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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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재벌의 조직범죄를 줄이려면

 

박창기

박창기

롯데그룹의 신격호(시게미쯔 타께오)와 아들 신동주(시게미쯔 히로유끼) 신동빈(시게미쯔 아끼오) 형제 사이의 야비하고 볼썽사나운 싸움을 보면서 현재 상영 중인 영화 「암살」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1945년 8월 미국 군함 미주리호에서 일본의 외무상 겸 대동아장관이던 시게미쯔 마모루(重光葵)가 항복문서에 서명하기 위해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입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호한다.

 

1930년대 주중 일본제국 대사였던 시게미쯔는 임시정부 독립운동가를 학살하던 일제의 수괴이자 우리 민족의 숙적이었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에서 김구 주석이 지휘한 윤봉길 의사의 폭탄공격에 의해서 한쪽 다리를 잃고 살아남은 시게미쯔는, 일본제국 패망 후 A급 전범으로 토오꾜오전범재판에서 7년형을 받았고 1950년 가석방 후 정치활동을 하던 자다.

 

신격호 회장의 둘째 부인이자 신동주와 신동빈의 친모인 시게미쯔 하쯔꼬가 시게미쯔 마모루의 조카라는 주장이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계열사 70여개에 매출액이 100조원이나 되는 대한민국 5대 재벌 롯데그룹의 주인이 우리 조상을 학살하던 일제 침략 수괴의 가문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설령 시게미쯔 마모루와 무관하다 할지라도 롯데 그룹의 행태는 우리 국민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롯데그룹 사태’에서 주시해야 할 것들

 

시게미쯔 일가가 주인인 롯데리아 햄버거에 칠성사이다를 마시고 롯데껌을 씹고 자란 우리는, 롯데마트에서 롯데카드를 긁어 과일과 백화수복을 사서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크리스피도넛에 클라우드 맥주를 마시면서 롯데하이마트에서 산 티브이를 보며 롯데 자이언츠의 야구에 열광한다. 또한 롯데시네마에서 영화를 본 후 엔젤리너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롯데캐슬 아파트 옆에 있는 바이더웨이에서 산 ‘처음처럼’ 소주를 마시며 애국과 친일을 논하며,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이 제작한 광고에 홀려 롯데아울렛에서 유니클로 옷을 사고, 롯데홈쇼핑에서 산 롯데여행사의 외국여행을 가기 전에 롯데면세점에 들러 면세 마일드세븐을 산다.

 

물론 일본인도 한국에서 자유롭게 기업활동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그 기업이 불법적으로 이권을 탐한다면 국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 롯데그룹의 지네발식이라고 할 만한 70여개 계열사의 사업은 대부분 독과점적인 소비재이면서 이권과 부동산 관련된 사업이라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시게미쯔 가문의 실제 지분은 2.4%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은 416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이용하여 한국민의 돈으로 수많은 기업을 인수합병하고 지배해왔다. 롯데그룹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이고 수많은 한국인 투자자들이 압도적인 대주주이다.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의 주주는 일본롯데홀딩스와 12개의 L투자회사로 99%를 일본인이 소유한 회사다. 호텔롯데의 2014년 매출의 84%인 4조원이 면세점에서 나왔고 매출이익이 무려 1조 5천억원이다. 엄청난 특혜의 면세점을 도대체 어느 공무원과 정치인이 어떤 경로로 허가해주었을까? 독과점 사업에서 인허가와 이권을 따내려면 얼마나 많은 로비와 접대와 뇌물이 오가야 하는지 우리는 잘 안다.

 

신동빈은 한국에 상속세를 전혀 내지 않고 롯데그룹 전체를 상속받으려 하고 있다. 그는 뒤늦게 국적만 한국인으로 바꾸었을 뿐, 군대도 가지 않았고 부인도 아들도 모두 일본인이다. 이런 사람이 떼돈을 버는 면세점 특혜를 받아냈고, 여기서 나온 배당은 전부 일본으로 유출된다. 이로 인해 부족해진 세금을 내야 하는 국민은 이를 용납하기 어렵다. 2015년 말에 관세청이 주관하는 특허심사위원회가 결정할 면허 갱신 심사에서 시게미쯔 가문이 면세점을 다시 가져간다면 엄청난 국민적 저항이 일어날 것이다.

