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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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백영서 『핵심현장에서 동아시아를 다시 묻다』

복합국가와 제국
- 백영서 『핵심현장에서 동아시아를 다시 묻다』

 

 

haeksim1990년대초 한국사회에서 동아시아론이 제기된 데는 내외적 필연성이 잠복해 있었다. 밖에서는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함께 철의 장벽처럼 견고했던 미·소 냉전의 와해라는 세계사적 변화가 있었다. 이 예기치 못한 충격을 내면화하여 자기반성과 쇄신의 동력으로 전환시킨 것이 동아시아론이다. 이는 민족·민중문학론을 비롯하여, 현실에 뿌리내림으로써 엄혹했던 시절에도 생기로웠던 앞 시기 지식계의 축적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냉전종식의 의미를 제대로 곱씹을 여유도 없이 쇄도해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물결에 갈팡질팡했던 주변 지역의 정황과 비교해보더라도, 우리의 지적 자산으로서 동아시아론의 무게는 실로 남다르다.

 

이후 20여년간 동아시아론엔 적잖은 도전이 있었다. 이론적 체계화에 대한 요구가 지속되는 가운데, 어느 순간 동아시아가 세계 자본주의의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들어서면서 애초의 대항담론으로서 자기정립의 필요가 절박해졌다. 게다가 지금의 동아시아는 중국의 굴기(崛起)가 지구적 자본주의와 세계질서를 바꿀지도 모르는 또 한번의 세계사적 전기를 앞두고 있다. 동아시아론의 도약이 절실한 시기다. 

 

동아시아적 의제로서의 복합국가론

 

백영서의 『핵심현장에서 동아시아를 다시 묻다: 공생사회를 위한 실천과제』(창비 2013, 이하 『핵심현장』)는 동아시아론의 새로운 도약이 요구되는 시기에 맞춰 나온 중대한 지적 성과다. 과연 이 책은 지난 십여년간 담론으로서 그리고 실천으로서 동아시아론이 걸어온 복수의 궤적들을 세심하게 정돈함으로써 동아시아론의 현주소를 가늠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해주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성과는 이 책이 우리 지식계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근대의 문제를 이론이 아닌 현장감각에 기반하여 새롭게 사유하게 한다는 데 있다. 이는 또한 동아시아론이 태어난 곳을 되돌아보게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핵심현장』이 오랜 시간과 폭넓은 공간에 걸친 지적 대화의 산물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어떤 면에서 동아시아론은 우리 사회의 지적 계보에서 동떨어져 보이는 면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혹자는 민족문학론 이후 창비에서 발신한 두 담론인 분단체제론과 동아시아론 사이의 괴리를 지적하기도 했던 것이다. 『핵심현장』은 민족문학론과 분단체제론 그리고 동아시아론 사이, 자칫 소홀했거나 잊혀졌던 사유의 연계성을 복원해나간다. 민족문학론은 냉전구도가 틀 지은 반국적 시야를 넘어 온전한 일국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내면에 제3세계론을 품음으로써 일국성을 넘어설 계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즉, 민족문학론은 미완의 민족을 완성하는 일이 민족을 넘어섬으로써 가능하다는 역설을 배태하고 있었던 것인데, 바로 그 지점에서 분단체제론과 동아시아론으로 진화할 계기가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동아시아론이 시종 민족국가에 대한 사유의 긴장을 놓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한 『핵심현장』은 장기간에 걸친 동아시아 지식인들과의 대화의 산물이다. 지난 십여년간 저자가 몸담은 동아시아 지식인 네트워크는 단순한 학술교류의 차원을 넘어 그 자체로 동아시아의 소중한 지적 자산이 되어 있다. 동아시아론을 먼저 제기한 것은 한국이지만, 동아시아 각지는 각자 처한 상황 속에서 ‘동아시아’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중 이 책이 특히 주목한 것은 오끼나와와 대만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주변부이다. 식민, 제국, 냉전이 가져온 현대사의 모순이 집중적으로 응축된 이 ‘핵심현장’의 발견은 종래의 한·중·일 구도가 동아시아에 또다른 위계를 형성한다는 오랜 문제제기에 대한 적극적 반성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의미는 동아시아론의 출발점이기도 한 민족국가에 대한 사유를 심화시켰다는 데 있다.

 

이처럼 종적으로 민족문학론 이후 한국의 지적 궤적과의 대화, 그리고 횡적으로 동아시아 ‘핵심현장’과의 대화가 교차되는 지점에서 제련되어 나온 것이 바로 ‘복합국가론’이다. 물론 복합국가론이 여기서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다. 7·4남북공동 성명 직후 역사학자 천관우가 제기했던, 당시로서는 놀라운 이 발상은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에서도 적극 받았던 것인데,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지 못하는 현실이야말로 우리 사고 속에 국민국가의 벽이 얼마나 공고한지를 반증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복합국가론의 범위를 동아시아의 ‘핵심현장’으로 확대함으로써 논의를 한층 전면화한다. 대만, 진먼다오(金門島), 오끼나와, 홍콩과 함께 놓고 보면, 국민국가에 대한 발상의 창조적 전환을 요하는 것이 결코 한반도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님을 알게 된다. 통일/독립을 둘러싸고 소모적 싸움을 벌여온 대만, 독립/복귀를 두고 갈등해온 오끼나와, 그리고 일국양제(一國兩制)라는 새 모델이 최근 ‘점중시위(일명 우산혁명)’로 문제를 드러낸 홍콩의 상황은 모두 국민국가를 근원적으로 재사고하지 않고서는 답을 찾기 어렵다. 복합국가는 한반도만이 아닌, 이미 동아시아적 차원의 의제인 것이다.

