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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아우슈비츠와 아이들의 미래

 

김태우

김태우

검은 옷을 입은 수백명의 사람들이 어두운 대지 위에서 연신 하얀 입김을 내뿜는다. 순백의 초대형 천막이 커다란 어미 새처럼 허공에서 펄럭이며 검은 옷의 사람들을 따스하게 품고 있다. 수십년 전의 흑백영화를 보는 듯한 흑과 백의 선명한 대비. 지난 1월 27일 폴란드 오슈비엥침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에서 개최된 아우슈비츠 해방 70주년 행사장의 풍경이다.

 

전후 독일의 과거사 청산과 관련하여 가장 곤혹스럽고 지우고 싶었던 부분은 단연 죽음의 수용소(Todeslager)로 불렸던 집단수용소의 존재였다. 그중에서도 아우슈비츠는 2차대전기 나치 독일의 가장 대표적인 절멸수용소로서, 전체 6백여만명의 유대인 희생자 중 약 1백만명 이상이 이곳에서 살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른바 문명국가였던 독일이 유럽 한복판에서 행한 이 엄청난 사건은 전후 빅토르 프랑클, 테오도어 아도르노, 장 아메리, 쁘리모 레비, 한나 아렌트 등의 지식인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단순한 유대민족의 비극이 아닌 인류 전체의 문명사적 일대 사건으로 간주되어왔다.

 

때문에 매우 당연하게도, CNN과 BBC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 아우슈비츠 해방 70주년 행사 전체를 전세계인을 향해 생방송으로 송출했다. 행사장에는 프랑쑤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요하임 가우크 독일 대통령, 필립 벨기에 국왕,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 내외 등 유럽 각국 정상 40여명과 고령의 아우슈비츠 생존자 300명이 참석했다. 이날 가우크 독일 대통령은 독일 연방의회 연설에서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것은 모든 독일인의 도덕적 의무”라고 강조했고, 전날 앙겔라 메르켈 총리 또한 “나치의 만행을 잊지 않는 것은 독일인의 영원한 책임”이라며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추모행사에 참석한 아우슈비츠 생존자 로만 켄트는 “우리의 과거가 아이들의 미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인상적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사람들은 뜨거운 박수로 동조했다.

 

아우슈비츠 희생자 추모행사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

 

나는 CNN을 통해 아우슈비츠 추모행사를 생방송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최근 2~3주 동안 이 행사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한국인들은 과연 이 행사를 어떻게 회고할지,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현대 독일정부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어떻게 평가할지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그동안 한국인들의 대표적인 반응은 압도적 국가폭력이나 인류문명에 관한 진지한 회고나 경계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일본이나 북한과 같은 한국 주위의 타자를 향한 날선 비난이었다. 이를테면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아우슈비츠와 관련된 독일 메르켈 총리의 발언을 거론하며, “전세계에, 특히 아시아에 가이드라인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모든 언론은 윤장관의 발언을 일본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윤장관 외에도 국내의 여러 정치인과 언론 매체들이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아베 정부를 비난했다. 특히 일부 보수언론은 북한사회 전체 혹은 북한 내의 강제수용소를 아우슈비츠에 비유하며, 그 해방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중요한 사실은 이 모든 중요 정치인들의 발언과 언론 기사들 속에서 한국사회 스스로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자성의 목소리를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수많은 말의 향연 속에서 한국현대사 속의 제노사이드를 진지하게 돌아보거나, 현대 한국사회 내의 소수자들(홀로코스트 당시의 유대인이나 집시와 같은 존재)에 대한 폭력적 타자화를 냉엄하게 경계하는 목소리는 거의 완벽하게 부재했다.

 

제노사이드 문제를 회피하는 한국의 역사 교과서

 

