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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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송제숙 『혼자 살아가기』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서 비혼여성들이 던지는 질문
--송제숙 『혼자 살아가기: 비혼여성, 임대주택, 민주화 이후의 정동』, 동녘 2016

 

 

jtrtjr2016년의 대한민국, 혼자 살아가기가 대세다

 

놀랍게도 항상 민의와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할 대통령마저 늘 혼자 밥을 먹는 ‘혼밥족’이었다는 게 드러났지만, 실제로 1인 가구는 2016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흔한 가구 형태가 되었다. 혼자 술 먹고 혼자 밥 먹는 ‘혼술’과 ‘혼밥’ 역시 이미 사회적 트렌드를 이루는 중이다. 지난 9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1990년대까지 과반수를 차지하던 4~5인 가구는 이제 당시의 절반 정도로 줄었고, 1~2인 가구가 과반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2010년까지만 해도 가장 다수를 차지하던 2인 가구는 이제 1인 가구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전체 가구 중 27.2%가 ‘나홀로 가구’이며, 지역에 따라서는 30%를 넘기는 곳도 존재한다. 1인 가구 비중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30대이며, 1인 가구의 가구주는 여성이 약간 많지만 대체로 남녀 비율은 비슷하다. 그러나 여성 가구주의 비율은 1990년대에 비해 약 2배 가까이 늘었음이 관찰된다. 사회적 삶의 내용을 현저히 바꿔놓을 수밖에 없는 이 모든 변화가 30여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에 일어난 것이다.

 

비혼여성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의 출현

 

나홀로 가구의 증가에 대해 언론이 묘사하는 방식은 대체로 가족의 해체나 고령화 추세 등 사회적 위기 양상에 초점을 맞추거나 아니면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부각하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흐름을 문제라고만 봐서는 현재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만의 방’을 열망하는지, 또 그들이 홀로 살아갈 수 있는 공간과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어떻게 분투하고 있는지 그 중요한 현실을 놓치게 된다. 특히나 사회적 규범에서 자유롭기 어려우며 독립을 위한 사회적 지원을 받기 어렵고, 혼자 살기의 과정에서 종종 신체적 위협에 직면하기도 하는 비혼의 젊은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가족으로부터 독립해 혼자 살아간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고도 복잡한 과제가 되기 마련이다. 그들에게는 혼자 살아갈 독립주거공간을 확보한다는 것이 민주화나 자유의 확대 같은 정치적 투쟁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며, 정치적·제도적인 차원의 민주화운동이 가진 한계를 깨닫고 거기에 도전해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인류학자 송제숙의 저서 『혼자 살아가기』(황성원 옮김)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이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민주화 이후의 한국에서 비혼여성들이 품었던 독립에 대한 열망의 의미를 밝히는 책이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비혼여성의 혼자 살아가기라고는 하지만,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대상과 시기를 정확히 특정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만난 것은 2005~2007년 당시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에서 부모와 따로 떨어져 거주하는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까지의 여성들이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2014년에 영어로 출간한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한국 독자들을 위해 일부 내용을 손봐 출간한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비혼여성들은 민주화 이후인 90년대에 대학생활을 했고 이후 IMF 경제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흐름을 살아냈던 이들로서, 스스로 민주화와 자유화를 향한 운동의 세례를 받았고 반독재민주투쟁에 참가한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특징을 보인다. 일부러 인터뷰 대상을 학생운동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 한정하려 하지 않았음에도 독립을 추구하는 비혼여성을 찾다보니 그 대상이 대체로 풀뿌리 학생운동가들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은 연구가 이루어진 시점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결혼은 점차 선택적 가치가 되기 시작했으며, 다양한 종류의 가족 형태와 친밀성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90년대만 해도 학생운동은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는 여성들이 거치게 되는 중요한 삶의 경유지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에 등장하는 비혼여성들이 살아가고 있던 한국은 IMF 경제위기를 겪고 신자유주의적 흐름이 본격화되는 과정에 있으면서도, 정치적으로는 민주화 이후의 낙관적 분위기가 남아 있던 때다. 이명박정권이 등장하기 전이었고, 비혼을 비롯하여 다양한 가족 형태의 문제가 점차 가시화되는 과정에 있으면서도 저출산에 대한 위기의식이 국가정책과 사회적 관심을 지배하고 있었던 독특한 시공간이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결과 이 책은 매우 다양한 축을 가지게 되었다. 우선 가장 큰 축은 비혼여성들의 독립을 향한 분투기라고 할 수 있다. 점차 남성과 동등한 교육적 기회를 누리게 되면서 대학교육의 수혜를 받고 전문직에 진출하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1988년 올림픽 이후 자유화된 해외여행 경험을 통해 외국 문화에도 노출되면서 이제 가족의 보호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삶을 꿈꾸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실제로 가족들의 도움 없이 자기만의 방을 구하기는 극히 어려웠던 것이 이들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또다른 축은 여성의 빈곤화 및 빈곤의 여성화에 대한 비판이다. 대부분 비정규직/저임금 고학력 여성노동자로 살아가는 이들이 선택 아닌 선택으로 얻는 전월세 주거 형태에는 목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은행을 비롯한 공식 금융 형태뿐 아니라 계나 사채 같은 비공식 금융 형태에서도 소외된 비혼여성들에게는 그 목돈을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 책은 보여준다. 세번째 축은, 이들이 추구하고 향유하는 자유로운 삶과 신자유주의적 시장체제의 근간 사이에 의도하지 않은 친연성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저자의 질문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좌파정치적 주체로서 민주화를 이뤄냈고, 동시에 사회적으로는 자유주의적인 성향을 띠는 이들 비혼여성이 새로운 시대의 정치와 정동을 체현해낼 행위자일 수 있음을 보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비혼의 증가와 새로운 공공성의 요구

