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김건우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한국 보수세력의 은폐된 기원?
―김건우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느티나무책방 2017
이번 대선 국면에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내건 ‘보수 혁신’의 기치는 여러모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혁신은 언제나 구악(舊惡)을 전제하기 마련, 이번 대선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그 자신의 인격적 결함과 정치적 무능을 노골적으로 전시함으로써 구악의 아이콘으로 등극하는 데 스스럼이 없었다. 선거 기간 홍준표가 ‘우파’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한 데 반해 유승민은 ‘보수’라는 용어를 전면에 내걸었다. ‘보수’가 이념과 가치, 지향의 문제라면 ‘우파’는 세력과 집단의 문제다. 유승민은 의도적으로 ‘우파’라는 용어의 사용을 피하면서 그가 정립하고자 한 새로운 보수의 가치를 낡고 오래된 세력관계에 대립시켰다. 하지만 그가 외친 따뜻하고 정의로운 보수의 가치가 분단의 규정력에 침윤된 강고한 물질성을 내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유승민의 패배는 혁신이 구악을 일소하기보다 구악이 혁신을 삼켜버린 경우가 더 많다는 역사적 경험을 강화시켜주는 하나의 예로 보인다. 하지만 유승민의 출현은 공동체 운영의 원리로서 보수주의가 가질 수 있는 가능성과 방향에 대한 논의의 장을 새롭게 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적지 않다. ‘87년체제’의 극복과 새로운 한국사회 운영의 원리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진보의 재구성을 둘러싼 논의만큼이나 보수의 혁신을 둘러싼 논쟁 역시 앞으로 적지 않은 폭발력을 지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한민국 보수의 또다른 역사
보수의 혁신은 냉전수구세력에게 찬탈당해온 그 자신의 역사를 새롭게 구축하는 과정과도 맞물려 있을 터, 김건우의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학병세대와 한국 우익의 기원』은 그와 관련해서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대한민국 건국 당시 보수세력의 이념과 지향을 드러내주는 흥미로운 저작이다. 부제에 ‘한국 우익의 기원’이라는 말이 달려 있는 이 책은 그러나 우리가 현실정치에서 마주하는 ‘보수 우파’의 계보를 체계적으로 복원하려는 기획의 산물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 저자가 열전(列傳)의 형식으로 소개하는 다양한 인물들은 한국 우파의 엄연한 기원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기보다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노선의 경합 속에서 탈락된 ‘패배자’들의 초상에 더욱 가깝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오직 망각되고 은폐되어 있음으로만 비로소 ‘기원’으로 상상될 수 있는 역설적인 형상들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설계하고 만든 사람들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저자는 “대한민국을 처음 설계한 이들이 기획한 ‘현대 한국의 상’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분리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었다”라면서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이분법을 겨냥한다. 그리고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공유하는 역사적 뿌리에 주목한다. 이러한 공유지대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현재 운위되는 ‘보수’와 ‘진보’의 구분에 포착되지 않는 비결정의 지대가 가시화된다. “오늘날 상당수 사람들의 통념이기도 한, 진보와 좌파, 보수와 우파를 동일시하는 생각은 근거가 있는 것일까. 한국사회의 진보진영은 모두 좌파인가, 같은 맥락에서 우파는 다 보수 진영에 속하는가. (…) 1960~1970년대에 걸친 한국의 산업화 시대에, 정부 정책을 주도한 사람들이나 민주화 진영에서 저항했던 사람들이나 모두 이념적으로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가지들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가.” 듣기에 따라 오해를 사기에 충분한 말이다. 