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스테퍼니 스탈 『빨래하는 페미니즘』
페미니즘 고전 읽기를 통해 여성성의 신비화를 치유하기
-스테퍼니 스탈 『빨래하는 페미니즘』
『빨래하는 페미니즘』(Reading Women, 2011, 한국어판 고빛샘 옮김, 민음사 2014)은 어머니가 된다는 것, 행복한 결혼생활의 이상 속에서 자아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한 여성이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페미니즘 고전 읽기 수업을 청강하면서 이전 세대 페미니스트들의 삶과 문제의식을 되집어보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에세이이다. 이 책은 1960년대 페미니즘 제2물결을 주도했던 페미니스트 중 한명인 베티 프리던(Betty Friedan)의 『여성성의 신비화』(feminine mystique, 1963)의 21세기 버전이라고 할 만하다.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고 성장한 현대 여성들 역시 행복한 여성에 대한 이상과 주체적인 여성으로서의 삶 사이에서 방황하며 내적 갈등을 겪는다는 점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프리던은 1950년대 미국 중산층 사회에서 대학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을 사회 속에서 발휘하지 못하고 교외 중산층 전업주부로 살면서 느끼는 소외감을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로 명명하면서, 이 여성들이 대중문화가 유포하는 ‘여성성의 신비화’에 매몰되어 자아를 잃어버린 채 누군가의 아내와 어머니라는 그림자와 같은 삶을 살게 됨을 논의했다. 『빨래하는 페미니즘』의 저자 스테퍼니 스탈(Stephanie Staal)은 대학 시절 프리던이 묘사한 교외 중산층 전업주부의 우울을 “구시대의 유물”처럼 여기며 자신에게는 우아하고 찬란한 미래가 있으며 모든 것을 다 성취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갖고 성장한 세대의 일원이었다. 이러한 그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산후우울증을 경험하면서, 어머니가 되거나 전업주부로 살기 위해 자신의 꿈과 직업을 포기한 이전 세대 여성들과 자신이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페미니즘 고전을 다시 읽기 위해 대학으로 돌아간다.
저자는 페미니즘 고전 읽기 수업에 참여하면서 현대의 이십대 여성들과, 자신이 대학생이었던 1990년대, 그리고 그 이전 세대 여성들이 운동을 전개했던 시대를 삼중으로 겹쳐 읽으며 페미니즘이 당대에 제기한 문제들과 이를 수용했던 미국사회의 변화된 맥락, 그리고 여성의 생애과정 속에서 다시 마주하는 고민의 지점들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참정권 투쟁에 헌신했던 1세대 페미니스트들과 섹슈얼리티와 일상, 문화 속의 남성중심성을 고민한 2세대 페미니스트들을 그 여성들이 살았던 당대의 시대상과 관련지어 다시 사유해본다. 그리고 그 이후 변화·발전한 페미니즘 이론의 흐름을 객관적으로 논평하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 고전 읽기 수업의 토론과 자신이 성장하면서 경험하고 느낀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세대별로 변화하는 인식을 전달한다. 전문직 어머니를 둔 아이의 외로움, 모성의 환희와 좌절감, 성개방의 풍조와 결혼에 대한 이중감정, 그리고 슈퍼우먼 콤플렉스라 부를 수 있는 성공과 행복을 동시에 바라는 여성들의 욕망과 이를 좌절시키는 현실, 그리고 차이의 정치학 이후의 레즈비언이즘과 성매매 이슈 등등.
페미니즘을 고전으로 읽기
개인적으로 저자와 비슷한 연령대인 나 역시 페미니즘의 고전들을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며 읽었다. 최근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페미니즘을 가르치며 내가 페미니즘을 공부하던 대학 시절의 기억들을 자주 떠올리게 되었다. 지금의 젊은 친구들은 이 고전들을 어떤 느낌으로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 하며 변화한 시대상황 속에서 이전의 문제의식을 되집어보고 싶은 욕구를 갖게 되었을 즈음 『빨래하는 페미니즘』을 접하게 되었다. 뉴욕에 사는 미국인 페미니스트 친구와 페미니즘에 관해 실컷 토론해본 느낌이랄까.
