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416작가기록단 『금요일엔 돌아오렴』
이것은 실제상황이다
-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금요일엔 돌아오렴』, 창비 2015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란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온 이 책을 읽고 소감을 써달라는 창비 측의 요청에 응하고서 다 읽고 난 지금 나는 막막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쓴다는 것 자체가 엄두가 나질 않는다,라는 게 이 책을 읽고 난 내 소감이다.
기가 막히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이 책을 읽은 뒤로(2014년 4월 16일 이후 내내 그런 형국이긴 하지만)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아니 숨을 쉰다는 것도 미안해서 나는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럼에도 밥은 먹어야 하고 잠은 자야 하고 숨은 쉬어야 한다. 그래야만 하는 것이 참 힘들다. 책만 읽어도 그런데 가족 잃은 이들은, ‘새끼’ 잃은 부모들은 오죽할까.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내고 있는 시간
단원고 2학년 4반이었던 건우 엄마는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하달 만큼 ‘웃다가 울다가 먹다가 또 울다가’를 반복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가도 또 건우가 엄마를 알아볼 수 있게 ‘미치지는 말아야겠다’(17~18면)며 이 세상에 없는 아들에게 자신을 붙잡아달라고 애원한다.
그 말이 맞다. 그 부모들은 지금 슬픈 시간이 아니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간’을 살고 있다는 말. ‘집 밖을 나갈 수도, 집 안에만 있을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안 먹을 수도 없는 시간’(343면)을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내고’ 있다. 잔인하다. 이보다 더 잔인한 일이 있을 수 없다. 책을 읽고 나서 꿈을 꾸었다. 어인 일인지는 몰라도 힘센 악인들에게 잡혔다가 도망을 치던 중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이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끝내 다시 붙잡혀 처음 상황으로 돌아간 그 꿈은 악몽이었다. 깨고 나서 그것이 꿈이었다는 사실에 얼마나 안도했는지. 그러나, 그런 악몽이 현실인 사람들이 지금 우리 곁에 살고 있다.
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은 그 사회 당대 권력의 성격에 따라 다르게 드러나는 것 같다. 군사정부 시절 있었던, 지금도 그 진상이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끔찍한 의문사는 그때나 있음직한 죽음들이다. 당시에 군사독재정부가 아니었다면 결코 그 젊은 사람들이 그토록 처참하게 죽어야 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천안함사건은 어떤가. 그것이 북측의 소행이라면, 북한이 그렇게나 신속하고 어이없게 그런 살상을 저지르는 것을 막지 못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젊은 사람들이 생때같은 목숨을 그렇게 허망하게 잃어버리게 해놓고도 그것을 막지 못한 사람들이 책임지는 모습을 우리 국민은 아직 보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저질렀으니 북한 책임이란 말인가? 그것을 막으라고 국민이 세금을 내는 것 아닌가? 그 세금 다 어디다 써버렸을까.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는 즉시 국민이 바친 돈을 자기들 부귀영화 누리는 데 쓰는 머리 굴리느라 정작 국민이 돈 바쳐가며 부탁한 일들은 나 몰라라다. 텔레비전 보험광고가 왜 그렇게 많은지를 이제 알겠다. 그 광고들은 말하자면 국가는 당신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속삭임이 아닐까.
책임지지 않은 채 권력놀이에 급급한 이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그리고 돌아오지 못한 304명. 그날의 일을 대하는 이 나라 권력자들의 모습을 통해 나는 명확하게 보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애먼 사람들한테 힘을 쥐여줬다. 자격이 없는 사람들, 절대 권력을 가져서는 안될 사람들한테 표를 던졌다. 내 안전, 내 목숨, 내 재산 지켜주리라 믿고 세금 냈지만, 돈 낸 사람들은 안 지켜주고 자기들 권력 지키는 데만 혈안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이중으로 돈을 들인다. 사보험을 들고 사교육을 시킨다. 이제 자기를 지키려면 사경찰, 사군대까지 만들어야 할 판이다.
