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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낭 오요노 『늙은 흑인과 훈장』

dasads분노와 해학 사이에서

- 페르디낭 오요노 『늙은 흑인과 훈장』


2010년 6월 10일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카메룬의 수도 야운데를 방문한 와중에 작은 불상사가 일어났다. 대통령궁에서 환영오찬을 마치고 나오던 일행 중 한명이 심장마비를 일으켰고, 급히 병원에 호송되었지만 결국 숨을 거두고 만 것이다. 그의 이름은 페르디낭 오요노(Ferdinand Oyono). 15개국 이상의 대사를 지낸 카메룬 외교의 베테랑이자 외무부 장관과 교육부 장관을 역임한 정계의 거물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이름은 전혀 다른 이유로 기억된다. 그는 1950~60년대 아프리카 문학의 황금시대에 일익을 담당한 한명이었던 것이다. 오요노는 비록 세편의 소설만을 남긴 채 정치의 길로 들어갔지만, 외신들은 그의 죽음을 그의 소설 제목을 따서 ‘늙은 흑인’의 서거라고 타전했다.

 

아프리카 문학의 고전을 남기다

 

오요노의 대표작 『늙은 흑인과 훈장』(Le Vieux Nègre et la Médaille, 한국어판 심재중 옮김)은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아프리카 문학의 고전이다. 200면 정도 분량인 이 작품의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작은 소도시에 사는 메카는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자신이 가진 토지를 교회 부지로 기부했고, 두 아들이 전쟁에 나가 전사하는 등 백인들에게 협조를 아끼지 않는 인물이다. 프랑스 식민당국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혁명기념일인 7월 14일에 그에게 훈장을 수여하기로 한다. 원주민들의 축하와 선망 속에서 메카는 훈장을 받게 되지만 수여식은 기대와 조금씩 어긋난다. 이어진 회식에서 그는 만취하는 바람에 그만 백인 구역에 홀로 남겨지고 만다. 밤중에 깨어나 마을로 돌아가려던 메카는 부랑자로 오인되어 위병들과 경찰서장에게 얻어맞고 캄캄한 독방에 감금된다. 그 와중에 훈장도 잃고 수치심과 모욕감으로 앓아누운 그를 위로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찾아온다.

 

이렇듯 소설은 백인들의 친구가 될 것이라고 착각한 순진한 늙은 흑인이 모멸적인 대우를 받고 환상에서 깨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일종의 성장소설적인 구도라고 할 수 있다. 백인들은 입으로는 원주민과의 우애를 내세우지만, 실상 백인사회와 흑인사회 사이에 가로놓인 분리의 벽을 철거할 생각이 전혀 없다. “백인들은 모두 우리가 친구 이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 중 누가 백인과 함께 같은 음식 접시에 손을 담가보았습니까?”(135면)

 

아프리카의 독립운동이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프랑스어로 발표된 이 작품은 차별과 폭력이 엄존하는 식민지 상황을 폭로함으로써, 원시적이고 유순한 아프리카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지니고 있던 유럽인의 허위의식에 경종을 울렸다. 어찌 보면 꽤 공격적인 이 작품을 백인들도 상당히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이 작품에 넘쳐나는 해학적인 분위기 덕분일 것이다. 작품 속에서 원주민들은 걸쭉한 농담을 일삼으며 서로 조롱하기도 하지만 그들 사이에 악의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리고 순진한 원주민들의 어리석음은 작가의 아이러니컬한 시선 아래에서 유머러스하게 그려진다. 메카가 훈장을 타게 되자 원주민들은 자신이 백인의 친구라도 된 듯이 착각한다. 주인공 메카도 점잖은 척 딴청을 피우지만 우쭐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사실 그가 받은 성 크리스토프 메달은 피피냐키스 씨가 받은 레종 도뇌르에 턱없이 못 미치지만, 이를 알지 못하는 메카는 의기양양해한다. “메카는 자기 메달과 비슷한 메달을 걸고 있는 사람이 백인들 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 아주 기뻤다.”(118면)

 

해학으로 풀어낸 사회현실

 

그런데 무지와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원주민사회를 그리는 작가의 시선은 대체로 관대하고 따뜻한 편이다. 소설 속에서 원주민들은 가난하지만 거의 가족과 같은 유대로 이어져 있고 그들의 투박하지만 솔직하고 친밀한 감정표현은 현대인이 잃어버린 공동체사회를 떠올리게 만든다. 예를 들어 메카의 처남인 엥감바는 메달 수여식을 축하하기 위해 염소를 몰고 꼬박 하루 밤낮을 걸어서 찾아온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불합리하고 억압적인 관습조차 원주민들의 시선을 통해 익살스럽게 표현된다. 여성들에게 과중한 노동의 부담을 안기는 일부다처제를 엥감바는 이렇게 회상한다. “나태하고 안락한 삶이었고, 아내들 사이의 경쟁심 덕분에 남자인 그는 누리기만 하면 되는 삶이었다.”(50면) 이에 대한 은밀하고도 예리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엥감바의 아내 아말리아의 사연은 그녀 스스로 젊은 총각보다 아내가 있는 남자를 선택했음을 보여준다. “‘아내가 여럿인 남자 집에서는 여자들끼리 일을 나눠할 거야.’ 이게 그녀의 생각이었다.”(72면) 따라서 작품에 넘쳐나는 웃음의 기본 정조는 날카로운 풍자라기보다 여유있는 해학에 가깝다.

