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애슈턴 애플화이트 『나는 에이지즘에 반대한다』
에이지즘, 무엇이 문제고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애슈턴 애플화이트 『나는 에이지즘에 반대한다』, 시공사 2016
이 의자는 흔들린다
미국 자연사박물관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주제로 글을 쓰고 있는 애슈턴 애플화이트(Ashton Applewhite)의 신간 『나는 에이지즘에 반대한다』(이은진 옮김)의 원제는 ‘이 의자는 흔들린다’(This Chair Rocks)이다. 이는 그녀가 운영하는 블로그 이름이기도 하다(www.thischairrocks.com). 이러한 제목을 선택한 이유를 저자 자신이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흔들의자’(rocking chair)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차용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미국사회에서 흔들의자는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는 노인들의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일례로, 베스트소설 작가이자 목사로 활동했던 존 이조(John Izzo)는 235명의 지혜로운 인생선배들에게 어떻게 하면 의미있게 살다가 행복하게 죽을 수 있는지 묻고 그 대답을 정리한 책 『오늘은 세상에 이별하기 좋은 날』(The Five Secrets You must Discover Before You Die)을 출간한 바 있다. 이 책에서 이조는 마가렛이라는 중년여성의 사례를 소개한다. 마가렛은 “현관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노인”과 같은 마음으로 살려 한다고 고백한다. 결정한 일이 있을 때마다 흔들의자에 앉아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는 노인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 노인에게 어떤 길을 선택해야 후회가 없을지 조언을 구한다는 것이다. 즉 흔들의자는 기력은 다소 떨어졌지만,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는 지혜롭고도 따스한 눈을 가진 백발의 노인을 연상시키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애슈턴 애플화이트는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지혜로운 노인의 이미지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한다. 저자는 노인이면 지혜를 갖추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풍조를 경계하고, 흔들의자에 앉아 있기보다는 이런저런 권리를 주장하며 소란을 피우자고 주장한다. 지혜롭고 온화한 노인의 이미지에 갇혀 있기보다는 노인들이 무언가를 배우거나 느끼기에 너무 늙었다는 억측을 반박하자고 주장한다. 이 책의 영문판 부제는 ‘반(反)에이지즘 선언’(A Manifesto Against Ageism)이기도 하다. 즉, 저자는 노인들에게 자기 스스로 내면화하고 있는 연령차별에 맞서라고 주문하며, 이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행동지침을 제시한다. 그리하여 이 책을 모두 읽고 나면, 독자들은 아마도 흔들의자에서 박차고 일어나 다양한 경험을 찾아 떠나는, 보다 활기찬 나이 든 시민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에이지즘에 반대한다
에이지즘(연령차별)이라는 용어는 1969년에 로버트 닐 버틀러(Robert Neil Butler)가 처음 사용했다. 연령주의는 사회의 기회와 자원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특정한 연령집단이 의도적으로 배제되는 현상으로, 성차별주의나 인종차별주의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고정관념이다. 총 9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연령차별이 왜 문제가 있는지, 일반적인 고정관념과 달리 나이 들어가는 일이 얼마나 우리의 인생을 풍부하게 만드는지, 쇠퇴해가는 인지기능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를 비롯하여 건강, 성생활, 노동의 문제를 다룬다. 또한, 고립되어 있기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필요한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각각 다루며, 각 장의 말미에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제목의 챕터를 별도로 구성해 구체적인 행동지침 역시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자칫 중년을 최대한 연장하고 노년을 부정하는 미국식 연령주의를 다른 방식으로 강화시키는 지침서로 보일 수도 있다. 필자 역시 처음에는 그러한 의심을 가지고 책을 읽어나갔다. 그런데 이러한 오독의 가능성을 의식한 듯 첫 장에서 저자는 연령차별이 왜 문제인가에 대해 다소 급진적인 비판적 노년학(Critical Gerontology) 연구들을 다수 소개하고 있다. 인구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미래가 황폐하게 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들은 인구통계의 탈을 쓴 윤리 문제나 이념 문제일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경기가 침체한 원인 역시 노인들이 많아서가 아니라, 세계 금융시스템을 위협하는 ‘독성’ 부채의 누적과 실질임금의 정체, 청년실업률의 고조, 사회기반시설의 붕괴 및 극소수에게 부가 집중되어 있는 상황 때문이라고 통렬하게 비판한다. 사회보장기금과 메디케어기금이 바닥난 이유 역시 의료시스템이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많은 노인들은 젊은이들에게 의지해서 살아가기보다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해서 일을 놓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젊은 세대들을 부양하고 돕는 역할을 맡고 있다. 따라서 인구고령화가 가져올 위기와 공포를 증폭시키는 담론들이 무엇을 은폐하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저자가 나이 들지 않은(ageless) 자아를 강조하는 미국사회의 문화적 이데올로기를 수용하기보다는 나이 드는 자신을 오롯이 인정함으로써 노년의 충만함(agefulness)을 만끽하자고 주장하는 부분이었다. 저자는 미디어에서 재현하는, 이른바 나이가 들었음에도 여전히 ‘젊음을 유지하는’ 슈퍼기저(supergeezer: 슈퍼영감님)처럼 살아가는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실현 불가능한 시나리오이며, 오히려 젊음을 숭상하고 노년을 타자화하는 또다른 방식의 연령차별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처럼 저자는 성공적 노년담론의 허구와 부작용을 명확하게 짚어낼 뿐 아니라 노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줄 것인지 대안적 서사 역시 제공하고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다만, 노인들이 연령차별을 가장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적 주체이자 시혜자일 수도 있다는 점을 저자는 간과하고 있다. 저자는 노인들이 내면화된 연령차별을 극복하게 되면, 중년 시절에 ‘우리’를 괴롭히던 불안에서 벗어날 것이라며 시종일관 노인들이 연령차별의 피해자인 것처럼 묘사한다. 하지만 한국사회와 같이 전통적으로 노인들에게 호의적인 연령주의(ageism for the aged)가 제도화되어 있는 사회에서 노인들은 오히려 연령주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따라서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불평등한 관계와 연령주의가 중층적으로 얽혀 있는 양상에 대한 고찰 역시 필요하다.
그리하여 필자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만큼이나 연령차별은 문제’라는 자각에 멈추지 말고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듣고, 배우고, 공감하라. 그리고 함께 싸워라”라는 지침을 추가하고 싶다. 차별의 메커니즘에 내재된 폭력성에 대해 이해하고, 다양한 종류의 차별에 직면해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다면, 에이지즘에 대한 저항은 노인들의 정신승리법에 그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서로의 의자를 탐하기보다는 좀더 많은 의자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인생선배들의 모습을 자주 목도하게 된다면, 우리 안의 에이지즘은 보다 쉽게 허물어질 수 있을 것이다.
김희경 / 서울대 인류학과 BK21플러스사업단 박사후연구원
2017.8.2. ⓒ 창비주간논평