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아베 담화, 어떻게 볼 것인가
2015년에 들어와 줄곧 내외의 관심을 모아오던 일본 아베 수상의 ‘전후 70년 담화’가 8월 14일 발표되었다. 한국 언론에서는 일제히 아베 담화를 비판하는 입장에서 역사인식의 후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과연 아베의 역사인식이 역대 일본 보수정권의 역사인식에서 크게 후퇴한 것일까. 오히려 1990년대부터 자민당 보수정권이 장기적으로 추진해오던 우경화의 행보가 아베라는 정치인의 개성에 의해 더욱더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따라서 아베 담화를 무조건 역사인식이 후퇴했다거나 교묘한 말로 식민지지배를 사과하지 않고 피해갔다는 식으로 비판할 것이 아니라 담화의 행간에 숨어 있는 의도가 무엇인지를 읽을 필요가 있다. 먼저 담화의 경과부터 간단하게 살펴보자.
복잡했던 일본 내 동향
아베는 담화 내용에 대해 처음에는 무라야마 담화(1995)의 ‘침략’ ‘사죄’라는 표현을 그대로 계승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내외의 비판에 직면하여 ‘전체로서는 계승’한다고 수정하면서도 전후 70년의 발자취와 미래지향을 중심으로 담화를 구성할 방침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도중에 ‘사죄’ ‘반성’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한국과 중국의 반발은 처음부터 예상한 일이지만 일본 국내에서 안전보장관련법안 심의시 헌법학자 3명이 중의원헌법심사회에서 ‘위헌’이라고 발언한 이후 내각 발족 후 처음으로 지지율이 지지 반대 43%를 밑도는 42%로 내려갔다. 이에 더하여 연립내각 공명당이 역대 내각의 담화를 계승할 것을 주문하고 나까소네 전 수상이 이웃 국가에 대한 배려를 충고했다. 그리고 8월의 내각지지율이 32%까지 하락하면서 방침을 전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의 최대 지지기반인 일본회의, 신사본청 등 우파의 동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변의 우려와 비난을 불식하고 동시에 우파세력도 만족시킬 수 있는 담화를 발표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결국 양쪽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 고심한 결과 만들어진 것이 이처럼 애매하고 불분명한 ‘사죄’와 ‘반성’이라는 형태의 담화가 되어버렸다.
예를 들면 무라야마 담화의 “식민지지배하에서 침략에 의해 아시아 각국에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는 내용을 그대로 계승하지 않는 대신 “사변, 침략, 전쟁. 그 어떤 무력의 위협이나 행사도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두번 다시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우리나라는 지난 대전에서의 행위에 대하여 되풀이해서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명”해왔으며 “이러한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간접적인 표현으로 바꾸었다. 이 부분은 아베의 역사수정주의적인 역사인식을 비판하는 측에 대한 배려라 할 수 있다.
한편 자신이 침략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밝히지 않고 한국의 식민지지배에 대해서 언급을 피하면서 “젊은 세대에게 사죄를 계속하는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된다”고 한 것은 한국의 거듭되는 사죄요구에 반발하는 우파세력에 대한 배려라고 할 수 있다. 역대 내각의 ‘사죄’와 ‘반성’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변함이 없다고 하면서도 스스로 ‘사죄’하지 않은 것은 양 측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한 꼼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무조건적 비판 대신 냉정한 분석을
아베 담화를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결코 만족스러운 것이 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 식민지지배를 세계사적인 추세로 일반화시키고 러일전쟁을 아시아, 아프리카에 용기를 주었다고 한 부분은 명백히 우파 교과서를 주도하는 역사수정주의자들과 인식을 공유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담화에서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는 부분은 한국에 대하여 간접적으로 관용과 화해를 촉구하고 있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담화의 후반부에 들어가면서 패전 후 중국에 잔류되어 있던 일본인 3천여명이 무사히 성장하여 조국의 땅을 밟을 수 있었다는 점, 미국, 영국, 호주, 네덜란드의 전시기 포로들이 장기간에 걸쳐 일본을 방문하여 상호 간의 전사자를 위해 위령을 계속해온 점을 들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쓰라린 전쟁의 고통을 경험한 중국인 여러분과, 일본군에 의해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받은 포로 여러분이 이렇게 관용을 베풀기까지는 얼마나 심정적인 갈등이 있으며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는지, 우리는 그 점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곧 이어서 “관용의 마음에 의해 일본은 전후 국제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전후 70년의 이 기회에 우리나라는 화해를 위해 힘써주신 모든 나라,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상당히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일본과 치열한 전쟁을 한 중국과 서구 각국은 관용을 베풀어 일본과 화해를 했는데, 지금 오로지 한국만이 관용을 베풀지 않고 화해를 거부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일까. 한국에서는 담화가 한국에 대한 표현이나 사죄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고 비판하지만, 한국에 대한 메시지는 분명히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이 기대하는 내용이 아니라 은연중에 한국에 이제 그만하고 관용을 베풀어 화해하자는 의미, 좀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이제 사죄 요구는 그만하라는 것이다. 그러한 의도는 위의 문장에 바로 이어서 전후 태생의 세대가 8할을 넘는 상황에서 “젊은 세대에 사죄를 계속하는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된다”고 하여 사죄를 계속 요구하는 데 대한 거부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부분에서도 알 수 있다.
결국 일본은 반성과 사죄를 거듭해왔는데 한국만이 여전히 관용을 거부하고 언제까지나 사죄와 반성을 요구하는 이상한 나라로 만들어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아베 담화에 대하여 한국 정부나 국민들이 지나치게 집단 히스테리를 보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럼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기념사에서 아베 담화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을 자제한 것은 바람직한 일 이다.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의 상태에 있는 한일관계를 더이상 악화시키지 않고 개선하고 화해하여 동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위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것이다. 일본에 대한 맹목적인 반일은 결코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본의 움직임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비판이 요구되며 이를 위해서는 일본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박진우 / 숙명여대 일본학과 교수
2015.8.19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