 

더 큰 면세점을 만들기 위해서 지반이 약한 모래땅에 555미터의 123층 건물을 세우고 있는 제2롯데월드에 대한 논란이 많다. 여당마저 반대하던 건축허가를 이명박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어떤 연유인지 김은기 공군 참모총장을 교체하는 무리수를 써가며 2010년에 승인했다. 신격호 일가는 이명박 대통령과 고려대 경영대 동기생인 장경작씨를 롯데 총괄사장으로 임명하여 하수인으로 활용했다고 의심받고 있다.

 

군사공항의 활주로 방향까지 바꾸어서 신격호와 신동빈은 수조원의 땅값 상승 혜택을 얻었지만 송파구의 수많은 주민들은 비행기 소음으로 고통받으며 아파트값 하락에 분노하고 있다. 많은 국민은 이 사건을 보면서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반국가적 행위라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9.11테러의 악몽을 떠올린다. 모래땅에 지은 바벨탑을 연상하며 삼풍백화점의 붕괴를 상기한다.

 

롯데그룹의 이런 방식의 사업전개는 마피아 범죄를 다룬 영화 「대부」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말론 브란도가 연기한 마피아 두목 꼴레오네는 “사업이란 상대방이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시게미쯔는 이명박과 오세훈에게 어떤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는지 궁금하다.

 

건전한 국민경제를 위한 대책마련이 절실한 때

 

많은 재벌들이 관료, 정치인과 결탁하여 반복적으로 저지르는 조직적 범죄행위를 막을 방법은 없을까? 기승을 부리던 마피아와 기업의 조직범죄를 소탕하기 위해 미국은 1970년 리코법(RICO Act)이라는 조직범죄처벌법을 제정하여 1980년대에 마피아를 척결했다. 리코법은 조직범죄집단이나 기업이 부정한 행위로 이익을 얻었을 경우 본인이 그 적법성을 밝히지 못하면 이익을 전부 몰수한다. 범죄조직의 한 사람을 잡아넣어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에, 범죄조직의 조직원으로 소속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범죄로 규정했다. 그리고 강제소환 및 형사적 최고형 구형이라는 강경한 수단을 부여한다. 수사에 협조한 제보자는 철저히 보호하여 내부고발을 장려하고, 범죄로 인해 직접적인 손해를 입은 사람은 3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피해자들에게 소송을 독려했다. 미국은 이 법을 활용해서 기업의 담합범죄, 금융사기, 공무원의 뇌물과 접대 같은 적발이 어려운 조직범죄를 성공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우선은 롯데그룹의 탈법적인 순환출자를 전면 해소하여 비정상을 정상화해야 한다. 또한 제2롯데월드와 면세점 허가과정의 진실을 밝히고 불법이 있었다면 처벌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우리도 리코법 같은 조직범죄처벌법을 제정하여 재벌 회장이 임직원을 동원해 뇌물과 향응과 정치적 압력을 이용해 부당하게 이권을 취하고 담합을 자행하는 범죄행위를 엄벌해야 한다. 그래야만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그리고 CJ의 이재현 회장처럼 수많은 범죄로 형사처벌을 받은 후 대통령의 사면을 구걸하는 처지가 된 사람들이 국민경제의 핵심기업을 경영하는 비극을 막을 수 있다.

 

영화 「암살」에서 잘 표현됐듯이 김구 주석과 의열단장 김원봉 그리고 수많은 선조 독립운동가들이 목숨까지 바쳐 만들고자 했던 대한민국은 ‘정의롭고 함께 잘 사는 독립국가’였다.

 

 

박창기 / (주)에카스 대표, 『혁신하라 한국경제』 저자

2015.8.12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