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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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김동진 『조선의 생태환경사』

한 발 더 디딜 용기, 한 발 덜 디딜 용기
―김동진 『조선의 생태환경사』, 푸른역사 2017

 

jrtrtj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은 소재가 매우 다양하다. 기록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사서에는 국왕의 말과 행동이 매우 꼼꼼하게 담겨 있고, 민간의 문집들도 풍부하게 남아 있어 여항의 생활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일도 다른 시대와 비교하면 어렵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풍성한 기록들은 서사라는 실로 꿰어야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현대인이 조선시대 왕의 언행에 대한 기록을 보면서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당대에 그 기록을 남긴 이가 “임금은 이렇게 나라를 다스리셨다”라는 서사의 뼈대 위에 낱낱의 정보들을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반면 양은 풍부하지만 시대를 뛰어넘어 현대인에게는 별다른 울림을 주지 못하는 기록들도 있다. 그 자료들을 아우를 수 있는 큰 서사가 없어서, 꿰지 않은 구슬로 남아 있는 탓이다.

 

조선시대의 자연에 대한 자료는 그 “꿰지 못한 구슬”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인물의 용모나 옷차림이나 병기 등은 옛날 사극에 비해 요즘 사극에서 한층 정교하고 다채롭게 바뀌었지만, 사랑채 문을 열면 보이는 들판에는 어떤 동물들이 노닐고, 뒷산에는 어떤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지 등에 대한 묘사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아니, 달라진 게 있는지 없는지도 우리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사실 16세기의 자연과 21세기의 자연이 다르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건만, 우리는 거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일이 없다.

 

실은 당대의 사람들에게도 자연은 인간이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배경으로서 의미를 가졌을 뿐이다. 동물의 역사, 식물의 역사, 경관의 역사 등 자연 그 자체를 주제로 역사적 서사를 쌓아나간다는 것은 지금 듣기에도 자못 새로운 작업이다. 하물며 당시에 기록을 남긴 이들이 다양한 자연현상에 대한 기록만 남기고 그것들을 담아낼 수 있는 서사를 함께 남기지 않았다고 원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역사 안에 자연의 자리를 마련해주는 작업의 어려움

 

서사를 염두에 두고 남긴 기록에 비해, 그런 생각 없이 남긴 기록은 후대의 사람들이 다루기도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의 자연현상이나 동식물에 대한 기록이 분량으로는 상당히 많지만 여태껏 일목요연한 서사로 엮이지 않은 것은, 기록이 많은 만큼이나 기록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빈틈도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대의 기상관측 데이터는 현재의 기록을 날마다 쌓아 올림으로써 미래의 기상을 예측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이에 비해 역사 속의 기상현상에 대한 기록은 현대의 기상학과 같은 공통의 이론적 기반이 없이 기록자가 임의로 선택한 것들이며, 그러다보니 특별한 “변고”가 있을 때 기록이 더 많이 남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사료 속의 기상현상에 대한 기록을 오늘날의 기상관측 자료와 동등하게 인식하고 취급하다보면 과거에 대한 인식이 왜곡될 우려가 있다.

 

이런 점에서, 자연현상에 대한 사료의 기록을 재료 삼아 서사를 구축해나가는 작업은 양각 판화를 만드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자료는 많지만 그것들만으로는 서사가 뚜렷이 부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판화로 찍히지 않을 부분을 다 깎아내고 나면 그림이 드러나듯이, 기록들을 토대로 외삽, 추측, 유추 등 다양한 기술을 동원하면 후대의 연구자가 구축하고자 하는 서사가 간접적으로 드러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동진의 『조선의 생태환경사』는 그 어려운 과제에 도전한 책으로서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사료 속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자연현상에 대한 방대한 기록들을 망라하고 그것을 주제에 따라 정리하여, 인간만 등장하는 조선사를 넘어서 인간과 자연이 상호작용하는 조선사를 쓰고자 하였다.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이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새로 쓰는 것은 다들 이론적인 수준에서는 동의하는 과업이었지만, 앞서 말한 것과 비슷한 이유들로 실제로는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일이었다. 비록 오늘날 많은 사료들이 전산화되어 있다 해도, 산재해 있던 기록들을 망라하여 주제에 따라 분류하고 거기에 저자의 해석을 붙이는 작업은 오랜 시간과 엄청난 끈기가 필요한 일이다. 저자는 이 작업을 해내고 본인의 해석을 강하게 덧붙임으로써 흥미로운 한권의 책을 만들어냈다. 이 책은 국내에서 이러한 방향으로는 거의 최초의 시도라 할 수 있으므로 앞으로도 오랜 기간 주목을 받고 여러 방향의 후속연구를 촉발시킬 것이다.

