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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역사의 감옥: 황석영 자전 『수인』을 읽고

정홍수

정홍수

고등학교 때 삼중당문고로 황석영 소설을 처음 접했던 것 같다. 『삼포 가는 길』이었을 거다. 누렇게 바랜 채 바스러지던 그 문고본 책은 끝내 버리지 못한 내 책 짐 가운데 하나였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그 시절, 갑자기 돌아갈 곳을 잃은 떠돌이 노동자 정씨와 영달의 헛헛한 처지가 왜 그리도 가슴이 아팠던 것일까. 당시 방영된 ‘TV문학관’의 영향도 컸지 싶다. 백화 역의 차화연을 비롯해 문오장과 안병경이 만들어낸 겨울 눈길의 영상은 그 아슴아슴한 지명, 삼포의 이미지를 오랫동안 실제의 이야기로 환치해놓기도 했다. 아무튼 그 무렵 황석영 소설을 읽는 일은 입시생의 얄팍한 시간을 벗어나 세상의 거친 표면과 부대끼는 느낌을 주었고 성장의 허세 같은 것을 품게 만들었다. 나중에 루카치가 소설을 일컬어 ‘남성적 성숙의 형식’이라는 말을 한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진의야 모호한 대로 내가 처음 떠올린 것은 황석영 소설이었을 거다. 그리고 그것은 흑백사진 속의 짧게 깎은 머리, 검게 그을고 각진 남성적 용모가 불러일으킨 황석영이라는 작가 개인의 완강한 이미지이기도 했다. 노동이나 혁명 같은 말이 절로 떠오르는 근육의 형상 같은 것. 그러니까 그것은 그전까지 내가 통상적으로 소설가에 대해 품어온 어떤 이미지와 결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80년대 초반 광주의 진실을 두고 전두환 독재정권과의 전면적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때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목소리 중의 하나가 작가 황석영의 그것이었던 것도 그러고 보면 이상한 일은 아니었을 테다. 불이 붙은 남포를 입에 문 채 “꼭 내일이 아니라도 좋다”고 “텅 비어버린 듯한 마음”으로 다짐하던 「객지」의 건설 노동자 동혁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전태일이 점화한 70년대 노동운동과 민주화투쟁의 새로운 국면에서 황석영이 「객지」 「한씨 연대기」 「삼포 가는 길」 「돼지꿈」 등 일련의 작품으로 그려내고 포착한 민중 현실의 생생한 모습과 포괄적 인간 진실의 힘은 문학의 울타리를 넘어 저항과 변혁의 은밀한 심지가 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80년대 초 그 급박한 시절에 그는 어디에 있었는가.

 

1980년 광주에서 시작된 긴 여행의 기록

 

황석영의 자전 『수인』(전2권, 문학동네 2017)은 내게는 꼭 그 질문에 대한 응답처럼도 보인다. 『수인』은 1989년의 방북 이후 오랜 해외 망명 생활을 거쳐 1993년 4월 귀국과 함께 공항에서 체포되어 안기부의 심문을 받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7년 형기를 얼마 남기지 않고 1998년 3월 특별사면 형식으로 석방되는 장면에서 끝난다.

 

“―자아, 여기서부터 속세입니다. 나가서 잘 사세요.
나는 목례를 하고 문을 나섰다. (…) 나는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에게 ‘1980년 광주항쟁 이후 떠났던 긴 여행을 끝낸 느낌’이라고 말했다.”(2권 435면)

 

1976년 해남으로 내려가 소설을 쓰는 한편으로 ‘사랑방 농민학교’를 열어 현장 문화운동에도 힘을 쏟던 황석영은 두해 뒤 문화패 ‘광대’와 ‘민중문화연구소’를 설립하며 광주로 이주한다. 1980년 5월 ‘광대’의 소극장 창립 공연으로 「한씨 연대기」를 준비하던 중 5월 16일 잠시 상경한 작가는 서울에서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와 광주의 대규모 시위 소식을 접하게 된다. 작가는 서울에서 은신하며 광주의 투쟁과 참상을 알리려 애쓰고, 항쟁 이후 제주 체류를 거쳐 다시 광주에서 항쟁의 진실을 알리는 다양한 활동을 조직한다. 그러나 광주항쟁 당시 공교롭게 현장에 없었다는 부채의식은 계속 남아 있었고, 1984년 말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될 항쟁 기록물의 출판에 공식 저자로 이름을 올리고 예상되는 권력의 탄압을 감수하는 방식으로 작가의 소임을 다하기로 한다. 1985년 4월 중순 그가 기록물 원고를 챙겨들고 서울로 향하는 대목은 당시 그 자신의 뜻과 계획이 어떠했든, 이후 역사의 파란과 맞물리며 방북과 망명으로 이어지는 긴 여정의 출발점이 된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런 그녀를 위로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보다는 부담스러워했는데,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과 중요한 순간에 가족들 곁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가책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늘 떠나는 데 익숙해 있었다.
서울행 밤기차가 광주를 벗어나 어둠 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돌아오지 못할 기약 없는 긴 여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2권 402면)

 

문학과 삶의 일치를 향한 열망

 