 

동아시아의 강고한 내셔널리즘과 영토문제의 민감도를 생각할 때, 동아시아적 의제로서 복합국가론은 실로 도전적이다. 그러나 국민국가를 고수하는 시스템으로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생각할 수 없음이 명확한 마당에, 복합국가론의 발상을 각지의 현실에 맞게 창조적으로 사고해보자는 저자의 제안은 더없이 소중하다. 그러나 이 협력적 과제를 한층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복합국가론에 대한 향후의 이론적 정밀화는 필요해 보인다. 복합국가가 추구하는 것은 국민국가의 외연의 유연화인가, 아니면 국민국가에 대한 근원적 도전을 내포하는가. 다시 말해, 복합국가론은 오끼나와, 서해안, 창지투(長吉圖, 창춘-지린-투먼), 진먼, 개성공단 등 “온전한 국가가 아닌 지역”들이 국민국가들 사이에 합법적으로 존재하는 중간지대를 제공해주기 위한 개념인가, 아니면 각 지역들이 그들이 속한 국민국가에 균열을 일으킴으로써 현 국민국가 체제에 대한 발본적 개조를 기대하는 개념인가. 이런 질문은 복합국가론이 좀처럼 답을 찾기 어려운 동아시아의 현실적 이슈를 해결하는 기능적 방안에 그칠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동아시아의 미래 비전을 담은 사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기대와 연결되어 있다.

 

제국은 복합국가와 어떻게 대화할까

 

『핵심현장』이 제기한 또 하나의 중대한 논제는 중국의 제국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이는 지금 동아시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이며, 그중에서도 한국은 가장 민감한 위치에 있다. 일본, 대만, 홍콩, 동남아시아에 걸쳐 반중전선이 형성되는 가운데, 한국은 이들과 중국의 중간에 놓여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도 민간 차원의 혐중정서가 적지 않지만, 최근 한국정부도 친중으로 선회했고 또 양국 간의 높은 경제적 의존도를 보더라도 한국과 중국은 결코 적대적일 수 없는 관계다. 이런 상황은 동아시아의 중재자로서 한국의 중요성을 새삼 부각시킨다.

 

중국학자로서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감지하는 만큼, 저자는 우리 사회에 은근히 만연한 중국위협론에 신중하다. 무턱대고 중국위협론에 편승하기 전에 우리에게 중국을 위협으로 느끼는 감각과 인식이 어디서 왔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충고는 분명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제국담론에 대해서도 조심스레 접근한다. 관용과 팽창이라는 제국의 양면을 동시에 가늠하면서 긍정성과 부정성 사이를 최대한 조율하려 노력한다. 제국담론의 가장 일반적인 전제는 아무리 짧게 잡아도 청조(淸朝)로부터 이어지는 중국의 거대한 연속성과 그로 인한 다기한 복잡성을 서구 근대의 산물인 국민국가 개념으로는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전제에 공감하면서도 저자는 제국담론이 내세우는 관용과 다원성이 과연 중국 민족주의를 넘어 인류 보편의 문명이 될 수 있는지 묻기를 잊지 않는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제국론과 복합국가론의 관계이다. 제국론에 은닉된 위험을 제어하기 위한 방안으로 저자는 복합국가론을 참조할 것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과거 중화제국의 유산이 남긴 부정적 이미지를 청산하고 또 주변국에게도 신뢰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제안이 제국담론에 대한 완곡한 비판인 동시에, 중국 지식인들과 유의미한 대화를 지속하기 위한 전략적 의미를 담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라도 제국론에 대한 더 진전된 논의가 향후 지속되어야 할 듯하다.

 

우선, 제국론의 기본 전제는 현대의 중국을 제국과 국민국가의 동시성으로 보자는 것인데, 이때 ‘동시성’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국론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천하’나 ‘왕도’ 같은 제국 이념이 근대 국민국가가 초래한 문제점을 제어한다는 점에서 제국론은 정당성을 얻게 된다. 그런데 만약 제국성이 국민국가와 대결하기보다, 국민국가로 설명될 수 없는 특정 부분을 보완함으로써 그와 양립하는 것이라면, 결국 제국성은 중국의 국민국가성을 강화하거나 정당화하는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 제국담론 안에 제국과 국민국가의 ‘동시성’이 어느 정도의 첨예한 긴장을 안고 있는지, 더 세밀하게 추궁해야 할 것이다.

 

두번째 의문은 제국담론이 중국의 부상으로 재편되는 자본주의 질서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이다. 특히, 작년 대만과 홍콩에서 일어난 반중시위가 중국이 앞세우고 들어온 신자유주의적 가치에 대한 저항이었다는 현지의 주장들은 중국의 제국화에 대한 반감이 중국 자본주의와 무관하지 않다는 혐의를 준다. 이는 제국론이 자본주의적 근대세계에 대한 대안적 문명론이라는 제국담론의 주장과도 모순된다.

 

제국은 복합국가의 한 형태가 될 것인가, 아니면 복합국가의 이상을 위협하게 될까. 양자는 사상적으로 같은 길을 갈 수 있는가. 과연 국민국가에 대한 창조적 재사유라는 복합국가론의 지적 기획에 제국이 동참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향후 동아시아론이 직면해야 할 거대한 도전이다.

 

 

백지운 /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2015.3.2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