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유모토 켄지 외 『스웨덴 패러독스』
복지국가는 어떻게 가능해지나
-유모토 켄지, 사토 요시히로 『스웨덴 패러독스』, 김영사 2011
스웨덴은 자타가 공인하는 복지국가의 모델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스웨덴과 실제는 다르다. 스웨덴은 우리나라보다도 경영상의 이유로 해고가 자유로운 나라다. 글로벌 금융위기시, 자국의 간판 자동차 기업인 볼보가 중국에 팔려갈 상황이 되어도 구제금융을 제공하지 않는 나라, 미국, 독일, 한국 등 대부분의 나라가 시행한 자동차 구매 보조금 정책 또한 받아들이지 않은 나라가 스웨덴이다. 역진적인 부가가치세율이 무려 25%나 되면서, 상속세와 증여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로 전환한 나라, 그리고 법에 의해 당해연도 재정적자는 다음 2년 안에 흑자로 매워야 하는 나라가 바로 스웨덴이다.
이 책은 20여년에 걸쳐 일본의 경제동향과 정부의 정책운영을 지켜본 경제학자 유모또 켄지(湯元健治)와 스웨덴에서 10년 가까이 생활하며 스웨덴이라는 국가를 연구한 사또오 요시히로(佐藤吉宗)가 함께 썼다. 저자들은 1990년대에 리모델링에 성공한 오늘날의 스웨덴을 해부해서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위기에서 새로운 복지로 나아간 스웨덴
사실 우리가 막연히 그리고 있는 복지국가 스웨덴은 리모델링 전 과거의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1990년대초, 우리의 1997년 IMF경제위기보다도 심각한 금융위기를 겪었다. 1990년부터 93년까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1994년 재정적자는 GDP 대비 15%에 달했다. 세계 3위에 달했던 1인당 GDP는 16위까지 밀려났고, 스웨덴 복지모델에 대한 사망선고가 잇따랐다. 이러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스웨덴은 대대적인 국가개조에 나섰고 그 결과를 저자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스웨덴의 저력은 이번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때 빛이 났다. 경제성장률이 2009년 마이너스 5%로 급락했으나 2010년 6.6%의 플러스 성장으로 반전에 성공한 이후 이를 이어가고 있다. 실업률도 7~8%대로 통제되고 있고 국가부채도 GDP 대비 38%로 OECD국가 중 가장 낮은 편이다. 2010년 세계경제포럼(WEF) 기준 국가경쟁력도 4위로, 언제나 상위에 랭크된다. 그렇다고 복지를 희생시킨 것도 아니다. 여전히 소득분배는 OECD에서 세번째로 잘 되어 있고(2010년 지니계수 기준), 평균수명이나 국민행복도 또한 최상위권이다.
혹자는 스웨덴의 1990년대초 개혁을 축소지향의 조세 및 복지 개혁으로만 이해한다. 하지만 이 대대적인 국가개조 과정에서, 핵심은 정책목표의 변화가 아닌 합리적 정책수단을 마련하는 것이었음에 저자들은 주목한다. 예컨대 1999년 스웨덴은 고령화사회에서 노인들의 소득보장이라는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재정적 지속가능성에 빨간불이 켜진 사회수당식 기초연금과 전통적인 공적연금을 과감히 폐지하였다. 대신에 명목확정기여방식(NDC: Notional Defined Contribution)이라는 새로운 소득비례연금제도를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만들어냈고, 이를 보충급여방식의 기초보장연금(guarantee pension)과 짝을 이루어 도입하였다. 이 연금개혁을 통해 동일한 비용으로 보다 높은 수준의 기초보장을 이루고, 중산층의 노후를 책임지게 될 소득비례연금은 ‘천년만년’ 지속가능하게 되었으며, 중고령자의 근로를 최대한 유인하게 되었다. 초고령사회에 가장 최적화된 노후소득보장체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방안
