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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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대학의 적폐청산, 재정지원 편중 해소가 관건이다

윤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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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대통령의 소통 행보와 개혁방향을 시사하는 인사, 그리고 국정교과서 폐지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지시처럼 지난 정부의 잘못을 시정하는 조치 등이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다. 정권교체 자체가 촛불항쟁의 결과라는 점에서도 새 정부는 변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구현해야 할 책무를 진 셈이다. 그러나 당장 실현 가능한 시정조치들을 넘어서 기득권구조를 해체하는 작업과 이어지는 순간 적폐청산의 도정도 험로에 들어설 것이 예상된다. 야당과의 협치가 불가피한 정치여건도 여건이지만, 우선 적폐를 무엇으로 규정하고 어디까지 청산할 것인지부터가 불투명하다.

 

대학 문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학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교육분야만이 아니라 사회의 요구이기도 하다. 촛불항쟁의 계기 중 하나가 이화여대 사태였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대사태는 직접적으로는 정부의 평생교육단과대학 재정지원사업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근본에는 재정지원을 미끼로 한 정부의 대학통제라는 ‘적폐’가 깔려 있다. 대학들은 상호경쟁에 휘말려 대학의 본령을 상실했으며 이대사태는 그 징후라고 할 수 있다. 또 대학 내외의 비민주적 풍토는 청년세대인 학생들의 삶을 옥죄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증폭시켰다.

 

불평등한 서열구조, 대학의 최대 적폐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대학개혁을 위해서도 적폐청산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적폐를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개혁의 방향과 정도도 달라진다. 가령 지난 정부의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국립대의 경우 총장선거에 대한 정부개입, 사립대의 경우 사학분규였다. 새 정부에서 대학의 자율적인 총장선출권을 보장하고 비리사학을 엄단하는 것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과거처럼 교수들만의 총장직선제를 복원한다 해서 적폐청산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의 거버넌스를 올바로 구축하려면 교수만이 아니라 학생과 직원 및 비정규직 교수까지 포함한 대학구성 주체들의 참여가 확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학 문제도 마찬가지다. 비리사학을 정리하더라도 모든 사학에 구조화된 병폐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적폐청산의 목표가 사회의 불평등을 개혁하자는 데 있다면 대학정책도 마땅히 불평등구조 해소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현재 대학은 민주시민을 길러냄으로써 사회통합과 민주주의에 기여한다는 본래의 사명에서 너무나 멀어져 있다. 오히려 사회의 불평등구조를 반영할 뿐 아니라 확대재생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비판이 비등하다. 지난 10여년에 걸쳐 상위서열의 대학일수록 상위계층 출신 학생의 입학 비율이 현저하게 높아졌다. 서울대의 경우 올해 특목고 및 자사고, 서울 강남3구 출신이 전체 입학생의 거의 절반에 이른다.

 

학부모의 70프로 이상이 교육의 가장 큰 현안으로 서열화 해소를 꼽은 한 설문조사(전교조)에서도 보이듯, 서열구조 해소는 국민적 요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십수년간 서열화가 완화되기는커녕 악화일로를 걸어온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서열에 입각한 정부의 차별적인 재정지원정책과 이에 상응하는 대학 내외의 기득권 구조에 기인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서열화의 원인을 사회에 만연한 일류병과 학벌주의에 돌리는 시각도 많지만 이는 본말을 전도한 것이다.

 

정부의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지원이 철저하게 상위대 중심으로 이루어져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학의 가장 긴박한 현안인 대학구조조정 정책만 보아도 이는 확연하다. 교육부는 구조조정을 재정지원과 연계하여 추진하면서 대학들을 일률 평가하여 상위대학에는 정원감축을 면제하고 재정지원을 집중시키는 반면 하위대학에는 정원감축을 강요하고 재정지원을 제한해왔다. 좋은 대학은 키우고 나쁜 대학은 도태시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이는 국고가 상위계층 학생들이 주로 재학하는 상위대에 편중되는 결과를 빚는다. 반면 주로 중하위층 학생들이 다니는 지방사립대 및 전문대에 구조조정의 피해가 쏠리게 된다. 이를테면 상위 10개 대학이 사립대 재정지원 전체 예산의 46프로를 독점하고 있다. 이같은 재정지원 방식이 사회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결과를 빚고 있음에도 상위대학 내부에서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물론 문제의식조차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상위대 중심의 기득권구조가 그만큼 공고한 탓이다.

 

서열화 해소를 목적으로 국립대 통합을 주창해온 진보학계의 대응도 역설적으로 서열구조에 따른 발상을 벗어나지 못한 점은 지적할 필요가 있다. 서열화와 학벌주의 해결을 핵심의제로 삼게 되면 일류대 중심의 서열구조와는 무관한 대다수 학생들이 정책의 고려 범위에서 벗어난다. 대학생의 38프로에 달하는 전문대 재학생들과 애초부터 일류대 입학을 포기하고 지방사립대를 선택하는 대다수 4년제 지망학생들이 그러하다. 서열구조의 형성 자체가 국가적으로 전문기술교육체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탓이라는 사실은 도외시된다. 국립대 통합을 통해 일정한 평준화를 이루고 국립대를 새로운 일류대학으로 만들자는 구상은 장기적으로 필요하지만, 여기에 정부의 재정지원 편중이나 대학 내부의 기득권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은 보이지 않는다.

 

대학 재정지원, 더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

 

나아가서 재정지원의 편중이 대학의 불평등구조를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지원에 따른 소기의 성과조차 산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짚어야 한다. 정부 재정지원이 집중되고 있는 상위대는 그에 걸맞은 기능을 하고 있는가? 국제환경에서 국가의 대학경쟁력은 그 사회의 학문수준을 보여주는 연구대학들의 경쟁력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한국의 세칭 일류대들은 서열구조에 안주하여 상위성적의 상위계층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으로 행세할 뿐 정작 대학원은 거의 공동화되어 있다. 연구중심을 표방하고 BK, HK 등 정부의 대학원 지원을 독점하면서도 서울대까지 포함하여 외국 특히 미국 대학에 학생들을 보내기 위한 피더스쿨(feeder school)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대미종속적인 학계구조야말로 대학이 해결해야 할 가장 심각한 적폐 가운데 하나다.

 

4년제 상위대에 대한 재정지원 편중을 해소하는 대신 전문대 지원을 강화하여 대다수 전문대를 국공립화하고 기술교육은 국가가 책임지는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구조조정이 집중되는 중하위권 사립대들을 공영화하는 데 재정이 투입되어야 하며, 연구중심 대학은 비대한 학부정원을 대폭 줄이고 학문재생산이 가능한 대학원을 형성하도록 구조조정을 유도해야 한다. 재정지원 배분 방식이 변하면 기득권 구조와의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나 이를 극복해야만 비로소 한국 대학도 주체적 학문역량을 가진 기관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윤지관 / 덕성여대 교수, 한국대학학회 회장

2017.6.1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