독재정권에 저항한 민주화 세력의 ‘순수성’을 문제 삼는 발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발독재를 이끈 사람들과 이에 저항한 민주화 세력이 공유한다는 ‘하나의 이념적 뿌리’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통합적 근대화론’을 주창했던 ‘우익 민족주의’다. ‘통합적 근대화론’이란 박정희정권에 의해 전유된 (경제적) 근대화와는 다르게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포괄하는 총체적인 근대화를 추구했던 일련의 사상적 흐름을 일컫는다. ‘우익 민족주의’는 이 흐름을 이끌었던 사람들이 지니고 있었던 이념이었다. 저자는 대한민국의 건설을 그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안았던 일군의 사람들을 통해 그 지향점을 발굴해낸다. 그런데 당시 새로운 국가 건설의 주체를 자임했던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저자는 일제 말 고등교육을 받은, “위로 1917년생부터 아래로 1923년생까지 1920년을 전후해 약 6~7년에 걸쳐 태어”난 학병세대에 주목한다.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이자 친일의 죄과로부터 자유로운 청년층이었던 이들의 상당수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으며 종교적 박해를 피해 월남한 사람들이기도 하다(이들 대다수는 서북지방 출신이다). 장준하와 김준엽, 서영훈과 김성한 등 『사상계』의 창간과 발행을 이끈 이들, 남쪽 출신이지만 이들과 긴밀하게 교류했던 류달영과, 이들보다 세대는 조금 위지만 학병세대에게 큰 영향을 끼친 류영모와 함석헌, 김재준과 같은 종교 사상가들이 대한민국의 설계자이자 한국적 우파의 기원으로 소개된다. 물론 ‘설계자들’ 사이의 편차 역시 적지 않다. 장준하를 위시한 『사상계』 그룹이 미국식 근대화론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다면, ‘동양의 덴마크’를 꿈꾼 류달영같이 국가주의적 사고를 거부하고 조합주의운동에 뛰어든 이도 있었다. 특유의 정신주의에 입각해 박종홍 식의 국민윤리를 비판했던 함석헌과 류영모의 길은 국가 차원에서 새로운 근대화의 비전을 제시하고자 했던 일군의 ‘엘리트’들과는 그 결을 달리하는 것이기도 했다.
“오늘날의 우익은 오염된 이름이다”
장면 정부 시절 국토건설본부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장준하와 『사상계』 그룹 지식인들의 행적을 소개하는 부분은 대한민국 건국 당시 근대화를 두고 경합하는 노선들이 존재했음을 우리에게 일러준다. 박정희가 대한민국 건설의 아이콘이 된 지금, 박정희의 등장 이전부터 일단의 우익 민족주의 세력에 의해 통합적 근대화의 이념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강조하는 것은 대한민국 근대화의 역사를 다채롭게 이해하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대한민국 국가 건설에 적극적으로 투신한 일군의 학병세대 엘리트들이라기보다는 그 ‘국가’를 끊임없이 상대화하면서 새로운 공동체를 열어가기 위해 분투했던 이들의 흔적이다. 재건국민운동본부를 이끌었던 류달영과 홍성에 풀무 공동체를 설립한 이찬갑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김교신의 무교회주의의 영향 아래 진행된 이 시도들은 비록 처음 꿈꾸었던 완전한 이상에 다가서지는 못했으나 자립적인 공동체의 건설을 통해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원대한 포부 아래 수행된 실험이었다. 이러한 시도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의지가 어느 특정 정치진영만의 것일 수 없다는 점을 우리에게 일러준다.
저자는 책 제목을 이렇게 단 이유에 대해 “오늘날 우익의 이름은 ‘오염된’ 것이며, 한국 현대사에서 우익에 속하는 인물들의 사유와 업적이 무엇인지 명확히 함으로써 우익의 원래 성격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였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현재 한국사회에서 ‘우파’의 이념은 ‘국가주의’와 ‘자유경제 지상주의’라는 서로 모순되는 가치가 뒤틀린 채 얽혀 있다. 거기에 냉전적 적대의식과 특정 지역 혐오의식마저 더해져 쉽게 그 가치의 긍정성을 주장할 수 없는 형편이다. ‘오염’의 역사를 정확하게 추적한다고 해서 저절로 ‘정화’될 리는 없겠지만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가진 ‘보수 우파’의 역사적 자산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보수의 혁신을 둘러싼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공급받을 수 있으리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한영인 / 문학평론가
2017.5.2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