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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핵발전 중독’ ‘전력 중독’ 사회로 이끄는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이유진

이유진

우리는 매일 전기콘센트를 마주하며 산다. 전기 없이 살기 힘든 것이다. 전기를 생산하려면 발전소와 송·변전 설비가 필요하고 정부는 2년마다 장기 전력계획을 수립해 인프라를 구축한다. 후꾸시마 핵발전소 사고와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운동 이후, 전력계획은 우리 사회에 많은 갈등을 일으키는 아주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지난 8일, 산업통상자원부는 2029년을 목표로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을 발표했다. 전력수요가 매년 2.2%씩 늘어난다고 전망하고, 60조원을 들여 핵발전소 13기, 석탄발전소 20기, LNG 발전소 14기를 더 짓기로 했다. 기존 6차 계획에 비해 핵발전소는 2기를 추가했는데, 장소는 삼척과 영덕 중 한곳을 선택해 2018년 결정하기로 했다. 신고리 7,8호기는 영덕으로 옮겨 건설하기로 했다. 후꾸시마 이후에도 정부는 여전히 핵발전 확대에 집착하고 있다.

 

지상목표가 된 핵발전소 확대

 

그동안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수요를 과도하게 예측해 발전설비 과잉을 불러일으켰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국회예산정책처가 6차 계획을 분석한 결과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를 폐로하고, 송전탑 건설계획이 늦어져도 전력수급에 이상이 없다고 발표할 정도였다. 2014년 전력소비 증가율은 0.6%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7차 계획에서는 연간 2.2%의 증가율을 예상하고 있다.

 

복잡한 경제전망 수치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전력소비가 그렇게 늘어날 이유가 없다. 경제가 저성장 기조에 접어들었고, 최근 철강과 전기로제강 같은 전력다소비업종은 중국에 밀려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따라서 전력소비 증가율이 둔화되고, 이미 6차에서도 과잉설비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7차 계획에서 더이상 핵발전소를 추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됐다. 그러나 정부는 수요를 부풀려 3기가와트(GW) 용량이 필요하다며 핵발전소 2기를 또 추가한 것이다.

 

3GW면 핵발전소 딱 2기 분량이다. 핵발전소는 2기씩 짓기 때문에 3GW에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산업부는 신규 핵발전소를 추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동/하계피크 전망을 역전시켜 숫자조작을 했다. 현재 전기요금이 유류에 비해 싸다보니 겨울철 전기 난방이 늘어나 동계피크가 하계보다 높게 나타났는데, 4~6차 계획에서는 2016년부터 하계피크가 더 높아지는 것으로 예상했다. 2010년대 후반이면 전기를 열원으로 사용할 곳은 이미 전환을 해버려 동계피크 요인이 줄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7차 계획에서는 갑자기 2015년~2029년 매년 동계피크가 하계보다 높은 것으로 설정하고, 동계피크 수치를 끌어올려 필요한 발전설비 용량을 늘렸다. 6차 계획에 따라 동/하계 피크 역전현상이 정상화되면 2029년 필요한 신규설비는 약 1.98GW로서 신규원전 진입이 어렵다. 그런데 7차에서 동계피크 기준을 따르게 되면 2.9GW의 설비가 필요해 핵발전소를 추가 건설할 수 있다. 결국 적절한 근거 없이 동/하계 피크 전망을 바꾼 것은 신규원전 투입을 위한 끼워맞추기식 전망일 가능성이 크다.

 

뜬금없는 전력요금 인하 정책

 

또한, 산업부는 21일 갑자기 여름철 전기요금 인하정책을 발표했다. 하계피크 조절을 위해 절약을 해야 할 시기에 냉방과 산업용 전기를 더 많이 쓰라고 요금을 인하한 것이다. 이것은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올해 전기소비를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력소비 증가율이 주춤하면 과대수요 전망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이것은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연상시킨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사람들을 붙잡아다가 자신의 침대에 뉘여보고 침대 크기에 맞춰 사람의 몸을 잡아당기거나 도끼로 잘랐다. 한국 정부도 프로크루스테스처럼 전력수요 연 2.2% 증가를 설정해놓고, 전기요금을 인하해 전력소비를 늘리는 것이다. 핵발전소 확대라는 목표를 설정해놓고, 정책을 통해 마음대로 조정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피해와 갈등은 국민들의 몫이다.

 

정부는 영덕핵발전소 2기 건설을 확정하고, 삼척과 영덕에 추가 핵발전소 건설을 선택지로 남겨두었다. 영덕핵발전소가 건설되면 주민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또한 주민투표로 핵발전부지 철회를 결정한 삼척 주민들은 3년을 더 싸워야 한다. 핵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송전하는 과정에서 밀양과 같은 사태가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정부가 숫자까지 조작하면서 핵발전소를 확대하는 데는 핵산업계와 이해를 같이하는 관료와 전문가들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핵발전소 1기 짓는 데 3조 5천억원이 든다. 13기면 46조원 규모의 핵산업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에너지정책의 지속가능성이나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보다는 ‘이권’이 먼저다. 그러고 보면 정부가 앞장서서 이권을 위해 데이터를 조작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비용/편익분석 결과를 조작해 추진했던 경인운하, 경제효과를 부풀린 4대강사업 등. 문제는 정책실패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일, 핵발전도 줄이고 온실가스도 줄인다

 

한국의 1인당 전력소비는 일본과 독일, 프랑스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전기를 많이 소비하고 발전소도 많이 짓는다. 전기가 유류보다 싸기 때문에 산업, 상업, 농업, 가정 전반에서 전기로 에너지원을 전환하는 ‘전력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정부의 잘못된 전기요금정책이 ‘전력화’를 이끌었다. 그래서 2014년 산업부는 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전기와 유류에 대한 상대가격 조정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7차 전력수급계획과 연이은 전기요금 인하발표로 정부는 지난해 세운 에너지 정책목표를 스스로 뒤집고 있다.

 

더욱이 산업부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핵발전’을 늘린다고 한다. 핵발전은 기후변화 대안이 될 수 없다. 독일은 2022년 탈핵을 하면서도 에너지 소비는 줄이고, 재생가능에너지를 늘려 온실가스도 줄임으로써 탈핵과 에너지전환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과 독일의 에너지 정책은 정반대의 길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왜곡된 전기요금을 정상화하고 수요를 관리해 발전소를 덜 짓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여름과 겨울이면 피크 관리를 위한 정책을 세워야 한다. 이 정부는 정상적인 정부가 아니다.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원안대로 통과된다면 한국사회는 ‘핵발전 중독사회’와 ‘전력 중독사회’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핵발전’ 맹신에 빠진 박근혜정부, 답이 없다.

 

 

이유진 /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2015.6.2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