.
3.
사람마다 중국문학에 대한 지식이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시켜 말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책은 나처럼 중국의 유명한 시인들 이름과 그들의 대표작 제목 정도를 대강 알고 있는 독자에게 참으로 유익하고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그동안 한시를 읽을 때면 시대상이 먼저 떠올랐지만 여기서는 장소적 의미가 먼저 다가오면서 한시 감상을 날줄과 씨줄로 교직하는 듯한 일깨움이 일어난다.
책을 펴들면서 나는 송교수가 한시를 찾아가는 첫 기착지가 어디일까부터 궁금했다. 중국사상사 답사라면 공자의 고향인 곡부(曲阜)부터 찾을 것이고, 역사탐방이라면 서안과 낙양, 서예사라면 왕희지의 난정(蘭亭)부터 찾아갈 것인데 중국의 시는 어디부터일까. 혹 동정호(洞庭湖, 호남성 북부)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저자가 호북성 무한(武漢)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은 다소 뜻밖이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니 무한에서 강서성 구강(九江)으로 가면서 도연명부터 만나고, 자연과 인문이 어우러진 여산(廬山)의 진면목과 명시들을 소개하고, 석종산(石鐘山)에서 소동파를 그리워하고는, 등왕각(騰王閣)에서 왕발의 명시에 얽힌 내력을 소상히 소개한 것을 보면서 저자의 생각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더욱이 여기에 나오는 명소와 시는 조선시대 회화사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개인적으로 아주 반가웠다. 도연명의 시 「음주(飮酒)」에 나오는 “동쪽 울타리에서 국화를 따다가 유연히 남산을 바라본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는 조선시대 문인화에 자주 등장하는 인기 소재였고, 소동파가 탄미한 여산의 폭포는 화가들이 꿈결의 절경인 양 그린 것이었다.
저자의 발길은 이백의 시혼이 잠든 묘소에 머물다가 백거이의 「비파행(琵琶行)」, 소동파의 「석종산기(石鐘山記)」, 구양수의 「취옹정기(醉翁亭記)」 등 명작의 현장을 만나게 된다. 그뿐 아니라 태백비림(太白碑林)에는 마오 쩌둥이 이백의 「야박우저회고(夜泊牛渚懷古)」를 그의 유려한 초서체로 써놓았다는 오늘날의 이야기까지 들려준다. ‘한시를 따라가는 기행’이 아니고서는 맛볼 수 없는 감성여행이다.
4.
이 책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한시에 대한 저자의 정확한 지식과 권위있는 해설이 뒷받침되어 있다는 점이다. 저자 송재소는 『다산시 연구』 『다산시선』으로 잘 알려진 다산 정약용 문학 연구의 권위자이자 『한시 미학과 역사적 진실』을 펴낸 뛰어난 한시 해설자이기도 하다.
한편 애주가이자 다도가로도 유명한 저자인지라 중국 8대 명주와 중국 10대 명차를 소상하게 알려주면서 현지마다 생산되는 술과 차의 내력까지 소개함으로써 ‘시와 술과 차가 있는 중국 인문 기행’으로 발전시킨 것은 별도의 기쁨이다.
그러나 저자의 더 큰 미덕은 역사를 이해하는 그의 넓은 지식과 건강한 시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그 고장에 서려 있는 역사유적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중국 도자기의 성지인 경덕진(景德鎭), 『수호지』 송강이 문제의 시를 쓴 심양루(潯陽樓), 명나라 주원장의 명효릉(明孝陵), 쑨원의 중산릉(中山陵), 태평천국 유적과 남경대학살의 현장까지. 거기에 이 글을 쓰기까지 오십여차례나 중국을 여행했다는 성실성이 뒷받침되어 있다.
저자의 시각이 나와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있다면 조형물에 대한 감상이다. 등왕각은 본래 높이가 18미터 정도였는데 1989년에 복원하면서 무려 57미터로 과장했고, 석종산의 소동파상은 인체비례도 맞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조각상이다. 나 같으면 흉을 잔뜩 보면서 중국 현대사회의 허상을 꼬집어 말하였겠지만 저자는 점잖게 지적만 하고 지나간다. 전공의 차이일까, 아니면 성격 내지 인품의 차이일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행문은 대단히 매력적인 문학장르이다. 요즘은 많이 변했지만 십년 전만 하더라도 영국, 미국의 대형서점에서 베스트셀러를 진열한 가장 좋은 코너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대개 전기(傳記, biography)와 여행(travel) 서적이었다. 그리고 이 두 코너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파생 장르가 있다. 전기 코너 끝에 자서전(auto-biography)이 붙어 있고, 여행 코너 끝에는 기행문(travel writings)이 별도로 진열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그만한 문학적 생산이 적기 때문에 전기나 기행문이 서점에서 별도의 코너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 두 장르는 전통적으로 인문학이 대중에게 전달되는 유효한 방식이었다. 그 점에서 이 책은 ‘한시를 즐기며 배우는 인문학의 또다른 창’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창작과비평』 2015년 여름호에 수록되었습니다.
유홍준 / 명지대 석좌교수, 가재울미술사연구소장
2015.6.3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