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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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밀양아리랑」과 함께 두 마음

 

박배일

박배일

운 좋게도 「밀양아리랑」이 내가 연출한 두번째 개봉영화가 되었다. 2013년 1월 「나비와 바다」를 개봉했고, 1200명이 영화를 관람했다. 개봉 수익금은 제로에 가까웠고, 장애인의 날 특집영화로 방영되어 500만원 약간 넘게 정산되었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2013년 10월 제작한 「밀양전」은 극장 개봉이 아닌 공동체 상영 방식으로 관객 품에 떠밀었다. 170여곳에서 상영되었고, 대략 5000명이 관람했다. 다행히 6~7개월 정도의 활동비를 수익으로 남겼지만 상업영화의 기준으로 볼 땐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이번에 개봉한 「밀양아리랑」 역시 이 수준을 크게 벗어나진 못할 것 같다. 상영 중에 김새는 얘기지만 관객의 성향과 극장환경, 영화판이 돌아가는 꼴을 봤을 때 그러하다.

 

관객과 만나기 전 하나의 마음

 

‘모난 돌이 정 맞는다’를 주입하는 교육과 ‘내가 살려면 너를 제치고 눌러야 한다’는 기운이 팽배한 사회, 모든 이야기를 좌와 우로 구분짓는 언론과 무능한 정치… 이런 환경에서 살아오면서 쌓인 피로가 ‘영화는 재미!’(더 간명하게 말해 웃음과 눈물!)라는 관객의 성향을 만들었다. 나 역시 최근까지 그런 성향을 가진 관객 중 하나였지만 ‘재미를 획일적으로 만들려는 시장이란 놈의 저의’를 깨닫고 그동안 제대로 재미를 못 본 게 화가 났다. 어쩜 벼랑 끝에 몰려 삶을 버텨내려고 아등바등하는 이들에게 영화의 다양한 재미를 어필하는 건 무리일 수 있지만, 10년 20년 후 ‘하나의 재미’만으로 구성된 영화시장의 피해자는 결국 그렇게 삶을 버텨나가고 있을 관객이다. 다양함이 공존하는 영화시장은 사라졌을 것이고, 만의 하나 근근이 버티고 있다면 관객 스스로가 ‘하나의 재미’를 외면한 상태일 것이다.

 

진정한 위로와 쉼은 순간 휘발하는 웃음과 눈물이 아니라 치열하게 곁을 버티고 있는 삶에서 온다. 영화 속에서 꿈과 환상과 재미는 그런 삶을 기반으로 이뤄져야 한다. 최근 만들어지는 한국 상업영화는 그같은 삶을 한구석에 박아둔 채 흡혈귀처럼 관객의 시간과 돈을 빨아먹기 위해 ‘기승전결’ 대신 ‘기-웃음-전-눈물’의 시스템을 체계화하고 있다. “시장에 내놓았으면 관객의 선택에 맡기자!”는 말은 그 시스템을 체계화하고 있는 자들의 추악한 헛나발이다.

 

독립영화는 돈을 축적하기 위한 틀을 만들려는 자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쉼없이 민중을 탄압한 정치권력,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덧씌워진 수많은 관습, 그리고 그것들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 언론에 맞서고 그 힘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면서 스스로를 증명해왔다. 자본과 정치권력과 관습과 언론이 밀어낸 존재들 곁을 지키고, 우리 삶의 대안을 앞서 제시하며, 어떻게든 보편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험하고 상상하며 생존해왔다. 그 안간힘은 한국영화의 버팀목이다. 한때 영화를 진흥하겠다고 만들어진 곳은 자본과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며 독립영화를 상업영화의 부속품 따위로 ‘진흥’시키려 한다. 자본은 극장으로 향하는 길을 일방통행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더러운 길을 왜 굳이 걸으려 하느냐’고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밀양아리랑」의 최종 스코어를 받아들고 「나비와 바다」 때 그랬듯 온몸에 힘이 빠져 잠깐 동안 미약한 존재감에 절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길에 뛰어드는 이유는 미약하지만 버팀으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다. 밀양의 주민들이 긴 시간 투쟁해온 것처럼 그 곁에서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들이 버텨왔다는 사실을 관객들과 나누고 싶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존재함으로서 누군가가 밀양과 같이 투쟁하고, 그 곁을 지키며 기록하는 길을 함께 걷게 되는 밑거름이 된다면 그걸로 족하다. 뒷짐 지고 지금의 고요함을 즐기련다.

 

개봉 2주차에 접어든 또 하나의 마음

 

‘웃다 울다 절망하다 다시 희망을 보고 영화관을 나선다’는 반응에 불끈 힘이 나지만 개봉 2주차에 접어든 지금, 뒷짐 지고 출발을 기다렸던 마음은 사라지고 조급함이 밀려온다. 19개의 상영관에서 상영 중이지만 배급위가 조직한 상영회를 제외하면 두세명이 극장에 앉아 영화를 관람하고 있는 실정이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최근 몇년 동안 우리는 밀양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아마 3,40년 동안 그 빚은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밀양 주민들은 그 빚을 갚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민주주의가 무엇이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고민해보자고 말을 걸 뿐이다. 그 이야기의 물고를 트고자 「밀양아리랑」을 만들었다. 영화를 함께 보고 밀양과 나, 우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자!”고 말해보지만 공허한 외침처럼 느껴진다. 개봉 자체가 하나의 이벤트로 그칠까 겁이 난다. 글을 마무리하려는 지금 ‘관객들이 극장으로 발길을 옮기게 하는 문장은 뭘까?’ 되물어봤자 ‘그런 문장은 내 안에 없다!’는 결론에 이를 뿐이다.

 

생각해보면 10년 밀양 투쟁에서 연대자가 함께했던 시간은 고작 2,3년에 불과하다. 마음을 쏟는 한두명의 연대자가 누구보다 소중하다는 걸 몸소 가르쳐준 주민들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아 부끄럽다. 둘이 먹다 하나 없어져도 모를 시골 밥상 차려 놓고 우리를 기다렸던 밀양주민들처럼 나 역시 기다려보련다. 「밀양아리랑」은 3년 동안 내가 느낀 밀양 투쟁의 본질을 솔직하게 담으려 노력한 작품이다. 뜸은 충분히 들였으니 밀양을 경험하고 나의 현재를 맛보며 우리 미래를 함께 상상해보자!

 

 

박배일 / 다큐감독

2015.7.22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