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공유도시 서울’은 서울시 정책이 될 수 있는가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민과 직접 소통하는 법을 잘 안다. 지난해 6.4지방선거에선 배낭을 메고 걷는 모습이나, 뒷모습이 나온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다. 세월호참사와 함께 공방이 오가는 선거판에서, 마치 ‘정부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지듯 소박하지만 시민다운 행보를 선택했다.
지난 6월 4일 밤 ‘메르스 관련 서울시 긴급기자회견’은 시민과 직접 소통하기 위해 한 발 더 나아갔다. 중앙정부의 지지부진한 대응에 지친 시민에게 호소함으로서 사태의 전격적인 면을 드러냈고, 박시장의 공감능력이 부각되었다. 국민은 박근혜정부가 보여준 소통부재에 지쳤고, 박시장은 당장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 1위에 올랐다. 딱딱한 사회체제나 정치문제에 개개인의 경험과 감성을 불러들인 그의 공감능력이 정치권을 넘어 사회적 논의의 장으로 나아가는 것도 시간문제다.
그러나 감성이 구조적 문제를 건드렸다 해서 현실적 변화가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의 도시정책을 보면 정책의 아이디어와 실현 과정의 괴리가 크다. 가령 기존의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협동조합주택’이란 시대적 언어로 정책화했지만, 정작 박시장 취임 이후 현재까지 공급한 협동조합주택은 총 99호에 불과하다.
구조적 문제의 심각성을 외면한다면 대안적 정책도 나올 수 없다. 박원순 시장이 세월호참사 1주기를 맞아 참석했던 국무회의(5월 6일)를 떠올려보자. 박시장은 세월호특별법시행령의 특조위 구성이 당사자인 공무원 중심인 것을 비판했지만, 정작 제2롯데월드 재개장을 둘러싼 조사비용은 서울시가 아닌 롯데 측이 부담했고, 애초 시공 중인 건물의 임시 사용 문제에 대해서는 별도의 위원회를 구성해서 승인한 바 있다. 제2롯데월드는 아직 건조 중인 초대형 배와 같다는 점에서, 또 인근의 잇단 사고들(석촌호수 물 빠짐, 인근의 씽크홀, 건물의 안전사고 등)에 비춰 세월호를 통해 우리가 통절하게 느끼는 ‘배금주의’나 ‘성장지상주의’ 문제와 다를 게 없다.
시장의 철학과 도시정책은 별개인가
박시장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장이 되고 싶다고 했다. 보궐선거로 시작한 임기 중(2012.4.17.) 지역신문 4개, 공동체라디오 2개와 가진 특별인터뷰에선 “그래서 두가지 원칙을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 우리 공무원이 절대 앞장서거나 이끌지 마라, 시장도 이끄는 자리가 아니라 뒤에서 필요한 일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둘째로는 성과를 내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모든 사업이 성과를 내느라고 형식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2012년 9월 20일 ‘공유도시 서울’ 발표 당시엔 “도시화로 실종된 오랜 전통의 공유문화를 회복해 서울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던 박원순 시장은 2014년 9월 16일 ‘공유도시’를 주제로 한 국제회의에서 “시장이 되니 20조원의 채무가 있었습니다. 하룻밤 자고 나면 21억원의 이자를 내는 거죠. 서울시가 부자인 것 같지만 이런 상황입니다. 기업과 함께해 윈윈이 되고, 중앙정부도 좋고 지방정부도 좋은 이런 것들을 개발하다보니 그중 하나가 공유도시였습니다”로 뉘앙스가 바뀐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 중 재정자립도가 가장 높고 부채 비율이 적은 곳이 서울시다. 서울시의 자산규모나 추후 재정계획, 공공부조리를 줄여 예산 낭비를 막는 등의 정책보다, 막연히 부채를 강조하며 토건사업의 당위를 설파하는 모습으로도 비친다.
지난해 6.4지방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은 ‘국제교류협력지구’(일명 마이스MICE 개발계획) 개발 공약을 발표했다. 충분한 계획 검토 없이 졸속 공약이 발표되면서, 서울시는 강남 한전 부지(총면적 79342㎡) 매각과정에서 주도권 행사를 하지 못했다. 최근 서울시는 한전 부지 용도변경(3종 주거지역 용적률 300%를 상업용지 800%로 변경)에 따른 사전협상제도 운영과정에서 ‘현대차’의 공공기여금을 감정가의 36%인 1조 7천억원으로, 법에서 보장한 토지의 40% 환수에 턱없이 밑도는 가격으로 협상을 개시했다.
또한 서울시는 한전 부지 옆 서울의료원 부지 매각을 7월 중 의회에 상정하겠다고 한다. 역시 국제교류협력지구 계획의 일환으로 배후지 개발을 위해서라는데, 정작 하겠다는 사업 확정도 없이 배후지로 지정한 땅(서울의료원 부지) 매각을 추진하려는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토건사업 방식이다. 개인 땅이라면 지금 매각하겠는가. 토지의 가치를 결정하는 용도변경 절차를 밟고, 서울시의 주장처럼 중심 개발이 완료되는 시점이라면 지금보다 몇배나 더 큰 가치로 매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울의료원 부지와 비슷한 규모의 삼성 아이파크(용적률 300%, 평당 1.5억원)를 고려하거나, 바로 옆 한전 부지(세전 매매가 평당 4억원)의 땅값을 기준으로 해도 지금 팔 이유가 없다. 오히려 박시장의 공유도시가 제대로 된 정책이 되려면 한전 부지는 토지임대부 방식으로 자산은 서울시가 소유하고 필요한 재원은 협동조합 방식의 개발을 통해 조달할 수도 있다.
공유도시는 ‘아름다운가게’에서 아직 ‘서울시 정책’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박시장이 “보유하고 있지만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나 시간, 정보, 공간 등을 필요한 사람과 나누고 공동으로 사용하고 같이 소비하는 것”이라고 정의한 공유도시엔 아직 도시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려는 정치적 민주주의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공유도시는 공공성의 회복과 함께
박시장은 “지역공동체에서 스스로 느끼고 노력하는 자발적 힘, 열정이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시에도 이미 이런 것의 강력한 욕구들이 있다. 생각보다 굉장히 빨리 유기체가 만들어 질 것이라고 본다”(2012.4.17. 특별인터뷰)라고 했다. 그렇다면 공공의 땅을 꼭 팔아야 하는가. 호텔이 필요하면 땅은 서울시가 소유하고, 개발은 채권을 발행하거나 협동조합이 맡고, 시민펀드로 이익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방식이 공유도시의 이상에 한 발 더 가깝지 않겠나.
시장의 평소 주장처럼 개발 이전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협동조합이나 시민의 의견을 중시하고, 공공부지처럼 한정된 토지자원은 매각 일변도의 정책이 아니라 더 나은 대안, 질 좋고 살기 편한 공동체를 위한 방법을 찾아 활용해야 한다. 자신의 철학에 그칠 뿐 정책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민주주의는 어디서 찾겠는가.
김병수 / 집쿱 주택협동조합 추진위원장, 사회적기업 이음 전 대표
2015.6.2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