 

하지만 현실을 긍정하고 포용하는 해학적인 분위기는 메카의 수치와 환멸이라는 소설적 구도에서 야기되는 분노의 감정과 날카롭게 대립할 수밖에 없다. 작품에서 이러한 분노를 표출하는 인물은 처남 엥감바이다. 그는 매형을 위로한답시고 모여 있는 친구와 친지들이 술을 얻어 마시면서 농담이나 일삼는 모습에 분노하여 투창으로 바닥을 힘껏 내리친다. “옛날의 진짜 남자들, 용맹스러웠던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저 개떼 같은 무리에게 어떻게 관심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저들도 남자들인가?”(196면) 그는 자신에게 딴죽을 거는 메카의 친구 은띠와 거의 육박전을 벌일 뻔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놀라운 점은 어느 순간 엥감보가 자신의 분노를 접고 어색한 미소로 부족민들과 화해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투창이 쓸모없는 시대임을 자조적으로 인정한다.

 

소설은 현대의 독자들이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방향과 전혀 다른 결말을 선보인다. 엥감바와 은띠가 화해한 후,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거칠고 상스러운 농담’들이 오가고 마침내 메카의 친척 에송바는 백인들을 조롱하는 기발한 착상을 소개한다. 이어서 터지는 폭소, 그것은 그냥 웃음이 아니라 숨넘어가는 웃음, 데굴데굴 구르게 하는 웃음, 잦아들지 않고 이어지는 웃음의 폭발이다. “웃음소리는 집 밖으로 터져나와 한가롭게 바퀴벌레들을 뒤쫓아 다니던 가금들을 겁먹게 만들었고, 가톨릭 선교단의 공동묘지 뒤로 사라졌다. 선교단에서 성무일과서를 읽고 있던 방데르메이에르 신부가 욕설을 내뱉었다.”(199면) 백인에 대한 원주민 종속의 중요한 계기가 종교였다는 점에서 뒷 문장이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는 적지 않다.

 

머나먼 시공간의 차이에도 우리에게 전해지는 울림

 

하지만 아무리 해학이 슬픔을 치유한다고 해도 그것이 분노의 칼끝을 무디게 하는 것이라면 께름칙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백인에 대한 조롱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현실화되지 못한 과거와 관련된 것이다. 결국 그것은 기껏해야 원주민의 ‘정신승리법’이 아닌가? 그리고 소설의 이같은 결말은 백인이나 전통사회와 단호한 단절을 선택하지 못한 오요노의 정치적 입장에서 비롯된 ‘강요된 화해’는 아닌가? (지면관계상 생략할 수밖에 없지만, 오요노의 친구이자 그와 함께 카메룬 문학을 대표했던 몽고 베티는 오요노와 확연하게 다른 길을 걸었고, 우여곡절 끝에 두 친구는 극단적으로 대립하게 된다.)

 

그러나 쉽게 결론을 내리는 대신 우리는 작품의 끝까지 유지되는 아이러니의 힘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주민들이 물러가고 메카의 위신을 염려하는 엥감바에게 메카는 이제 그런 일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면서 대답한다. “이제 나는 그저 노인네일 뿐이에요……”(201면) 다소 쓸쓸하게 울리는 이 마지막 문장은 소설 속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고 있는 젊은 세대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암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왜냐하면 동화될 수 없는 백인들과 전통에 의지하는 무력한 노인들 사이의 대립이란 아무래도 공허해 보이기 때문이다.

 

엥감바와 은띠의 싸움을 말리면서 사람들이 소리친다. “어른은 싸우지 않는 거요!”(195면) 오요노가 분노의 표출 대신 함께 어울리는 해학을 소설의 결말로 선택한 것은 모순이 켜켜이 쌓인 아프리카의 현실에서 공동체의 통일이 깨어지는 일을 무엇보다 염려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독립 후 아프리카 곳곳에서 전개된 참담한 현대사, 열렬한 독립투사가 독재자가 되고 부족 갈등이 내전으로 비화되는 끔찍한 현실을 생각해보자면, 그러한 염려가 터무니없다고 볼 수만도 없다. 해학은 근대사회와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그리고 60여년 전 카메룬과 거의 비슷한 처지에 있던 한국은 해학이 통용되던 전통사회로부터 어느덧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저 옛날 카메룬의 해학이 아직도 우리에게 저릿한 울림을 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분단과 거친 근대화의 와중에 묻혀버린 우리의 어떤 소중한 꿈을 슬쩍 건드리기 때문은 아닌가?

 

 

김동수 / 불문학자, 서울대 강사 

2014.8.2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