『수인』에서 작가는 시종 ‘사회봉사에 대한 열망’이라는 표현으로 그 무게를 덜어내려 하고 있지만, 월남전 제대 직후 신춘문예에 단편 「탑」이 당선되며 문학의 길로 복귀한 뒤 보여준 왕성한 창작활동 못지않게 역사와 세상에 대한 그의 쉼 없는 참여의 몸짓은 정말 놀라운 바가 있다. 이번 자전을 읽어보면 중고등학교 시절 예비 문사로 이름을 떨칠 때부터 홀어머니의 근심을 산 그의 출분과 방랑, 일탈은 일종의 본능적 기질이 아니었나 생각될 정도인데, 그 자신의 술회대로 이것이 “나중에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면서 글쓰기와 사는 일이 일치되었으면 하는 열망으로 발전했”(2권 10면)던 건 한국문학의 축복이었을 것이다.

 

그는 먼저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가서 살고, 그리고 그 살아낸 시간으로 썼다. 청년기의 자폐와 방황, 월남전 참전까지의 긴 시간이 일종의 잠복기를 이룬 뒤 70년대 한국 현실과의 맹렬한 부대낌 속에서 폭발적이고 경이로운 작품 산출로 이어졌다면, 80년대는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과 함께 또 한번 문학을 밀쳐두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 시간으로 그를 뒤흔든 것 같다. 그것이 그의 ‘일치’의 방식이었을까. 방북과 망명, 투옥의 긴 문학적 공백기 이후,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여울물 소리』 등이 다시 한번 화산처럼 터져나왔음을 우리는 안다. 그러긴 해도 이런 과정이 순탄하거나 원만했을 리가 없고, 작가 개인과 주변에 숱한 회한과 상처로 남았음은 『수인』의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전 『수인』은 무엇보다 탁월한 증언의 문학이다. 방북 중 이층 창문으로 모란봉 언덕이 바라보이던 어린 시절 옛집 동네를 찾은 대목에서 작가의 기억은 믿을 수 없이 생생하게 아버지와 함께 다리쉬임을 하던 작은 바위를 찾아낸다. 일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던 칠성문 부근의 전차 종점이며 을밀대의 과자 행상까지, 사십여년의 세월을 건너 작가의 기억을 타고 분단의 땅 저 너머의 장소가 주는 현실감이 기적처럼 살아서 다가온다. 피난 생활을 포함해서 6·25 전후 작가가 성장기를 보낸 영등포 일대의 풍경과 살림살이 역시 너무도 핍진하다. 김일성의 육성은 마치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재현되어 있다. 박태원, 이기영 등 월북 작가의 가족을 만난 이야기도 문학사의 소중한 증언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만난 숱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전’의 개인사를 사회사로, 생활사로, 민중사로 엮고 쌓아간다. 4·19 때 죽은 동급생 친구를 포함해 그 만남은 또한 많은 죽음의 기억을 포함하고 있는바, ‘자전’을 살아남은 자의 회한으로 채우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서 ‘자전’의 시간들은 결국 ‘황석영 문학’이라는 거대한 궤적으로 수렴된다.

 

자유의 갈망, 그리고 문학과 역사의 감옥

 

황석영은 떠나고 또 떠난다. 어머니로부터, 가족으로부터, 문학으로부터. 늘 그가 서 있고 도달한 곳으로부터. 그의 집요한 역사 참여조차 역사로부터 떠나고 역사의 짐을 벗기 위한 몸짓으로 보일 정도다. 그러나 그 자신 술회하는 대로 그가 갈망했던 자유는 그가 나고 자란 분단된 한반도의 시간과 역사 안에서 “얼마나 위태로운 것”이었나. 어머니는, 가족은, 문학은 또 어땠을까. 월남전 파병을 앞둔 포항 특교대 훈련장으로 면회 온 어머니를 훈련 나가는 트럭 위에서 우연히 상봉한 이야기를 들려준 뒤, 작가는 말한다.

 

“눈시울이 화끈했다. 어머니에게는 이 변변찮은 아들이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룰 때까지, 이를테면 내가 당신의 연인이었던 셈이다. 그녀는 고해와 같은 세상 속으로 내던져진 나를 찾아서 곳곳을 헤매고 다녔다. 아무런 힘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은 때도 그녀는 언제나 어느 곳에나 나를 찾아서 먼 길을 오곤 했다. 나날이 늙어가는 어머니의 좁은 어깨를 보면서 나는 돌아서서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자신을 욕하곤 했다. 에라 이 몹쓸 놈아.”(2권 185~86면)

 

그러니 도대체 문학은, 역사는 무엇이란 말인가. 황석영의 자전 『수인』은 무엇보다 깊은 개인적 회한의 기록이며, 그런 한에서야 문학과 역사를 향해 뛰어들 수 있었던 어떤 세대, 어떤 개인의 착잡하고 슬픈 시간의 기록일 것이다. 문학과 행동으로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을 가로지른 담대한 열정, 그 거대한 걸음에 대한 감동과 경의를 잠시 눅여두고 싶은 것도 그 때문이리라.

 

정홍수 / 문학평론가

2017.7.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