 

단정보다 유보가 호소력이 강할 때도 있다

 

일관된 서사를 염두에 두지 않고 남긴 자료들을 바탕으로 일관된 서사를 만들어야 했던 저자의 고심은 책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조선에 표범이 몇마리나 있었을까”를 추리하기 위해 저자는 표범의 포획 기록을 조사하고, 표범의 일반적인 번식률을 고려할 때 매년 그 정도의 포획 규모를 유지하려면 전체 표범 집단의 크기가 어느 정도 되어야 하는가 역으로 추산해나간다. 이러한 추론방식은 “조선에서 소를 몇마리나 길렀을까” 또는 “말을 몇마리나 길렀을까” 등 비슷한 여러가지 질문에 대해서도 거의 똑같이 적용된다. 동물의 사육 또는 서식 규모에 대해 당대에 남긴 기록이 없으므로, 소비라는 최종단계의 기록을 단서 삼아 이렇게 거꾸로 추리해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저자의 고심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식의 추리는 아슬아슬해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사료로 직접 밝힐 수 없는 것을 간접적으로 우회 추리하려면 여러 단계의 논리를 연쇄적으로 맞물려야 하는데, 이 사슬의 고리 가운데 저자가 임의로 만들어 넣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위의 추리에서 “표범의 일반적인 번식률” 같은 것은 현대 생물학에서 널리 인정되는 수치를 빌려다 쓴 것이므로 나름대로 근거를 갖고 있다. 아마 조선시대 표범의 번식률도 그와 비슷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 생물학에서 인정하는 표범의 일반적인 번식률을 조선시대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아무도 확실한 답을 줄 수는 없다.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근대 과학의 기본적인 격률 중 하나는, 알 수 없는 것은 알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제거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면, 하나의 해석을 단정적으로 주장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데서 멈추는 것이 오히려 독자의 신뢰를 얻고 궁극적으로는 설득력을 높이는 전략이 될 수도 있다. 임의의 가정을 벽돌 삼아서라도 논리의 탑을 높이 쌓아 올리는 데에만 치중하다보면, 자칫 탑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의구심을 독자들에게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책 후반부의 감염병에 대한 추론은 저자가 가장 공을 들인 부분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로서는 가장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옛 이름으로 적힌 병을 오늘날의 질병 이름과 대응시키고 그것이 창궐한 원인을 추측하는 연쇄 추론이 성립하려면 여러개의 고리를 만들어 넣을 수밖에 없다. 가장 기초적인 문제, 즉 이 책에서 다루는 병의 정체가 무엇인가부터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한자로 표현한 병의 이름이 오늘날과 같이 특정한 질병에 1대1로 대응하는 것인지, 아니면 증상을 묘사하는 것인지조차 분명치 않다. 사실 이것은 고고해부학을 통한 비교 연구 등 다른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 문헌 연구와 추리만으로는 밝힐 수 없는 의문이다.

 

또한 상관관계(correlation)와 인과관계(causation)를 혼동하는 문제도 피해가기 어렵다. 옛 기록들을 그러모아 감염병이 늘어나거나 줄어든 원인을 설명하려 해도, 거기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상관관계이지 인과관계는 아니다. 통계학에서 흔히 지적하는 오류, 즉 “해적의 숫자가 줄어들자 지구온난화가 심해졌다”는 인과적 해석을 피하기 위해서는 역시 기록의 분석만이 아니라 다른 전문지식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과학자의 영역으로 여겨 미뤄두었던 자연의 과거 모습에 대해서도 역사가들이 용기 있게 뛰어든 선구적 시도라는 점에서 이 책은 여전히 의미가 크다. 한계라고 지적한 것들도 실은 이 책의 기여일 수 있다. 이런 접근을 시도하지 않았다면 어디서 한계에 부딪치게 될지도 애초에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여러 영역에서 더 많은 도전을 통해 더 많은 문제점과 한계를 드러낼 필요가 있다. 지식의 변경은 부딪쳐 확인한 다음에야 넘어서고 넓힐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태호 /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

2017.6.2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