대한민국이란 국가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운영하라고 위임받은 한시적 권력을 쥔 자들이 잘못되었다. 그자들을 이제 벌할 때가 되었다. 국가운영을 잘못한 죄를 물을 때가 되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불안해서 못살겠다. 억울하고 모멸스럽고 너무 슬퍼서 못살겠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벌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그들에게 사죄를 받아내고 국가운영을 잘못한 책임을 지울까.
지금, 잘못한 자들이 오히려 매를 드는 모습을 상시적으로 보고 살아야 하는 것이 괴롭다.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들이 죽어나가고 아무 잘못도 없이 살아온 그 아이들의 부모들이, 가눌 수 없는 고통 속에 빠진 그 부모들이 욕을 먹는 이상한 현상을 날마다 목도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정말 괴롭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권력이라고 다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지금 우리나라에서 권력을 잡은 자들의 행태는 그 매몰참이, 그 부정직함이, 그 야비함이, 그 뻔뻔함이, 그 비정함이, 그 욕됨이, 그 천박함이 도를 넘었다. 국가운영을 할 능력이 없어서인가. 그래서 그들은 자꾸 국가운영기관들을 팔아먹으려 한다. 국가적 재난인데도 그 구조를 국가 차원에서 하지 않고 사기업에 하청을 준다.
그렇게 국가부재 상태를 만들어놓고도 또 자신들이 뭔가를 하고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한다. 도대체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들이, 할 능력도 없으면서 연기만 너무 잘한다. 그들 자신이 국가인 양 ‘국가 코스프레’를 한다. 권력놀이를 한다. 내 조국 대한민국은 그렇게 어이없게 권력자의 손아귀에서 사유화되고 희화화되었다.
야당 시절, 국가가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지켜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국가가 아니라며, 대통령이 책임지라고 말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눈물 한줄기 흘리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준 걸로 그 책임을 다했다고 여기는 것일까. 그래서 그렇게 매몰찬 것일까. 그래서 그렇게 남 일 대하듯 하는 것일까. 나는 이런 대통령을 보는 것이 너무 괴롭다. 국민을 지키는 게 아니라 이런 대통령을, 이런 대통령만을 지키려고 결사옹위하는 이 나라의 권력푼깨나 있는 자들의 행태가 무섭다. 이것이 악몽이었으면 좋겠다. 깨어나면 그것이 꿈이었다는 사실에 안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것은 말 그대로 악몽 같은 현실이다.
그들의 절규를 들어야 한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대한민국을 떠날 수가 없다. 이 땅에서 어떡하든 살아야 한다. 살아내야 한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단원고 2학년 3반 소연이를 잃고 날마다 우는 소연 아빠도, 유방암 3기의 몸으로 딸을 잃고 산다는 두려움에 아무 데도 나갈 수가 없다는 채원이 엄마도 마찬가지다. 지금 대한민국엔 두 형태의 삶이 있다. 삶을 ‘사는 사람들’과 ‘살아내는 사람들’이다. 이 악몽 같은 삶을 그러나 기필코 살아내야 할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간을 살지만 그 모든 고통에도 여하튼지 살아내야 할 사람들의 피맺힌 절규다. 이 절규는 악몽 같은 이 현실이 실제상황임을 알리는 긴급한 싸이렌 소리다. 지금 당장 내가 이 싸이렌 소리를 외면하거나 행동하지 않으면 그다음엔 내가 절규하게 될 것이다. 이 책에 담긴, 금요일엔 돌아오겠다고 수학여행 떠나서 수많은 금요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의 엄마가, 아빠가 눈물 꼭꼭 삼키며 간곡하게 들려주는 이 이야기를 외면하고서 우리가 어찌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짐승의 삶이나 한가지일 텐데.
공선옥 / 소설가
2015.2.2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