이 책은 이밖에도 복지논쟁이 한창인 우리나라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공보육을 보자. 스웨덴에서도 0세는 공보육의 대상이 아니다. 돌도 지나지 않은 갓난아기는 어린이집이 아닌 부모의 품에서 자랄 수 있게 육아휴직을 활용하도록 정책설계를 하였기 때문이다. 아동수당을 주어 양육비용을 보조하는 것은 물론, 종전 월급의 77%가량을 보전해주는 유급휴가를 최장 16개월까지 보장한다. 유급휴가가 여성고용을 위축시킬 것을 우려해 유급휴가 비용은 해당 고용주 부담이 아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근로자를 고용하면 고용주는 부모보험(parental insurance)에 보험료를 납부한다. 건강보험이 돈을 모아두었다가 아픈 사람에게 소득을 이전시키는 것처럼, 부모보험은 돈을 모아두었다가 아이를 가진 부모에게 소득을 이전해주는 것이다. 여성을 고용했다고 특별히 노동비용이 더 드는 게 아닌 것이다. 육아를 위해 유급휴가로 떠나면, 회사는 인건비가 남게 되니 부담 없이 대체고용을 한다. 대체고용은 1년 정도로 기간은 짧지만 실업자에게 새로운 일자리이자 정규직 일자리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아이가 2~3살이 되면 우리처럼 어린이집에 보내는데 워킹맘 우선이다. 우리와 달리 전업주부는 하루에 네시간만 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있다. 경제와 복지의 선순환을 위해, 근로자 우선이라는 철학이 복지제도 전반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 분담은 어떤가? 시민의 삶을 가까이서 보살펴야 하는 사회서비스는 지방정부가 재정주권을 갖고 담당하고 있다. 우리의 광역자치단체에 해당하는 란드스팅(landsting)이 10.8% 정률의 지방소득세를 모든 소득자에게 부과하여 의료보장을 책임진다. 초·중등교육과 보육 그리고 요양서비스는 코뮨(Kommun)이라고 불리는 기초자치단체가 책임지는데, 그 비용은 20.7%의 지방소득세를 모든 소득자에게 정률로 부과해 충당한다. 중앙정부는 사회보험을 통해 연금, 실업급여, 질병수당, 육아휴직급여 등 보살핌이 필요 없는 현금이전성 정책을 책임진다.
복지비용은 위에서 언급한 지방소득세와 사회보험료를 통해 대부분 충당된다. 그러나 기초보장연금, 사회부조, 고등교육 등에 필요한 재원은 중앙정부가 세율 25%의 부가세와 22% 정률의 법인세, 그리고 소득 최상위자 10%에게 부과하는 세율 20%의 소득세와 바로 아래 상위 10%에게 부과하는 10%의 소득세로 마련한다. 물론 이 중앙정부의 세수입은 일반행정과 경제개발 그리고 국방비 등에도 사용된다. 보다시피 대부분 누진세이기보다는 정률의 단일세이다. 세제가 복잡하고 누진율이 심하면 경제활동에 왜곡을 가져온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소득자들도 25%의 부가세를 부자들과 똑같이 소비하면서 부담해야 함은 물론, 최소한 31.5%에 달하는 지방소득세를 내야 한다. 소득 상위 20%만 추가로 소득세를 낼 뿐 나머지 세금은 누구에게나 같은 비율로 적용된다.
이제 제대로 알고 논의할 때
어찌 보면 조세정의에 어긋나는 것 같지만, 이러한 보편증세 때문에 중산층과 부자들의 조세저항이 크지 않다. 가난한 사람도 형평껏 세금을 다 내는데, 어찌 동률인 세금을 못 내겠다고 저항할 수 있겠는가? 세율은 대부분의 국민에게 똑같이 적용되지만, 실상 절대액은 큰 차이가 난다. 예컨대 연봉 1000만원인 소득자는 315만원을 소득세로 납부하고, 5000만원인 사람은 그 다섯배인 1575만원을 납부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률과세라는 마법 속에 고부담 복지가 지탱되는 이유이다.
국가마다 살아가는 방식은 다 다르다. 문화와 역사가 다르고, 물려받은 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스웨덴과 한국은 너무나 다른 세상이다. 그러나 스웨덴이 복지국가를 어떻게 가꾸고 이끌어가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스웨덴을 피상적으로 알고 무늬만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작동되는 원리를 함께 살피면 더 큰 교훈을 얻게 될 것이다. 『스웨덴 패러독스』는 이러한 점에서 매우 알찬 정보로 가득찬 좋은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양재진 /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2014.12.1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