저자가 조심스럽게 밝히듯이 이 책은 페미니즘 고전에 대한 전문적인 비평이나 개론이 아니라 한 평범한 페미니스트 독자의 독서감상문과 같은 ‘매우 개인적 소회’이다. 돌부리에 채여 넘어진 것 같은 인생의 어느 시기, 사랑과 죄책감, 혼란과 좌절로 자아가 사분오열되는 괴로움의 해독제로서 페미니즘 고전을 선택했다는 것은 페미니스트다운 해법이라 하겠다.
고전을 읽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세대를 거듭해서 많은 이들과 공통의 독서경험을 공유하면서 그 책에 관한 토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수한 학자, 독자들과 함께 고전이 제기하는 당대의 물음을 현대의 질문으로 다시 묻는 작업이자 조용히 후세의 질문을 응답으로 기다리는, 세대를 뛰어넘는 대화에 참여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고전 읽기는 반복해서 읽는 독서경험을 통해 과거에 그 책을 읽었던 시점의 자신과 마주하는 경험을 갖게 한다.
페미니즘은 이른바 정전(canon), 혹은 고전이 어떻게 고전으로 만들어지는가를 비판하면서 사상사나 문학의 전통에 있어 여성이 배제되는 남성중심적 지적 전통에 문제제기를 했다. 이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을 고전으로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여성사 쓰기의 한 작업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페미니즘 고전 읽기에의 초대장이라 할 만하게 훌륭한 독서목록을 포함한다. 많은 사람들과 페미니즘 고전을 다시 읽고 토론하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이상한 제목, 실종되는 저자의 문제제기
마지막으로 책 제목에 관해 논평을 덧붙이고 싶다. 원제 “Reading Women: How the Great Books of Feminism Changed My Life”를 한국어판에선 『빨래하는 페미니즘: 여자의 삶 속에서 다시 만난 페미니즘 고전』으로 번역했다. 부제는 그나마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왜 이런 제목이 붙었을까를 잠시 고민했는데 본문에 ‘페미니스트가 빨래하는 법’이라는 장이 있다. 동거를 막 시작했을 때 ‘빨래’를 비롯하여 가사노동의 분업이 점차 성별적으로 나뉘는 문제를 둘러싼 미묘한 갈등을 다루고 있는 내용인데 역자를 비롯한 편집진이 이 부분을 인상 깊게 여겼나보다 생각하게 되었다. 저자가 강조하고자 한 ‘페미니즘 고전 읽기’를 통한 ‘독서의 권유’라는 맥락이 삭제된 것이 아쉽다.
우리나라에 번역되는 여성학 관련 책 중에는 이같이 대중적인 감성에 호소하느라고 제목이 이상하게 뒤바뀌거나 혹은 저자의 의도와는 정반대 맥락의 대중서로 포장된 책들이 있다. 프리던의 『여성성의 신비화』는 ‘여성의 신비’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는데, 여성다움을 숭배하는 문화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저자의 의도가 번역 제목에서는 모호해졌다, 알리 혹쉴드(Arlie Hochschild)의 『돈 잘버는 여자 밥 잘하는 남자』(아침이슬 2001)는 “The Second Shift”를 번역한 책이다. ‘2교대(The Second Shift)’라는 원제는 맞벌이 가족의 여성이 퇴근 후에 혼자 가사노동의 대부분을 하게 되는 현실을 묘사하며 집이 또다른 일터가 되고 있음을 지적한 용어이다. 제목에 표현된 저자의 문제제기를 삭제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에바 일루즈(Eva Illouz)의 『오프라 윈프리, 위대한 인생』(스마트비즈니스 2006)은 “Oprah Winfrey and the Glamour of Misery: An Essay on Popular Culture”를 번역한 것으로, 오프라 윈프리 프로그램에 대한 분석을 통해 대중문화 속 자기계발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조명한 책이다. 국내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자기계발서로 포장되어 소개되었기에 정작 치유문화에 대한 비판적 관점의 연구자나 독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대중적으로 책이 수용되길 바라는 편집의도가 저자의 문제의식을 훼손하지는 않는 수준이었으면 좋겠다.
정승화 /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2015.6.2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