 

다양한 층위의 주장을 담고 있는 만큼 저자의 모든 주장이 고른 정도로 설득력을 가지지는 않는다. 과연 이들 비혼여성을 정치적으로는 좌파이나 사회적으로는 자유주의적이라고 개념화하는 것이 적절한지, 또는 노동의 유연화 과정에서 이들이 스스로 유연한 노동을 선택했던 측면을 혹시 너무 과도하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 더 논의가 필요해 보이는 대목들도 있다. 무엇보다 청년문제가 대두되면서 청년층의 비혼 상태 자체는 남녀를 불문하고 훨씬 더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으며, 이에 따라 비혼층에 대한 주거지원의 방식도 크게 변화하고 있는 등 중요한 변화가 감지되기도 하는 상황이다. 또한 1인 가구 비중이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연령대는 이제 사오십대이고, 그 원인으로 이혼이 지목되는 현실에서 비혼의 문제도 1인 가구의 문제도 이제 단지 젊은 여성들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보아야 할 듯하다. 그리고 저자는 자유로운 삶을 향유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적 욕망과 노동의 유연화 현상을 연결시켜 바라보고 있지만, 이제까지 한국에서 노동문제가 심화되어온 양상은 일반적인 의미의 신자유주의화로만은 설명하기 어렵다. 저자가 연구하던 당시에는 비혼여성이라는 명명 자체가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현재 한국에서는 단지 혼인 여부를 의미하는 비혼의 문제를 넘어 이들 여성이 가진 다양한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의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비혼여성에 대한 저자의 후속연구를 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사회에서 생생한 보고로 읽히기에는 이미 시일이 좀 흐르기도 했고 본디 영어권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책인데도, 번역자를 비롯하여 현재 한국의 현실을 살아가는 많은 젊은 독자들, 특히 젊은 여성독자들은 이 책에 깊은 공감을 보이곤 한다. 이는 비혼의 여성들이 살아내야 하는 현실이 많이 변화한 듯하나 여전히 변화하지 않은 지점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비혼여성들은 여전히 공공의 장 속에서 노골적인 배제와 차별뿐 아니라 신체적인 위협과도 싸우고 있다. 혼인 여부를 가리지 않는 사회적 지원과 복지가 증가했다고는 하지만 저출산이 국가적 문제라고 지목되는 상황에서 가족 위주의 정책, 그리고 여성의 시민 자격을 출산과 양육에서 찾으려는 시각은 아직도 강고하다. 아마도 일하는 여성들에 대한 보육지원을 비혼여성들을 지원하는 것보다 당연히 우선해야 한다고 믿는 견해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통계청의 발표가 보여주는 사실은 비혼과 독거가 이제 전 세대와 성별에서 고루 나타나는 현상이며, 결혼과 출산 여부를 기준으로 해서 지원을 결정하는 방식의 복지는 비현실적이고 결국 엄청난 사각지대를 낳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가족 중심의 복지를 비판하면서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공공성에 대한 요구가 독립적인 주거를 확보하고자 하는 비혼여성들의 요구에 상당부분 빚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백영경 /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2016.12.1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