최근 나는 2014년에 새롭게 발간된 8종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한국현대사 관련 내용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비교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주4·3사건과 같은 한국현대사의 집단학살사건들에 대한 교과서들의 서술방식도 상세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그 결과, 놀랍게도 한때 논란이 됐던 이른바 ‘교학사 교과서’는 물론, 8종의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모두 한국현대사의 제노사이드 문제를 상당정도 회피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었고, 심지어 일부 교과서는 사실상 제노사이드를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서술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컨대 8종의 교과서는 3만여명의 민간인이 대량으로 학살된 제주4·3사건의 원인으로 공히 “공산주의자” “남로당” “좌익”의 무장봉기를 주요하게 강조했다. 반면에 1947년 이래 우익청년단원들의 제주도민을 향한 무차별적 폭력에 대해 ‘간략하게라도’ 언급한 교과서는 전체의 절반에 해당하는 4종에 불과했다. 특히 제주도민 전체를 “빨갱이”로 낙인찍었던 일부 지휘관들의 폭력적 타자 인식, 혹은 1948년 11월 초토화작전 진행 이후 남녀노소를 불문한 무차별적 학살이 더욱 광범하게 진행되었다는 사실 등을 명확하게 서술한 경우는 단 하나도 없었다. 더불어 여수, 순천, 보성, 벌교, 구례 등에서 민간인 수천명의 희생을 낳았던 여순사건에 대해서도 2종의 교과서만이 민간인 희생 사실을 아주 간략히 언급했을 뿐, 모든 교과서들이 공히 여순사건을 군 내부의 반란 사건으로만 묘사했다.

 

독일 홀로코스트 교육의 시사점

 

위와 같은 한국 역사 교과서의 서술은 윤병세 외교부장관이 과거사 문제와 관련하여 ‘아시아의 가이드라인’이라고까지 칭송한 독일의 자성적인 홀로코스트 교육이나 역사 교과서 서술 방식과는 매우 상이하다. 독일은 이르면 유치원에서부터 동화, 영화, 부모와의 대화, 교육기관의 프로그램 이수 등을 통해 홀로코스트 교육을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의 공교육 현장에서는 한국의 중학교 2학년에 해당하는 9학년 역사수업 시간부터 공식적으로 홀로코스트 교육을 특히 중요하게 다루기 시작한다. 근현대사를 구체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홀로코스트를 핵심 주제로 공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현대 독일의 홀로코스트 교육현장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 교육의 장을 넘어, 시민교육이자 민주주의 교육의 장으로까지 이해된다. 독일 청소년들은 홀로코스트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문화적·인종적 배경을 가진 타인들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심성을 기르고 증오와 공격성을 통제하는 자세를 키워가고 있다.

 

이와 같은 독일의 홀로코스트 교육은 지금의 한국사회에도 매우 시사적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적 약자나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폭력적 낙인과 타자화 과정을 쉽사리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일부 보수언론은 정부 비판적인 정치인과 지식인들에 대해 ‘종북’이라는 딱지를 마구잡이로 붙이는가 하면, 특정 인터넷 사이트는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여성, 특정 지역민과 같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을 아무렇지 않게 인간 이하의 존재로 희화하여 조롱하곤 한다. 제노사이드에 관한 기존의 주요 논저들에 의하면, 이같은 타자화와 비인간화 과정은 세계사 속 모든 제노사이드의 공통적인 초기단계로 간주된다. 우리 스스로 민감하게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주변에 게토와 아우슈비츠들이 지속적으로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우슈비츠 해방 70주년을 맞아 독일과는 사뭇 다른 일본의 과거사 성찰 부재를 적절히 비판하는 일은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건전한 내적 성장과 후속세대의 평화를 위해서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안의 아우슈비츠를 돌아보는 일일 것이다. 날이 갈수록 그 영토를 확장하고 있는 우리 안의 아우슈비츠를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그를 허물어뜨리기 위한 노력은 현재의 우리와 미래의 후속세대를 위해 매우 중요한 사회적 과제이다.

 

일찍이 시인 김남주는 말했다. “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당한 얘기다. 아우슈비츠 또한 아우슈비츠에만 있는 것이 아닐 터이다. 독일의 철학자 아도르노는 “모든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다시는 아우슈비츠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요청”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아도르노가 말한 “모든 교육”은 독일인들만을 위한 교육을 의미하는 게 아닐 것이다. 놀랍게도 20세기말 유럽(발칸반도)에서 인종주의에 기초한 대규모 집단학살이 또다시 발생했다는 사실, 2015년판 최신 뉴스 기사에서도 제노사이드 관련 기사(나이지리아 바가 지역 2천여명 집단학살)가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 등은 전세계 인류에게 여러모로 시사적이다. “우리의 과거가 아이들의 미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아우슈비츠 생존자 로만 켄트의 호소에 우리도 진정성을 갖고 접근해나가야 할 것이다. 

 

 

김태우 /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2015.2.2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