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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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광장에 거는 기대

정현곤

정현곤

분명 광장의 느낌은 달랐다. 그것은 집회나 시위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일직선, 우격다짐이 아니었다. 분노이되 지혜로웠다. 말하자면 무한한 지성 같았고 뜨거운 믿음 같았다. 중학생 아이의 손을 잡고 수많은 이들과 어깨를 부딪치면서도 세상사에 대한 관심을 떠들 수 있는 그런 자리였다. 모두 광장에서 백만분의 일이 되려 했기에 광장은 곧 수백만이 되어갔다.

 

광장은 박근혜 즉각 퇴진 운동을 멈출 수 없다

 

탄핵소추의 그날, 박근혜 대통령은 최재경 민정수석의 사표를 수리하고 후임으로 조대환을 임명했다. 조대환은 세월호 희생자를 모독한 사람이었다. 청와대 내정, 새누리당 추천으로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이라는 중책을 맡고는 오히려 특조위 해체를 주장하며 사사건건 특조위 활동을 방해했던 인물이었다. 대통령 탄핵 사유에 세월호참사에 드리워진 대통령의 직무유기가 적시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민정수석 임명은 절대 해서는 안 될 인사였다. 

 

그리고 그날, 박근혜는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과 특검의 수사에 대응하겠다”고 했다. 여전히 스스로를 타인인양 말하는 어투는, 무책임했다. 그는 3차 담화에서 정치권이 논의하여 ‘일정과 절차’를 정해주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고 이에 국회는 탄핵소추 의결로 답했다. 물론 그가 담화에서 표명한 ‘일정과 절차’에 따라 헌재에서 자신의 거취를 다투겠다고 말하는 것이 하등 이상할 일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거취를 다툰다’는 것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는 표명과 모순된다. 그가 조금이나마 염치를 아는 대통령이었다면 스스로 표명한 ‘송구스러움’에 이어 ‘국회의 뜻이 정해졌으니 물러나겠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3차 담화의 교활함에 기대어 국민과의 전쟁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미 드러났듯이 3차 담화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말로 사람들을 호도하면서 실상은 여야 합의와 법적 절차라는 지루한 과정을 설치한 함정이었다. 이 함정의 위력은 탄핵표결에 참여할 것으로 보였던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로 하여금 ‘4월 퇴진, 6월 대선’의 당론에 참여하게 했다. 3차 담화가 노린 것은 국회의 탄핵소추 무산이었다. 그후라면 ‘4월 퇴진’ 또한 지루한 법적 절차 논의 속에서 실종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박근혜의 반격을 무력화시킨 것은 광장이었다. 12월 3일 232만명의 시민이 광장에 나왔고 이는 사상 최대 규모였다. 시민들은 한목소리로 정치권을 질타하고 박근혜의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 이러한 시민의 의지는 민의를 배신하는 국회해산 요구까지를 내포했기에 9일의 탄핵소추를 끌고 가는 힘이 되었다. 이제 모든 시민은 박근혜가 여전히 반란을 꾀할 인물이라는 것을 안다. 박근혜는 헌재의 심리를 최대한 늦추면서 지지세력을 동원하고 대선경쟁의 이전투구 속에서 반전을 꾀할 것이다. 이 모든 상황들은 박근혜 즉각 퇴진 운동이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적폐 청산과 사회개혁을 위한 공동기구 구성

 

박근혜로 드러난 구체제의 적폐는 너무나 심각하다. 이번 사태를 촉발한 특권체제와 특정인에 의한 국가의 사유화야말로 양극화와 불평등을 초래한 원인이었음이 드러났다. 대통령을 필두로 한 국가권력뿐 아니라 재벌로 대표되는 사회권력의 행패는 일상화되어 있다. 이런 상태에서 그 어떤 국민도 일할 의욕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 정치권에서는 구체제의 적폐를 해체할 여러 제안들이 나오고 있지만 구체제는 결코 허약하지 않기에 광장의 힘과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필요한 제안은 여·야·정 협의체라기보다는 광장과 함께하는 사회개혁공동기구의 구성이다. 사회개혁공동기구는 제안만 무성했다가 실현되지도 못한 비상시국회의보다 유력한 방법이다. 개혁해야 할 의제의 선정에 따라 당사자인 시민과 각 분야 전문가들이 결합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데 비교적 순조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광장의 진화와 직접민주주의로의 확장

 

광장은 지금 국회와의 소통력을 가질 수 있는 방향으로 날이 갈수록 새롭게 진화하고 있다. 광장은 이미 지혜로운 자들의 회합의 장이 되어 있다. 그것은 손에 든 컴퓨터가 전달해주는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과 정론의 선택 능력에서 나타난다. 이른바 정보화된 네트워크 시민이다. 그들 시민은 11월 29일 박근혜 3차 담화의 교활함에 대해 일찌감치 간파했으며 심지어 탄핵표결을 하루 앞두고 터져 나온 최순실 소유의 태블릿PC 논란도 단 하루 만에 무력화시켰다.

 

광장의 진화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광장을 토론과 개혁의 장으로 만드는 여러 시도들이다. 광화문광장의 캠핑촌이 주관하는 일상 토론을 넘어 ‘시민평의회’라는 이름의 새로운 공론장이 계층별, 의제별로 개설되고 있으며 이는 점차 동네로까지 확장될 전망이다. 이른바 민회 운동의 시작이다. 이미 광주와 세종시, 서울의 송파와 양천에서는 아파트마다 개인들이 내건 ‘박근혜 퇴진’ 현수막이 출현했다. 최근에는 대선후보들이 매일 밤 광장 토론을 열고 ‘국민권력시대’라는 이름으로 개혁현안을 다루고 있다. 광장시민의 집단지성을 높이 사는 이러한 태도야말로 직접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광장은 많은 이들을 변화시켰다. 가장 큰 변화는 ‘바꿀 수 있겠다’는 믿음이다. “내가 본 것은 이 희망 없는 나라의 현실에 공감하고 분노한 수많은 동료시민들이었다”(염동규 「시민의 반격, ‘헬조선’의 황혼」, 창비주간논평 2016.11.16)라는 고백처럼 광장은 연대에 대한 희망을 싹 틔운 공간이었다. 박근혜의 구체제와 싸우며 민주주의는 더 자라날 것이다. 그 시간이 아깝지 않다. 이제는 그야말로 담대하게 새로운 대한민국을 하나하나 만들어 갈 일이다. 

 

정현곤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정책위원장

2016.12.14 ⓒ 창 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